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반칙왕 (블루레이)

울프팩 2014. 7. 20. 23:07

1970년대 흑백 TV 시절 최고의 스포츠 중계방송은 단연 프로레슬링이었다.

레슬링이 있는 날이면 집으로 뛰어들어와 책가방을 던져두고 TV 앞으로 달려갔던 기억이 난다.

 

김일, 여건부, 천규덕 등은 당대 최고의 영웅이었고 상대적으로 일본의 이노키 선수는 최고의 악당이었다.

레슬링 인기가 얼마나 높았던지, 일본에서 만든 '타이거마스크'라는 TV 만화영화도 들여와 방송했다.

 

김지운 감독의 '반칙왕'(2000년)은 과거 레슬링에 대한 향수가 어린 작품이다.

특이하게도 70년대 최고의 인기를 구가했으나 지금은 쇠락한 프로레슬링을 통해 현대인들의 꿈과 삶의 희망을 이야기한다.

 

그만큼 웃음과 페이소스가 공존하는 작품이다.

그다지 유능하지 못한 은행원(송강호)이 어느 날 우연히 레슬링 도장을 발견하고 어린 시절 우상이었던 레슬링 선수가 되기 위해 노력하는 내용이다.

 

김 감독은 사각의 링 위에서 펼쳐지는 레슬링을 통해 사실상 정글이나 다름없는 약육강식의 경쟁이 펼쳐지는 현대인의 삶을 풍자했다.

그렇다고 마냥 무거운 내용은 아니다.

 

주인공이 레슬링을 배우는 과정과 시합 중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코믹해 웃음을 자아낸다.

이 작품에서 처음 주연을 맡은 송강호는 자연스러우면서도 유머러스한 연기를 능청스럽게 구사해 '초록물고기' '넘버3'에 이어 그의 스타성과 존재감을 유감없이 과시했다.

 

더불어 배우들이 몇 달간 고생하며 익힌 레슬링 기술 덕분에 송강호와 김수로가 펼치는 레슬링 장면은 실제 시합 못지않게 실감 난다.

송강호 외에 이 작품에서는 가능성을 보인 여러 스타들이 눈에 띈다.

 

김수로는 물론이고 박상면, 이원종, 정웅인, 신하균, 고호경 등 낯익은 얼굴들이 나오고, 훗날 '신세계'에서 카리스마 넘치는 연기를 보인 박성웅도 단역으로 등장한다.

그리고, 이제는 고인이 된 장진영의 꽃 같은 한 때를 볼 수 있다.

 

아울러 어어부밴드가 독특하게 편곡한 '미소를 띄우며 너를 보낸 그 모습처럼'과 '사각의 진혼곡' 등 음악도 영상과 잘 어울렸다.

1080p 풀 HD의 16 대 9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는 화질이 DVD에 비해 깨끗하게 개선됐다.

 

색감도 비교적 잘 살아 있는 편.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요란한 후방 사운드 덕분에 서라운드 효과가 잘 살아 있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배우 및 감독 인터뷰, 김지운 감독 음성해설 등 DVD에 들어 있는 부록 외에 추가로 블루레이 출시 기념 인터뷰와 김지운 감독, 홍경표 촬영감독, 송강호가 다시 모여 녹음한 추가 음성해설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초반 지하철 5호선 고덕역이 보인다. 주인공이 근무하는 은행은 지금은 사라진 한미은행 명일동 지점에서 촬영. 한미은행은 2004년 씨티은행에 매각됐다.
체육관 장면은 조치원역 앞 권투도장에서 찍었다. 국내 유일의 양철로 만든 체육관이다.
불량 청소년으로 나온 신하균과 고호경. 홍대 근처에서 촬영.
송강호는 레슬링 장면을 위해 3개월간 훈련했다. 이 작품의 홍콩 개봉시 주성치가 주인공 더빙을 맡았다.
주인공의 꿈에 나타나는 마스크를 쓴 무서운 상대는 얼굴이 나오지 않지만 '신세계'에서 조폭 두목을 연기한 박성웅이다.
이 장면에서 송강호의 모자 등 외양은 피터 셀러스의 1960년대 유명한 코미디 영화 '핑크팬더'를 패러디했다. 이 장면에서 송강호는 의자가 부러져 실제로 역기에 깔렸다.
체육관 청년으로도 잠깐 등장한 박성웅. 그는 검은 마스크의 레슬링선수 등 2가지 역을 맡았다.
이 작품은 당시 33세였던 송강호의 첫 주연작이다. 원안은 '음란서생'으로 감독 데뷔한 김대우 감독이 썼고, 김지운 감독이 대본으로 만들었다.
레슬링 장면 감수는 프로레슬링 선수 이왕표가 맡았고 무술지도는 정두홍이 담당했다. 코브라 트위스트를 연습하는 장면은 촬영 당시 즉석에서 나온 아이디어였다.
백드롭을 연습하다가 장진영이 목을 다치는 장면은 실제 다친 NG 장면을 사용했다.
영화음악을 맡은 어어부밴드가 룸살롱 장면에 노래 반주 밴드로 잠깐 등장.
강력한 맞수 역할을 맡은 김수로.
초당 360프레임을 찍는 포토소닉 4ER 카메라로 고속 촬영한 장면. 이 카메라의 하루 대여료는 당시 1,500만원이었다. 반칙왕이 공중회전 하는 장면은 대역이다. 이 대역배우는 여러 작품에서 성룡의 대역 배우로 유명하다.
당시 노지심 등 현역 프로레슬링선수들도 상대역으로 등장했고 무술감독 정두홍이 심판을 연기했다.
시합 장면은 성남 실내체육관에서 엑스트라 500명을 동원해 열흘 간 찍었다. 당시 김수로는 링에서 바깥으로 몸을 날려 덮치는 장면을 찍다가 바닥에 떨어져 눈물을 흘렸다고 한다.
가짜 포크가 진짜로 뒤바뀌며 이원종의 이마에서 피가 솟구치는 장면은 감독이 좋아한 만화 '이나중 탁구부'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