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비브르 사 비

울프팩 2012. 12. 1. 16:14
프랑스의 누벨바그 감독인 장 뤽 고다르는 "필름은 제 2의 존재들로 구성된다"고 말했다.
즉, 카메라가 담은 존재들로 필름을 채운다는 점에서 카메라는 곧 기록장치이자 관객이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작품이 바로 고다르가 감독 및 각본을 쓰고 편집과 내레이션까지 맡은 '비브르 사 비'(Vivre Sa Vie, 1962년)이다.
이 작품은 오락성으로 흥행만 쫓는 대중영화들이 넘쳐나는 요즘 진정한 영화보기란 무엇인 지에 대해 다시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제목인 '비브르 사 비'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이라는 뜻으로 인간의 주체적 삶을 의미하지만, 이면에는 다른 뜻이 있다.
프랑스에서는 매춘을 '삶'(Vie)이라고 표현한다.

이는 곧 매춘부의 삶이라는 이중적인 의미를 담고 있다.
주인공 나나는 유명 스타를 꿈꾸지만 생계를 위해 급격하게 거리의 여자로 무너진다.

이를 고다르는 다큐멘터리 같은 영상으로 담았다.
영화는 시작 초반부터 여자의 좌 우 옆모습과 앞모습을 골고루 보여준 뒤, 느닷없이 뒤통수를 보여주며 대사가 흘러 나온다.

더불어 영화에서 일반적으로 금기시된 행동인 배우가 카메라를 정면으로 응시하는 샷을 통해 관객에게 영화를 보고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식시킨다.
뿐만 아니라 이 영화는 툭하면 소리가 끊긴다.

음악이 흘러나오다 갑자기 뚝 끊어지며 몇 초간 침묵이 찾아든다.
음악 뿐 아니라 대사나 효과음 조차도 마찬가지로 사라져 일체의 침묵이 공간을 지배한다.

이 느닷없는 낯설음을 통해 고다르는 관객들에게 끊임없이 영화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상기시킨다.
극중 캐릭터의 관점으로 영화를 보거나 이야기에 매몰되지 않고 관객이 주체적으로 사고하기를 요구하는 셈이다.

고다르는 제목이 말하는 '자신의 생각대로 살아가는 삶'을 영상과 소리, 편집으로 보여주고 있다.
이를 위해 고다르는 일체의 인공적 요소를 배제했다.

즉, 각종 효과음과 대사 등도 모두 촬영현장에서 녹음했으며, 조명 조차 거의 자연광이다.
연기도 마찬가지로 배우들의 애드립에 의존했다.

이처럼 고다르는 가상의 스토리에 다큐멘터리식 영상을 입혀 독특한 영화보기를 체험하게 한다.
그만큼 이 작품은 늘상 먹던 밥상에 올라온 색다른 반찬이나 다양한 장르의 음악처럼 영화 세계의 다양성과 변화를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작품이다.

4 대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각종 필름 잡티가 보이는 등 화질이 좋지 않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2.0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영화는 "다른 사람에게 쓸모 있으려면 너의 모든 것을 주라"는 몽테뉴의 말과 함께 시작한다. 특이한 것은 여자의 뒷모습에서 대사가 흘러나오는 점이다.
여주인공은 칼 드라이어 감독의 위대한 무성영화 '잔 다르크의 수난'을 본다. 극 중 잔다르크의 모습과 여주인공의 모습이 대비되며 여자의 고난을 암시한다.
주인공을 맡은 안나 카리나는 당시 고다르 감독의 부인이었다. 그는 고다르의 '여자는 여자다' '미치광이 피에로' '국외자들' 등에 출연하며 누벨바그의 여신으로 꼽혔다.
안나 카리나는 '미치광이 피에로'를 찍으면서 고다르와 불화를 겪었고, '메이드 인 USA' 이후 헤어졌다. 그는 2008제 부산국제영화제의 뉴커런츠부문 심사위원장으로 위촉돼 방한한 적이 있다.
미국의 유명 여류 비평가인 수잔 손탁은 이 작품을 "가장 비범하고 아름다우며 독창적인 예술작품"이라고 평했다.
아름다운 음악은 유명한 작곡가 미셀 르그랑이 맡았다. 그의 음악은 이 작품에서 쇼트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처럼 쓰였다.
영화는 소설처럼 12개의 장으로 나뉘어져 각각의 제목이 붙어 있다. 촬영은 라울 쿠타르가 맡았다.
다큐멘터리 같은 영화를 만들고 싶었다는 고다르는 촬영을 대본 순서대로 했다.
에드가 앨런 포의 책 '타원형 초상화'로 입을 가린 청년이 책을 읽는 장면에서 흘러 나오는 목소리는 고다르의 음성이다.
영화는 프랑소와 트뤼포 감독의 걸작 '쥘 앤 짐'을 보기 위해 길게 줄을 서서 기다리는 사람들과 간판을 보여주며 누벨바그 영화의 물결을 강조한다.
포주가 여주인공을 다른 매춘조직에 팔아넘기며 벌이는 총격전 장면에서도 음악이나 클로즈업 등을 일체 배제한 채 현상만을 보여준다. 그만큼 현상을 담백하게 담아낸 이 영화는 묘한 매력이 있다.
비브르 사 비
장 뤽 고다르 감독; 애너 카리나 출연; 사디 레보트 출연; 안드레 S. 라바르트 출연;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피크닉  (2) 2012.12.04
내 아내의 모든 것 (블루레이)  (9) 2012.12.03
파이널 데스티네이션5 (블루레이)  (4) 2012.11.29
스틸링 뷰티  (4) 2012.11.28
범죄의 재구성 (블루레이)  (4) 2012.11.2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