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이 우리의 발해성벽까지 만리장성의 연장이라고 역사를 왜곡하는 장성공정을 벌여 공분을 자아낸다.
진의 시황제가 북방 오랑캐를 막기 위해 쌓은 만리장성을 처음 가봤을 때 사진이나 TV에서 본 것과 달리 얕으막한 높이에 실망했던 기억이 난다.
그러나 가까이 보면 실망스런 이 건축물이 멀리 떨어져보면 우주에서도 보일 만큼 장대하다.
장예모 감독의 ‘영웅’(2002년)은 만리장성 같은 작품이다.
장 감독의 첫 액션영화인 이 작품은 단순 무협물로 보이지만 한걸음 떨어져보면 중국 역사를 꿰뚫는 기본적 흐름과 사상이 녹아 있다.
조각난 중국 대륙을 통일하려고 주변국을 침략한 진시황제를 암살하기 위해 네 명의 무사들이 주도 면밀한 계획을 세운다.
시황제에게 짓밟힌 조국을 대신해 뭉친 이들의 계획은 뜻밖에도 내부에서 무너지는데 붕괴의 단초는 혼돈을 바로잡기 위한 질서다.
시황제 암살이 일개 국가의 복수는 될 수 있지만 중국 전체로 보면 혼란의 지속을 의미하므로 시황제를 죽이지 말아야 천하가 통일돼 중국이 안정된다는 논리다.
이런 논리는 삼국지와 수호지 등 중국 기서들은 물론이고 흩어졌다 모이고 다시 흩어지기를 반복한 중국 역사의 기본 원리다.
이연걸, 장만옥, 양조위, 견자단 등 네 명의 무사와 시황제는 결국 이 같은 혼란과 질서를 의미한다.
여기에는 대의를 위해 국가도 버리는 아나키스트적 발상은 물론이고 꿈과 현실이 하나로 녹아 영겁의 세월을 되풀이하는 노장사상도 숨어있다.
마치 꿈을 꾸는 듯한 붉은 색, 푸른색, 노란색 화면은 장자의 호접몽을 연상케 하며 흰 색은 아무 것도 잡을 수 없는 허무한 현실을 암시한다.
이런 맥락을 놓치면 이 작품은 더 없이 허풍이 심한 중국인들의 그저 그런 무술영화에 불과하다.
그렇게 되면 이연걸의 마지막 선택과 영웅이 될 수 밖에 없는 이유도 모두 풀리지 않는 의문이 돼버린다.
이토록 심오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영화가 질리지 않는 비결은 장 감독이 있는대로 멋을 부려 빚어낸 수려한 영상에 있다.
인물과 사건에 맞춰 기본 색조가 화려하게 변하는 영상은 한 폭의 그림이다.
여기에 동양판 매트릭스를 보는 듯한 무술 장면들은 비록 허풍은 심하지만 짜릿한 흥분을 선사한다.
한마디로 장 감독이 매우 공들여 찍은 아름다운 무술영화다.
다만 과유불급(過猶不及), 지나치면 모자른 것만 못하다고 과하게 멋을 부렸다는 느낌이다.
새로 출시된 감독판 블루레이는 과거에 나온 100분 분량의 일반판 블루레이보다 9분 늘어난 감독판을 담고 있다.
1080p 풀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함께 나온 '연인'보다는 낫지만 전체적으로 실망스럽다.
색감과 클로즈업은 좋은데 중경 원경의 디테일이 떨어진다.
윤곽선이 예리하지 않고 약간 퍼지는 편이며 입자고 거칠다.
DTS-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압권이다.
리어 채널을 적극 활용해 웅장한 사운드를 들려준다.
특히 금속이 맞부딪치는 소리는 이가 시릴만큼 명징하다.
부록으로 타란티노와 이연걸의 대화, 제작진 인터뷰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있다.
그러나 기존 UE판 DVD에 수록된 3시간 분량의 제작 다큐는 제외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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