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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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락천사 (블루레이)

울프팩 2014. 7. 22. 00:01

킬러는 오랫동안 함께 일한 여인을 사랑하게 된다.

하지만 더 이상 사랑을 이어갈 수 없다고 생각한 그는 여인과 마지막 약속을 한다.

 

여인은 망부석처럼 앉아서 기다리지만 그는 끝내 나타나지 않는다.

대신, 애잔한 노래가 스크린을 가득 채운다.

 

'당신을 잊었어.

모든 것을 잊어버렸어.

살아갈 의미 조차 잊어 버린 채

나 자신도 잃어 버렸어...'

 

왕가위 감독의 스타일리시한 영화 '타락천사'(1995년)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바로 관숙이, 셜리 콴이 부르는 노래 '망기타'(忘記他)이다.

'그를 잊었다'는 뜻의 제목이 말해주듯 이 노래는 가슴 시린 이별가이다.

 

영화 속에선 두 번 등장한다.

한 번은 킬러인 여명이 파트너인 이가흔과 이별할 때, 또 한 번은 여명이 이가흔을 잊기 위해 거리에서 만난 막문위와 뜨거운 키스를 나눌 때 흘러 나온다.

 

정작 영화 내용보다 관숙이의 '망기타'가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은 그만큼 이 노래가 주는 인상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아니, 노래와 영상의 궁합이 아득하리만치 잘 맞아 떨어졌다.

 

영화 속에는 다섯 젊은이들의 얼키고 설킨 사랑이 주를 이룬다.

킬러와 그를 사랑하는 두 여인, 말 못하는 청년과 그의 첫 사랑 여인이다.

 

서로는 엇갈린 사랑에 가슴아파하지만 어느 순간 그들은 자신들의 또다른 인연을 만난다.

그만큼 위태롭게 흔들리면서도 쓰러지지 않는 그들의 모습과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과정이 세기말을 앞둔 홍콩 젊은이들의 불안한 심리를 잘 대변하고 있다.

 

특히 당시 홍콩은 중국 반환을 앞두고 불안감이 더욱 가중되던 시기였다.

왕가위 감독은 이를 특유의 한껏 멋부린 스텝프린팅 영상과 사선으로 기운 앵글, 뛰어난 음악 선곡으로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했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을 덮는 강력한 한 방의 펀치는 바로 관숙이의 '망기타'이다.

그만큼 이 노래는 이 작품의 모든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탁월하다.

 

오죽했으면 박정대 시인은 '망기타'라는 제목의 시까지 썼다.

'나 지금 망기타를 듣고 있어.

영화 타락천사에서 관숙이가 불렀던 그 노래.

나 지금 줄 하나 끊어진 내 기타 옆에 물끄러미 앉아

망연히 망기타를 듣고 있어...'

 

더불어 이 노래를 들으면 어떤 여인이 생각난다.

가슴아픈 기억을 지녔던 그 사람은 유독 이 노래를 좋아했고, 관숙이의 이 노래가 들어 있는 'all time favourites' 앨범을 추천했다.

 

이 음반의 들어있는 곡 중에 '把歌談心'이라는 노래도 '망기타' 못지 않게 훌륭하다.

'노래로 마음을 전한다'는 뜻의 이 노래 역시 망기타처럼 애잔하면서도 아름답다.

 

참고로, 엔딩타이틀이 흐를 때까지 영화를 지켜 보면 반가우면서도 색다른 또 한 곡의 노래를 만날 수 있다.

1980년대에 열심히 음악을 들었다면 너무나도 유명한 야주의 'only you'이다.

 

그들을 유명하게 만든 'don't go'가 들어 있는 음반에 함께 수록된 곡인데, 이 영화에서는 원곡이 아닌 flying pickets가 가벼운 스타일로 편곡해 다시 불렀다.

 

1080p 풀HD의 1.78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안타깝게 화질이 좋은 편은 아니다.

전체적으로 지글거림이 심하고 영상이 뿌연 편이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뛰어난 건 아니지만 후방에서 총소리가 들리는 등 리어를 적절하게 활용했다.

부록은 전혀 없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킬러를 연기한 여명과 그의 오랜 파트너이자 살인 청부를 담당하는 여인 역의 이가흔. 

총격전에서는 두 가지 촬영 패턴이 보인다. 총을 렌즈 앞으로 바짝 끌어 당긴 채 그 너머로 킬러의 얼굴을 잡거나, 킬러의 어깨 너머로 총격전을 바라보는 오버 쇼울더 샷이다. 

불안하게 사선으로 기운 앵글이 홍콩 반환을 앞둔 사람들의 불안한 심리를 대변하는 듯 하다. 시계, 쥬크박스 등 비슷한 시기 그가 제작한 작품들에서 자주 보이는 소품들이 이 작품에서도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이 작품은 코닥보다 입자감이 두드러져 보이는 후지필름으로 촬영했다. 촬영은 크리스토퍼 도일이 맡았고, 일부 장면은 두가풍이 찍었다. 

말 못하는 청년을 연기한 금성무. 미술은 왕가위 감독과 여러 편을 함께 한 장숙평이 맡았다. 

시계, 쥬크박스 외에도 사랑하는 사람의 빈 방을 청소해 주는 여인 등 '중경삼림'의 이미지와 중첩되는 부분이 많다. 

말 없이 사랑하는 남자를 기다리는 여인의 모습에서 갑자기 흑백 영상으로 바뀌며 가슴 아픈 노래, '망기타'가 흘러 나온다. 

여명이 막문위를 만나는 장면에서 반가운 한글이 보인다. 마치 옛 여인을 일부러 잊기 위한 듯 여명이 막문위와 뜨거운 키스를 나누는 장면에서도 '망기타'가 다시 흐른다. 

그룹 잼의 멤버였던 윤현숙처럼 보이는 장면. 이 작품에서도 스텝 프린팅 촬영 기법이 쓰였다. 

이 장소, 왠지 낯익다. '중경삼림'에서 새로운 인연이 시작되던 카페를 닮았다. 

관숙이의 '망기타'는 '타락천사' OST에는 들어 있지 않다. 이 곡은 원래 고인이 된 대만 가수 등려군이 발표해 인기를 끌었다. 작사 작곡자는 '천녀유혼''영웅본색''소오강호' 등 유명 영화의 음악을 담당한 황점이다.

타락천사 :HD 텔레시네
왕가위 감독/금성무 출연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타락천사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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