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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정무문 (4K 블루레이)

울프팩 2018. 3. 3. 11:50

이소룡의 두 번째 영화인 '정무문'(Fist of Fury, 1972년)은 이소룡뿐만 아니라 홍콩 영화사의 한 획을 그은 작품이다.
이소룡 특유의 날카로운 고음이 인상적인 기합 소리와 쌍절곤이 영화에 처음 등장했고, 이 작품의 흥행을 계기로 이소룡은 감독 주연 각본까지 모두 맡아 흥행 수익을 나누는 파트너로 부상했다.

이 같은 이소룡의 변화는 홍콩 영화사에 일대 변화를 일으켰다.
당시 홍콩 배우들은 돈을 받고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수동적인 역할이었으나 이소룡이 제작에 관여하면서 정당한 대가를 받는 파트너가 된 것.

이 같은 바람은 다른 배우들의 몸값을 올렸으며 촬영감독 조명 등 제작진의 처우까지 달라지면서 홍콩 영화계를 뒤흔들었다.
한 사람의 의식 있는 스타가 영화 산업에 얼마나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지를 제대로 보여준 사례다.

이 작품은 '당산대형'의 흥행 성공을 가볍게 뒤집으며 다시 한번 아시아에 이소룡 신드롬을 일으켰다.
비결은 단순 액션극과 달리 반일 감정이 강한 중국인들의 민족정서에 호소한 점이었다.

태극권의 대가인 정무관의 곽원갑 원장의 죽음에 일본인들이 개입했다는 픽션을 소재로, 곽원갑의 제자인 진진(이소룡)이 일본 도장을 찾아가 박살 내는 내용이다.
중국인들이 영웅으로 추앙하는 실존 인물 곽원갑과 일본인의 독살설 등 픽션을 결합해 중국인뿐 아니라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본의 침략을 받았던 아시아인들의 열띤 호응을 이끌어냈다.

이 영화의 흥행을 계기로 이소룡은 홍콩 등 중화권의 민족 영웅으로 거듭났고, 아이러니컬하게도 일본에서조차 인기몰이를 했다.
덕분에 이소룡은 엄청난 인기를 등에 업고 골든하베스트 사장인 레이몬드 쵸에게 당당히 동업자 자격을 요구해 콩코드 프로덕션을 함께 설립, 이소룡이 영화 제작을 맡고 쵸 사장은 운영을 분담했다.

정무문의 인기는 이후로도 이어져 이 작품의 감독이었던 로웨이가 성룡을 기용해 '정무문 2'와 주성치 주연의 '신정무문'을 찍었고, 이연걸이 나오는 '이연걸의 정무문', 견자단의 '정무문 100대 1의 전설' 등 숱한 아류작을 낳았다.
그만큼 이 영화는 홍콩 영화사에 중요한 이정표가 된 작품이었고, 이소룡의 무술 스타일을 세계에 확실히 알린 기념비적인 작품이 됐다.

국내에 4K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2160p U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한다.

화질은 과거에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보다 많이 개선됐다.

 

과거 블루레이 타이틀은 영상이 선명하지 못해 아쉬웠는데 4K로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전체적으로 밝아지면서 윤곽선이 깔끔해졌고 색감도 선명하게 바뀌었다.

특히 클로즈업의 화질이 아주 좋으며 피부의 윤기가 생생하게 살아 있다.

 

DTS-HD MA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도 서라운드 효과가 확실하다.
부록으로 중국 배우 원화의 인터뷰가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다만 자막 번역이 매끄럽지 못하게 어색한 것이 옥에 티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소룡은 미국 TV시리즈 '그린호넷'에서 잠깐 들고 나왔던 쌍절곤을 이 영화에서 처음 선보여 높은 인기를 끌었고, 특유의 괴성이 섞인 기합도 처음 사용했다.
영화는 태극권 대가로 무술도장 정무관을 세운 곽원갑의 죽음으로 시작된다. 곽원갑은 실존 인물이지만 그의 죽음에 일본이 개입했으며, 이 때문에 그의 제자가 일본인들을 응징하는 내용은 모두 픽션이다.
정무관의 수제자인 주인공을 맡은 이소룡이 일본 도장을 찾아가 박살을 내는 장면은 반일 감정이 강한 중국인들을 통쾌하게 만들었다.
중국인을 멸시해 '동아시아의 병든 민족'이라고 쓴 종이를 찢어 일본 무술인들에게 먹이는 장면. 이 작품은 특히 열등의식과 패배감에 젖어있던 중화권 사람들에게 자긍심을 심어주는 계기가 됐다.
이 작품에는 '당산대형' 출연진이 대거 등장한다. 노라 미아오(묘가수)가 이소룡 약혼녀로 나오고, '당산대형'의 여주인공 마리아 이, 전준 등 정무관 제자들이 대부분 '당산대형' 출연진이다.

이 작품은 국내에서 이소룡 사망 일주일 뒤인 1973년 7월 27일 개봉했고, 서울에서만 31만 명이 들어 그해 최다 흥행 영화가 됐다.
'당산대형'을 감독한 로웨이가 각본과 감독을 맡았고, 중국인 형사로도 출연. 이 작품을 계기로 이소룡과 로웨이는 완전히 결별했다.
'당산대형' 촬영 때부터 경마에 빠져 영화에 집중하지 않는 로웨이에 화가 난 이소룡은 이 작품 촬영 때에도 여러 번 충돌했다.
1948년에 배우로 출발한 로웨이는 57년 감독으로 데뷔해 골든하베스트의 레이몬드 쵸 사장이 데려오기 전까지 쇼브라더스에서 80여 편의 저예산 영화를 만들었다. 그렇다 보니 당연히 겨우 영화 두 편을 찍은 이소룡의 참견이 못마땅할 수밖에 없었다.
로웨이는 중국 폭력조직 삼합회와 연루된 것으로 알려졌으며 정창화 감독의 '죽음의 다섯 손가락'에 주요 배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다. 1996년 심장병으로 죽었다.
로웨이는 트램펄린을 사용해 이소룡에게 3미터 이상 뛰어오르는 곡예를 시키고, 인력거를 들어 올리는 등 비현실적 장면을 집어넣어 현실감을 떨어뜨렸다. 그는 또 '당산대형'의 이소룡 액션을 자신이 가르쳤다며 떠벌리고 다녔다.
러시아 악당으로 나오는 로버트 베이커. 그의 영어 대사는 이소룡이 더빙했다.
이 영화는 '당산대형'처럼 10만 달러의 예산으로 제작됐고, 예산의 대부분은 연못과 정원이 딸린 일본 가옥 세트 제작에 쓰였다.
공원 장면은 야외 촬영을 했는데, 동네 건달들이 보호비를 요구하며 로웨이 감독과 시비가 붙었고 결국 돈을 줘서 해결했다. 뒤늦게 이를 알게 된 이소룡이 흥분을 해서 제작진이 달래느라 애를 먹었단다.
이소룡은 쌍절곤을 필리핀의 무술인 댄 이노산토에게 배웠고, 그에게 절권도를 가르쳤다. 영화 속 쌍절곤은 맞아도 다치지 않도록 실제보다 가볍게 제작해 이소룡이 훨씬 빠르게 돌릴 수 있었다.
쌍절곤은 두 개의 봉이 사슬로 연결돼 있어 때리는 충격이 손에 전달되지 않는다. 원래 쌍절곤은 일본 오키나와 농부들이 벼 껍질을 벗길 때 쓰던 도리깨에서 유래했다. 19세기 일본이 오키나와를 침공해 무기가 될 만한 것을 모두 가져가자 농부들이 농기구 중심으로 자신들의 무술을 발전시켰다.
당시 오키나와에는 중국에서 건너온 중들이 있었는데, 농부들이 이들에게 쿵후 수련을 부탁했고 여기에 도리깨가 결합해 태어난 것이 쌍절곤이다.
당시 오키나와 농부들은 중국 중들에게 배운 무술을 '중국인들의 손'이란 뜻의 당수(唐手)로 표기했고, 이를 일본인들이 본토로 가져가 '비어있는 손'(空手)이란 뜻의 가라테로 불렀다.
미국에서는 쿵후보다 가라테가 더 유명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오키나와를 점령한 미군들이 가라테를 익힌 뒤 미국에 돌아가 전파했기 때문이다.
이 작품이 빅 히트하면서 이소룡은 유명세를 톡톡히 치렀다. 길거리 건달들이 그를 흉내 내 말썽을 일으키거나 그에게 도전장을 내밀었다.
뿐만 아니라 제작사들은 백지수표를 이소룡에게 내밀기도 했으나 이소룡은 이를 거부했다. 돈에 좌우되면 자신이 원하는 대로 영화를 찍을 수 없을 것이라는 생각 때문이었다.
레이몬드 쵸 사장은 이소룡과 콩코드 프로덕션을 설립한 뒤 로웨이 감독을 끌어들여 영화를 만들려 했으나 이소룡이 반대했다.
정무관 수련 장면과 엔딩에 성룡이 엑스트라로 나오기도 한다.
노라 미아오와 키스 장면이 등장하기도 한다. 노라 미아오는 '맹룡과강'에도 여주인공으로 출연했다.
"물어라. 죽는 것보다 낫다. 팔다리를 쓸 수 없다면 네가 할 수 있는 것을 총동원해라." 이소룡은 절권도를 가장 효과적으로 싸울 수 있는 무술로 개발하면서 제자들에게 이렇게 가르쳤다. 이 작품에는 이소룡이 절권도의 효율성을 잘 보여주는 적을 물어뜯는 장면이 나온다.
이 작품에서 가장 환상적인 장면. 수려한 손의 움직임을 슬로모션과 이중노출로 아름답게 묘사했다.
총을 겨눈 적들에게 포효하며 날아오르는 마지막 엔딩은 영화의 비장미를 잘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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