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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추천 DVD / 블루레이

레드 소냐(블루레이)

울프팩 2022. 6. 6. 10:26

리처드 플레이셔(Richard Fleischer) 감독의 '레드 소냐'(Red Sonja, 1985년)는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때문에 관심을 끈 영화다.

사람들은 주연을 맡은 유럽에서 온 무명의 여배우보다 '코난' 시리즈와 '터미네이터'에서 남다른 근육을 과시하며 이름을 알린 아널드 슈워제네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제작사도 주연인 브리지트 닐슨(Brigitte Nielsen)보다 슈워제네거의 인기에 더 큰 기대를 걸었다.

특히 슈워제네거를 유명하게 만든 코난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으나 판권 문제로 실패했다.

 

그래서 슈워제네거는 이 작품에서 코난 대신 로드 칼리도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슈워제네거의 극 중 배역을 코난으로 생각했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은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은 마블 코믹스의 만화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다.

 

비키니 아머의 원조

로버트 하워드가 1934년 '독수리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Vulture)라는 단편에 레드 소냐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켰다.

이후 마블은 1973년 이를 코난 시리즈의 방계 작품처럼 확대해 코난과 대립하거나 협력하는 여전사로 키웠다.

 

나중에 레드 소냐는 메리 제인으로 빙의돼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도 등장했다.

그런데 훗날 레드 소냐를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판권을 따로 떼어냈으나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코난 시리즈와 분리됐다.

 

코난의 여성판인 레드 소냐는 소위 '비키니 아머'라고 부르는 캐릭터들의 원조다.

말 그대로 수영복 같은 옷만 걸친 채 거의 벗다시피 돌아다니며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다.

 

처음부터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독립 시리즈로 등장하면서 노출이 늘고 과격해졌다.

특히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거나 무시하는 남성들에게 유독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그럴만한 것이 악당들에게 가족이 몰살당하고 강간을 당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증폭됐다.

이후 여신에게서 뛰어난 완력을 부여받고 특수 집단을 통해 무술을 익힌 뒤 방랑하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여전사가 됐다.

 

실망스러운 영화

영화는 원작 만화의 설정을 따랐지만 노출이 심하거나 성적 묘사를 강조하지 않았다.

내용은 여사제들을 죽이고 신비한 능력을 지닌 마법의 공을 강탈한 게드린 여왕을 찾아 복수하는 레드 소냐의 모험을 다뤘다.

 

문제는 단선적 줄거리의 뻔한 내용인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와 액션 등 볼거리로 승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키가 껑충한 브리지트 닐슨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연기도 어설프고 액션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유명한 슈워제네거를 적극 활용하면 좋았을 텐데 그다지 많은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 많은 돈을 들여 세트를 만들었으나 스케일에 비해 빈약하고 조잡해 눈길을 끌지 못한다.

 

액션도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거나 검을 막대기 휘두르듯 하다가 상대를 쓰러트리는 식이어서 실망스럽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브리지트 닐슨이 체형은 늘씬하지만 운동 신경이 둔해 숱한 NG를 내며 액션 장면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원작 만화에서 보여준 여전사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1,790만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695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고, 최악의 영화를 뽑는 골든 라즈베리상 후보가 되며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

19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코난과 더불어 추억의 캐릭터여서 옛정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음악을 맡은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다.

모리코네처럼 뛰어난 작곡가가 왜 이런 허접한 작품의 음악을 맡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모리코네의 음악도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지글거림이 심하고 디테일이 떨어지며 일부 장면에서 색상도 깨끗하지 못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서라운드 효과가 부각되지 않는다.

 

부록으로 아널드 슈워제네거 소개, 제작과정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정작 주연인 브리지트 닐슨을 다룬 부록이 없는 것만 봐도 이 작품에서 그의 존재감을 가늠할 수 있다.

 

부록들도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연인 브리지트 닐슨보다 양념처럼 등장한 아널드 슈워제너거를 더 주목하게 되는 영화다. 제작총괄인 디노 디 로렌티스와 친분 때문에 출연한 아널드는 이 작품 출연 이후 그와 맺은 10년 계약을 파기했다.
아널드는 할리우드에 이름을 알리기 위해 '뉴욕의 헤라클레스'라는 영화에 출연하면서 아널드 스트롱이라는 이름을 쓰고 대사도 다른 사람이 대신 더빙했다. 훗날 아널드는 유명해지고 나서 '뉴욕의 헤라클레스'에 다르게 표기한 이름을 원래대로 고쳤다.
제작을 총괄한 디노 디 로렌티스는 이탈리아 에우리 근처 모스타치아노에 거대한 세트를 만들었다. 사람들은 이를 디노 시티라고 불렀다.
제작진은 일본 사무라이 복장을 흉내내 악당인 게드린 여왕의 병사들 차림새를 꾸몄다.
덴마크 출신인 브리지트 닐슨은 185cm에 이르는 장신이어서 모델로 활동하다가 이 작품으로 배우 데뷔를 했다.
브리지트 닐슨은 이 영화를 찍으며 아널드 슈워제네거와 연애했으나 나중에 실베스터 스탤론과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닐슨은 결혼을 다섯 번했다.
야심이 컸던 아널드 슈워제네거는 브리지트 닐슨 대신 명망있는 케네디 가문의 마리아 슈라이버와 결혼했고 훗날 처가의 도움으로 캘리포니아 주지사에 당선됐다.
영화 초반 소냐의 집이 불타는 장면과 일부 숲속 장면 등은 이탈리아의 아부르초 지역 라퀼라시 인근에서 찍었다.
브리지트 닐슨은 액션을 기획한 빅 암스트롱에게 승마와 검술 등을 배웠다.
제작총괄인 디노 디 로렌티스는 슈워제네거의 출연료가 너무 비싸 100만 달러의 제작예산을 훌쩍 넘기는 바람에 사비를 털어 제작비를 충당했다.
벼랑을 향해 나아가는 레드 소냐 일행 등 일부 장면은 스튜디오에서 스크린에 그림을 그려 걸어놓고 촬영했다.
브리지트 닐슨은 실베스터 스탤론과 결혼한 덕분에 '록키4' '코브라' 등 스탤론 주연 영화에 출연했다. 그러나 닐슨의 심한 남성편력 등으로 최악의 사이가 되며 1년여 만에 헤어졌다. 스탤론은 사이가 나빴던 사람들과 대부분 화해했으나 닐슨에게는 지금까지 냉랭하게 대하며 '크리드2'를 찍을 때에도 사적인 대화를일체 하지 않았다.
시고니 위버와 에일린 데이비슨, 로렌 랜던도 레드 소냐 역으로 물망에 올랐다.
게드린 여왕을 연기한 샌달 버그만은 훗날 인터뷰에서 브리지트 닐슨과 촬영이 악몽 같았다고 회고했다. 닐슨이 하도 NG를 내서 애인이었던 아널드까지 화를 냈다. 버그만은 '코난'에서 슈워제네거의 연인으로 등장한 배우다.
이 작품은 라켈 웰치가 주연하고 어네스트 보그나인, 크리스토퍼 리가 출연한 버트 케네디 감독의 1971년 서부극 '서부의 여걸 한니'의 영향을 받았다. '서부의 여걸 한니'는 남편을 살패하고 자신을 강간한 무법자 3명을 찾아내 복수하는 서부극이다.
2006년 89세로 사망한 리처드 플레이셔 감독은 유명한 만화 '뽀빠이'를 만든 맥스 플레이셔의 아들이다. 그는 '코난2' '만딩고' '마제스틱' '바라바' 등과 유명 전쟁영화 '도라 도라 도라'를 감독했다.
로버트 로드리게즈 감독은 더글라스 아니오코스키를 감독으로 기용하고 '플래닛 테러' 출연 이후 애인이 된 로즈 맥고완을 주연으로 이 작품을 2010년에 리메이크 하려고 했으나 맥고완이 크게 다쳐 무산됐다. 이후 2017년 브라이언 싱어 감독이 리메이크 연출을 맡았으나 미성년자 성폭행 혐의로 고소당하면서 엎어졌다. 2021년에도 질 솔로웨이 감독과 '앤트맨과 와스프'에 출연한 해나 존 케이먼 주연의 리메이크 시도가 있었으나 두 사람 모두 그만뒀고 아직까지 후임 감독만 마이클 버세트로 결정됐을 뿐 주연을 섭외하지 못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