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촉산'(蜀山, 1983년)은 서극 감독의 '디 워' 같은 영화다.
흔히 홍콩의 스필버그로 불리는 그는 항상 할리우드 스타일의 영화를 꿈꿨다.
중국 영화 전통의 사극이나 무협 장르를 살리면서 여기에 할리우드처럼 특수효과를 가미해 대작 영화를 만드는 것이 그의 꿈이었다.
그만큼 다양한 아이디어를 내서 여러 가지를 시도했으나 불운하게도 성공하지 못했다.
이 작품은 그런 의미에서 서극 감독에게 좌절을 안긴 실패작이지만 그에게 전환점이 된 중요한 작품이기도 하다.
서극은 이 작품이 흥행에서 실패한 뒤 더 이상 기존 영화사에서 자신의 작품을 만들기 힘들 것으로 보고 전영공작소라는 스튜디오를 설립했다.
원하는 영화를 마음껏 만들기 위해 설립한 이 곳에서 그는 오우삼, 정소동 같은 감독들을 발굴해 홍콩 누아르 시대가 열리는데 일조했다.
더불어 서극 감독 또한 흥행성을 겨냥한 대중적인 작품으로 선회했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서극 감독에게 의미 있는 영화지만 정작 관객들에게는 설명하기 힘든 난해한 영화다.
정확히 말하면 난해한 것이 아니라 난잡하다.
마치 감독이 갈피를 못 잡은 것처럼 이야기가 종잡을 수 없게 튄다.
내용은 중국 전국 시대에 파촉 지방에서 세상을 망하게 하려는 혈마와 맞서 싸운 무인들을 다뤘다.
무대가 된 곳이 중국 무협 영웅들의 고향인 촉산으로 불리는 파촉 지방이어서 이런 제목이 붙었다.
혈마라는 마귀가 등장하다 보니 내용이 황당무계하기 그지없다.
슈퍼맨처럼 하늘을 나는 무인들과 괴물들이 눈과 손에서 광선과 불을 뿜어내고 광선검 같은 무기를 휘두르며 싸운다.
이런 장면만 놓고 보면 무협물이라기보다 SF 판타지에 가깝다.
여기에 마귀를 무찌르는 전우였던 동지가 어느 순간 마귀의 마술에 걸려 악당이 되는 등 이야기가 이리 뒤집히고 저리 뒤집혀 쫓아가느라 정신없다.
실력과 경제력 등 여러 면에서 뒤처지는 특수효과는 그렇다 쳐도 최소한 이야기는 깔끔하게 정리할 필요가 있는데 서극 감독은 거의 의식의 흐름을 쫓아가듯 이야기가 제멋대로 날뛰게 방치했다.
어차피 1980년대 영화이니 요즘 같은 특수효과를 기대한 것은 아니다.
아니, 굳이 그럴 능력도 안되는데 할리우드를 흉내 낼 필요가 있는지 의문이다.
홍콩 영화계 실정에 맞는 범위에서 개성적인 작품을 만드는 것이 더 경쟁력 있지 않을까 싶다.
그런 점에서 심형래의 '디 워'도 마찬가지다.
이 작품은 마치 '스타워즈' '슈퍼맨' 등 1970년대 말부터 80년대 초반까지 등장한 할리우드 SF 영화를 무협이라는 이름으로 버무린 것 같다.
이 작품을 서극 감독의 대표적 흑역사로 꼽는다면 몰개성적인 할리우드 따라 하기에 불과한 특수효과 때문이 아니라 난잡한 구성과 종잡을 수 없는 이야기 때문이다.
그나마 1980년대 홍콩 영화와 1970년대 무협물에서 익숙한 배우들의 얼굴을 볼 수 있어 다행이다.
이소룡, 성룡 영화에 단역으로 자주 나온 홍금보와 원표는 물론이고 무협영화의 대표 스타 정소추, 그리고 여걸 임청하가 등장한다.
특히 임청하의 한창때 미모를 볼 수 있어 반갑다.
더불어 신인이지만 영화의 후반부에 활약하는 여검객을 연기한 이새봉도 눈에 띈다.
이 작품은 국내에 블루레이 타이틀도 나와 있지만 굳이 살 필요가 없어서 DVD 타이틀로 봤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디테일이 떨어져서 중경, 원경에서는 이목구비가 퍼져 보일 정도.
음향은 DTS ES 5.1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갤러리와 원표 인터뷰가 들어 있다.
인터뷰 영상에 한글 자막이 수록됐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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