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처드 플레이셔(Richard Fleischer) 감독의 '레드 소냐'(Red Sonja, 1985년)는 아널드 슈워제네거(Arnold Schwarzenegger) 때문에 관심을 끈 영화다.
사람들은 주연을 맡은 유럽에서 온 무명의 여배우보다 '코난' 시리즈와 '터미네이터'에서 남다른 근육을 과시하며 이름을 알린 아널드 슈워제네거에 더 관심이 많았다.
제작사도 주연인 브리지트 닐슨(Brigitte Nielsen)보다 슈워제네거의 인기에 더 큰 기대를 걸었다.
특히 슈워제네거를 유명하게 만든 코난 캐릭터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었으나 판권 문제로 실패했다.
그래서 슈워제네거는 이 작품에서 코난 대신 로드 칼리도라는 엉뚱한 이름으로 등장한다.
그래도 사람들은 슈워제네거의 극 중 배역을 코난으로 생각했다.
콩떡같이 말해도 찰떡 같이 알아들은 것이다.
원래 이 작품은 마블 코믹스의 만화 시리즈로 널리 알려졌다.
비키니 아머의 원조
로버트 하워드가 1934년 '독수리의 그림자'(The Shadow of the Vulture)라는 단편에 레드 소냐 캐릭터를 처음 등장시켰다.
이후 마블은 1973년 이를 코난 시리즈의 방계 작품처럼 확대해 코난과 대립하거나 협력하는 여전사로 키웠다.
나중에 레드 소냐는 메리 제인으로 빙의돼 스파이더맨 시리즈에도 등장했다.
그런데 훗날 레드 소냐를 영화로 제작하기 위해 판권을 따로 떼어냈으나 다른 회사에 팔리면서 코난 시리즈와 분리됐다.
코난의 여성판인 레드 소냐는 소위 '비키니 아머'라고 부르는 캐릭터들의 원조다.
말 그대로 수영복 같은 옷만 걸친 채 거의 벗다시피 돌아다니며 싸움을 벌이는 캐릭터다.
처음부터 그런 캐릭터는 아니었으나 독립 시리즈로 등장하면서 노출이 늘고 과격해졌다.
특히 자신을 성적 대상으로만 보거나 무시하는 남성들에게 유독 잔혹하고 폭력적이다.
그럴만한 것이 악당들에게 가족이 몰살당하고 강간을 당한 아픔을 겪었기 때문에 증오와 분노의 감정이 증폭됐다.
이후 여신에게서 뛰어난 완력을 부여받고 특수 집단을 통해 무술을 익힌 뒤 방랑하며 악당들을 물리치는 여전사가 됐다.
실망스러운 영화
영화는 원작 만화의 설정을 따랐지만 노출이 심하거나 성적 묘사를 강조하지 않았다.
내용은 여사제들을 죽이고 신비한 능력을 지닌 마법의 공을 강탈한 게드린 여왕을 찾아 복수하는 레드 소냐의 모험을 다뤘다.
문제는 단선적 줄거리의 뻔한 내용인 만큼 매력적인 캐릭터와 액션 등 볼거리로 승부해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다는 점이다.
키가 껑충한 브리지트 닐슨이 돋보이기는 하지만 연기도 어설프고 액션도 그다지 화려하지 않다.
오히려 유명한 슈워제네거를 적극 활용하면 좋았을 텐데 그다지 많은 장면에 등장하지 않는다.
또 많은 돈을 들여 세트를 만들었으나 스케일에 비해 빈약하고 조잡해 눈길을 끌지 못한다.
액션도 허공에서 공중제비를 돌거나 검을 막대기 휘두르듯 하다가 상대를 쓰러트리는 식이어서 실망스럽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브리지트 닐슨이 체형은 늘씬하지만 운동 신경이 둔해 숱한 NG를 내며 액션 장면을 제대로 소화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 바람에 원작 만화에서 보여준 여전사의 매력을 제대로 살리지 못했다.
결국 이 작품은 1,790만 달러라는 막대한 제작비를 들이고 695만 달러를 버는데 그쳤고, 최악의 영화를 뽑는 골든 라즈베리상 후보가 되며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실패했다.
1980년대를 기억하는 사람들에게는 코난과 더불어 추억의 캐릭터여서 옛정으로 볼 수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실망스러운 작품일 수 있다.
불가사의한 것은 음악을 맡은 엔니오 모리코네(Ennio Morricone)다.
모리코네처럼 뛰어난 작곡가가 왜 이런 허접한 작품의 음악을 맡았는지 모르겠다.
다만 모리코네의 음악도 이 작품에서는 두드러지지 않았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지글거림이 심하고 디테일이 떨어지며 일부 장면에서 색상도 깨끗하지 못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서라운드 효과가 부각되지 않는다.
부록으로 아널드 슈워제네거 소개, 제작과정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정작 주연인 브리지트 닐슨을 다룬 부록이 없는 것만 봐도 이 작품에서 그의 존재감을 가늠할 수 있다.
부록들도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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