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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 (블루레이)

울프팩 2012. 7. 23. 11:42

윤종빈 감독이 각본을 쓰고 연출까지 한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2011년)는 어둠의 권력에 빌붙어 사는 사나이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
부패한 세관공무원에서 뒷골목 조폭들과 손잡고 반달(반건달)로 변신한 익현(최민식)은 뇌물로 맺은 인맥으로 승승장구한다.

주먹과 뇌물이 오가는 더러운 먹이 사슬 속에서 큰 권력은 작은 권력을 잡아먹거나 비호하며 썩은 내를 풍긴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은 하나같이 나쁜 놈들이어서 결코 동정받지 못한다.

유일하게 선한 희생자가 있다면 그들의 가족이다.
한밤 중 들이닥친 경찰의 손에 끌려가는 수갑 찬 애비를 봐야 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건달들 틈바구니에서 호로새끼가 될 지 모를 위협 속에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를 윤 감독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건조하게 잡아 냈다.
일말의 감상이 배어들 여지없이 무색무취한 마초들의 세계와 권력의 암투를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토록 냉정한 영상 속에 어느 순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얼치기 악당이 돼가는 익현이 제 새끼는 잘 키우려고 아들을 보듬는 장면이다.

감정선을 자극하는 대사없이 드라이한 영상 속에서 오히려 속 깊은 부정이 느껴진다.
더불어 애잔한 부정이 무서운 권력으로 귀결되는 엔딩을 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단순 깡패들의 싸움을 다룬 여느 건달 영화와 달리 권력의 부조리를 제대로 짚어낸 점이 돋보인다.
악당을 연기한 하정우와 최민식은 물론이고, 검사 역의 곽도원, 익현의 오른팔을 연기한 김성균, 반대파 조폭 두목 역의 조진웅 등 배우들도 실감나게 연기를 잘해줬다.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와 90년대이지만 요즘 풍경이 자꾸 중첩된다.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세월은 흘렀어도 나쁜 놈들은 그대로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1980년대 초반 인기를 끈 이명훈의 '그대로 그렇게'와 1970년대곡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노래 제목 조차도 이런 현실을 꼬집고 있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아주 좋다.
또렷한 샤프니스와 선명한 색감 덕에 전체적으로 영상이 말끔하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부드러운 울림으로 적당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음악이야기와 시사회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장면이 영화의 모든 것을 말해준다. 전직 부패 세관원이었던 최익현(최민식)은 조폭들의 위세를 등에 업고 호가호위하듯 살아간다.
윤종빈 감독도 영화 초반 수 많은 사진기자들 사이에 카메오 출연.
부산 영도에서 촬영한 장면. '친구'처럼 부산을 무대로 했다. 항구와 사투리 등 여러가지 요소 때문에 부산이 조폭 영화의 무대로 곧잘 등장한다.
하정우의 등판을 가득 덮는 문신은 전문가 6명이 12시간 가까이 걸려서 그렸다.
서울대 성악과를 나온 기상캐스터 출신의 김혜은이 술집 여사장 역할로 출연.
일본 야쿠자 두목으로 나온 인물은 배우가 아닌 일본 요식업계 거물로, 300여개의 음식점을 갖고 있단다.
이 장면에서 김서방 역의 마동석은 창우를 연기한 김성균이 휘두른 가짜 맥주병에 맞아 머리가 찢어지는 부상을 당했다. 맥주병은 설탕으로 만든 가짜였지만 잘못 맞아 다친 것. 김서방이 조폭들에게 아킬레스건이 짤리는 장면은 삭제됐다.
반대파 조폭 두목을 연기한 조진웅이 체포되는 장면은 마산서 촬영.
막판 체포작전을 찍은 곳은 부안이다.
이 작품은 명품 조연들이 빛났다. 검사를 연기한 곽도원도 그 중 하나. 연기가 참으로 자연스러웠다.
단발머리를 곱게 기른 조폭 박창우로 나온 김성균의 연기도 일품이었다.
노태우 정부 시절 벌인 범죄와의 전쟁은 군사독재정권의 실정 때문에 끓어오른 민심을 달래고 관심을 다른 곳으로 돌리기 위해 만만한 조폭들에게 책임을 전가한 일종의 서민 회유책이다.
최민식은 배역을 위해 10kg 가량 살을 찌웠다. 하정우는 잔인한 조폭 연기를 제대로 해냈다.
이명훈의 '그대로 그렇게',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 장계현의 '이별' 등 1970~80년대 노래들이 삽입돼 학창시절 추억을 떠오르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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