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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캐롤(블루레이)

울프팩 2022. 11. 9. 07:50

'태양은 가득히' '리플리' '열차 안의 낯선 자들' 등 여러 스릴러 영화의 원작 소설을 쓴 여성 작가 패트리샤 하이스미스(Patricia Highsmith)는 1950년대 뉴욕의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한 적이 있다.

그곳에서 그는 손님으로 들린 우아한 부인에게 매혹돼 뉴저지 집까지 몰래 따라가 부인을 엿보았다.

 

동성애자였던 그는 이 경험을 토대로 여성들의 동성애를 다룬 소설 '소금의 값'을 써서 클레어 모건이라는 가명으로 출간했다.

굳이 가명으로 낸 이유는 1950년대 미국에서 동성애가 정신병이자 범죄 취급을 받았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 동성애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뒤 하이스미스는 제목을 '캐롤'로 고치고 본명으로 다시 출간했다.

그렇다고 하이스미스의 사연을 마냥 안타깝게 생각할 일은 아니다.

 

동성애자로 살아가는 게 쉽지 않은 와중에도 그는 소설에 희망을 담았다.

당시 동성애를 다룬 소설은 대부분 비극으로 끝났기에 남다른 그의 선택은 의외이자 용기였다.

 

커밍 아웃한 동성애자인 토드 헤인즈(Todd Haynes) 감독은 그 점에 꽂혔다.

헤인즈 감독의 '캐롤'(Carol, 2015년)은 하이스미스의 동명 소설을 영화로 만든 작품이다.

 

1950년대 흔치 않은 동성애를 다룬 이 영화는 돈 많은 은행가의 부인과 젊은 여인의 사랑을 다뤘다.

영화의 기본 플롯은 작가가 자전적 이야기를 많이 담은 원작을 충실하게 따랐다.

 

1952년 뉴욕 메이시 백화점에서 판매원으로 일한 테레즈(루니 마라 Rooney Mara)는 손님으로 들린 부인 캐롤(케이트 블란쳇 Cate Blanchett)에게 한눈에 반한다.

돈 많은 은행인의 아내였던 캐롤은 남편과 이혼을 준비 중이었고, 테레즈는 남자 친구가 있지만 깊게 사랑하지는 않았다.

 

이 와중에 서로에게 끌린 두 사람은 연인으로 발전한다.

하지만 캐롤은 동성애를 들키면 이혼 소송에서 하나뿐인 딸을 빼앗길게 확실해 테레즈에게 거리를 둔다.

 

그러나 몸은 멀어져도 마음은 그럴 수 없어서 두 연인은 어쩔 수 없이 떨어지지만 서로를 그리워한다.

헤인즈 감독은 안타까운 사랑 이야기를 아련하면서도 아름답고 쓸쓸한 영상으로 표현했다.

 

에드워드 라크맨이 촬영한 영상은 마치 1950년대 감성이 충만한 사진을 보는 것 같다.

오래된 사진이나 영화처럼 입자가 거칠고 윤곽선이 명료하지 않으며 뿌연 영상은 불확실한 시대적 상황과 미래를 알 수 없는 두 연인의 관계를 암시하는 듯하다.

 

압권은 비에 젖은 차창 너머로 얼굴을 찍은 장면들이다.

안개처럼 물기가 번진 차창 뒤로 윤곽선이 뚜렷하지 않은 얼굴은 드러낼 수 없는 여인의 속마음을 대변하는 것 같다.

 

몽환적인 그림처럼 절로 감탄이 나오는 영상이다.

그만큼 헤인즈 감독은 시대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우아한 영상에 공을 들였다.

 

이를 위해 그는 일부러 입자가 두드러진 슈퍼 16mm 필름으로 영화를 찍어 35mm 필름으로 옮기는 방법을 썼다.

슈퍼 16mm는 35mm 필름처럼 입자의 밀도가 높지 않아 영상이 매끈하지 않고 오래된 사진처럼 거칠어 보인다.

 

더불어 등장인물들의 불안한 심리를 반영하듯 좁은 틈새로 인물들을 잡은 앵글도 특이하다.

물기에 젖어 인물의 윤곽이 번지는 장면이나 좁은 틈새를 활용한 영상은 루스 오킨, 헬렌 레빗, 비비안 마이어, 에스터 버블리 등 1950년대 여성 사진작가들과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참조했다.

 

한마디로 이 작품은 결이 고운 실크처럼 섬세한 연출력과 영상이 빛난 아름답고 우아한 영화다.

내용도 좋지만 모든 장면들이 유명 작가의 사진첩을 보는 것처럼 빛을 발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본편과 부록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하지만 인터뷰 위주로 구성된 부록은 중복된 내용이 많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화질이 좋다.

필름 특유의 입자가 두드러진 거친 영상은 하인즈 감독의 의도다.

 

전체적으로 아련하고 몽환적인 영상의 느낌과 색상이 제대로 살아있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소리의 이동성과 방향감이 좋아서 서라운드 효과를 제대로 발휘한다.

 

저음 또한 풍성하고 묵직하게 울린다.

부록으로 김혜리 씨네21 편집위원의 음성해설, 감독과 배우들, 제작진의 인터뷰가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부록들도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물기에 젖어 뿌연 영상은 1950년대 사진작가들의 사진을 흉내냈다.
대본을 쓴 필리스 나지는 뉴욕타임스에서 일할 때 원작자인 하이스미스를 인터뷰했다가 친해졌다. 하이스미스가 1995년 죽을 때까지 두 사람은 친하게 지냈다.
테레즈를 연기한 루니 마라는 이 작품으로 제68회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탔다.
감독은 1950년대 뉴욕 분위기를 위해 옛 건물이 많이 남아있는 신시내티에서 촬영했다. 캐롤의 친구 애비로 나온 사라 폴슨도 동성애자다.
카터 버웰과 랜달 포스터가 담당한 음악도 좋다.
아리플렉스 416 카메라로 촬영.
원작은 하이스미스가 두 번째 쓴 소설이다. 대본을 쓴 필리스 나지는 하이스미스가 죽고나서 2년 뒤 이 작품의 대본 작업을 맡았다.
틈새로 엿보는 듯한 앵글은 '하퍼스 바자' '라이프'지에 사진을 게재한 사울 레이터의 사진을 참고했다. 2013년 사망한 그는 틈새를 이용한 촬영, 유리창을 사이에 두고 인물이나 사물을 찍는 것을 즐겼다. 또 사람과 사물을 흐릿하거나 작고 어둡게 찍었다.
헤인즈 감독은 연출을 맡기 전까지 원작 소설을 몰랐다. 그는 촬영하면서 주변의 레즈비언 친구들에게 조언을 많이 구했다.
원작자 하이스미스는 동성애자였지만 남자들과 어울리는 것을 좋아했다.
남편이 이혼 소송 중인 아내의 뒷조사를 하는 내용은 원작자 하이스미스의 동성연인이 겪은 이야기다.
두 사람이 차를 타고 여행을 떠나는 장면은 '델마와 루이스'를 연상케 한다. 원래 이 작품은 2012년 촬영 예정이었으나 테레즈 역의 미아 바시코프스키와 존 크롤리 감독이 그만두면서 연기됐다.
여러가지를 암시하는 캐롤의 미소. 하이스미스는 생전에 자신의 소설을 토대로 만든 영화들을 대부분 좋아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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