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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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괴공작원

울프팩 2013. 4. 6. 22:55
유니버셜에서 내놓은 '히치콕 콜렉션'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은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유니버셜과 계약을 맺고 처음 만든 작품이기 때문.
뿐만 아니라 영국 출신인 그가 미국에서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다룬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히치콕은 신고식을 화끈하게 준비했다.
억울하게 테러리스트 누명을 쓴 주인공이 파괴 행동을 일삼는 나치로 의심되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으로,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무대도 후버댐, 자유의 여신상 등 미국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다.
마침 영화 개봉 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분위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

주인공이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범인을 찾는 과정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흥미진진하게 펼쳐진다.
그렇지만 이야기가 정교한 편은 아니다.

아무 의심없이 무조건 주인공을 돕는 선한 사람들이 너무 많아 작위적이고, 잡혔던 주인공이 느닷없이 길거리에 서 있는 등 황당하게 설명이 생략된 부분들이 있다.
그런데 이 또한 히치콕의 노림수다.

그렇지 않아도 촬영 당시 제작진이 "관객들이 주인공의 탈출 과정을 궁금해 하지 않겠냐"고 물었더니, 히치콕은 "관객들은 결코 묻지 않을 것"이라며 넘겼다.
중요한 것은 플롯의 정교함 보다 서스펜스의 유지라고 생각한 점도 있지만, 이야기를 설명하기 귀찮아서 넘긴 것도 있다.

미국인들의 애국심 고취에 적극 나선 히치콕에게 관객들도 열렬히 호응해 이 영화는 꽤 흥행에 성공했다.
덕분에 히치콕도 두둑한 보너스를 약속 받았다.

유명한 스타도 없고, 기발한 소재도 아니지만 스릴러의 대가인 히치콕의 진수를 충분히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4 대 3 풀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오래 전 작품이어서 화질에 한계가 있다.
그나마 흑백영상이어서 거친 영상이 비교적 많이 묻힌 편.
부록으로 제작과정이 한글 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주인공 베리 케인을 연기한 로버트 커밍스. 원래 히치콕은 헨리 폰다를 원했으나 제작비가 모자라 조엘 맥크리를 거쳐 로버트 커밍스에게 돌아갔다.
공작원의 파괴 행동으로 불타는 비행기 공장의 비행기들은 모두 그림이다. 히치콕은 한 장면을 5초 이상 계속 보여주지 않으면 사람들이 정확하게 파악하기 힘들다는 점을 잘 알고 있었다.
불타는 공장에서 화재 진압을 하다가 타죽는 주인공의 동료는 배우가 아니라 조명팀 스탭이 연기했다. 공장은 유니버셜 스튜디오의 창고건물이다.
히치콕은 그림을 잘 그려 영화 장면을 그림으로 곧잘 표현했다. 히치콕은 '영웅은 검은 머리, 여주인공은 금발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갖고 있어서 그의 작품은 대체로 이런 구성을 따른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프리실라 레인. 원래 여주인공은 바바라 스탠윅과 마가렛 설리반을 고려했으나 제작비 부족으로 레인에게 돌아갔다. 빅밴드에서 노래를 불렀던 레인은 워너브라더스 소속이어서, 주연인 로버트 커밍스보다 이름을 앞에 쓰는 조건으로 출연했다.
남녀 주인공이 얻어 탄 서커스단 트럭의 난쟁이는 히틀러를, 리더는 루즈벨트를, 다른 단원들은 내부적으로 분열된 유럽국가를 상징한다.
극중 광고모델인 여주인공 캐릭터는 히치콕의 친구 중에 모델 겸 미용컨설턴트였던 아니타 콜비를 모델로 했다.
자신의 작품에 카메오로 즐겨 출연한 히치콕은 이 작품에서도 진열장을 들여다보는 행인으로 출연. 그러나 자세히 봐도 알아보기 힘들다.
히치콕은 악당 두목을 연기한 오토 크루거를 못마땅하게 생각했다. 원래 히치콕은 이 역할을 해리 캐리에게 맡기려고 했으나, "철저한 매국노를 연기해 달라"는 감독의 부탁을 불쾌하게 여긴 캐리가 거절했다. 이후 하와이에 살던 존 할리데이에게 넘어갔으나 진주만 공습으로 여행 제한이 걸려 출연하지 못했다.
악당의 독백을 롱테이크로 잡은 장면. 히치콕은 이 작품을 찍으며 배우들에게 많은 지시를 하지 않았지만 크루거에게는 예외였다. 히치콕은 크루거에 대해 "틀에 박힌 악역으로 관객에게 아무 충격도 주지 못했다"고 꼬집었다.
촬영 당시 유럽행 수송선 노르만디호가 뉴욕항에서 화재로 전복되는 사고가 발생했는데, 이를 본 히치콕이 유니버셜 뉴스팀에 급히 연락해 차로 달리며 촬영하게 한 뒤 이를 영화에 사용했다. 히치콕은 배 폭파 장면에서 카메라를 갑자기 아래로 내려 사람들이 위로 솟구쳐 날아가는 듯한 효과를 냈다.
극장으로 뛰어든 악당이 영화 속 총격전 장면에 맞춰 경찰과 총격전을 벌이는 장면은 아이디어가 기발하다. 히치콕은 이 장면을 뉴욕 라디오시티뮤직홀에서 찍었는데, 극장 경영진이 극장에서 살인이 일어나는 장면에 반대해 극장이 어디인 지 알아보지 못하도록 편집했다. 이 장면 때문에 뉴욕시시회를 라디오시티 뮤직홀에서 하지 못했다.
히치콕은 여우주연인 프리실라 레인에 대해 "귀엽고 상냥하지만 히치콕 영화에 어울리지 않는 타입"이라고 평했다. 히치콕은 서커스 트럭이 늘어선 장면을 다 빈치 그림의 원근법처럼 화면에서 뒤로 갈수록 작은 트럭을 배치하고, 사람 또한 화면 앞쪽은 중키, 중간은 난쟁이, 뒷쪽은 판지로 만든 모형을 세우는 방법으로 깊이감을 부여했다.
자유의 여신상 손과 횃불은 실제 크기의 모형을 만들어 촬영. 횃불 난간 넘어로 떨어져 매달리는 장면은 스턴트맨이 안전장치를 전혀 하지 않고 연기했다.
주인공 이름 케인은 히치콕이 '시민 케인'에 대한 오마주로 붙였다. 히치콕은 로버트 커밍스를 처음에는 "외모에서 고뇌가 느껴지지 않는다"고 불평했으나, 연기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했다. 커밍스는 히치콕의 '다이얼 M을 돌려라'에도 출연했다.
악당의 추락 장면은 히치콕식 기발한 아이디어의 소산이다. 등받이 없는 의자에 앉은 배우가 뒤로 넘어져 허우적거리는 순간 카메라가 12미터 높이의 천장으로 솟구치며 추락장면을 표현했다. 이 장면은 특수효과 카메라맨인 존 풀턴이 찍었다.
히치콕 콜렉션 블랙디지팩 (로프 나는비밀을알고있다 싸이코 의혹의 그림자 파괴공작원 이창 해리의 소동) 7Disc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
히치콕
윤철희 역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