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

울프팩 2012. 11. 2. 20:19

1,00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하니, 누군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는 그렇게 구를수록 점점 커지는 눈덩이처럼 소문으로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다.

순전히 입소문 만은 아니다.
CGV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이름에 '광'자와 '해'자가 들어간 사람을 끌어모으는 등 각종 마케팅까지 더해진데다, 대종상 시상식에서 무려 15개 상을 싹쓸이한 효과도 있다.

그 바람에 욕도 많이 먹지만, 무턱대고 욕만 먹을 영화는 아니다.
나름 그럴듯한 상상력에 적절한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볼 만 하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재위 기간 중 사라진 15일을 순전히 상상해서 지어낸 이야기는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다.
왕이 암살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바꿔 똑같이 생긴 허수아비를 내세우는 내용은 신분바꿔치기의 원조인 마크 트웨인의 '왕자와 거지'부터 그림자 무사를 내세우는 구로사와 아키라 감독의 '카케무샤'까지 여러 작품에 쓰인 테마다.

여기에 차별화를 위해 우리 식으로 적당한 에피소드를 섞어 웃음을 자아낸다.
그러나 백성을 위하는 마음이 앞서는 가짜 왕을 돋보이게 하기 위한 몇몇 장치들은 일부러 눈물을 짜내려 드는 듯 지나치게 작위적이다.

그다지 정교하지 못하고 재미에만 치중한 이야기에 비해 의상, 미술, 조명 등 영화적 장치들이 오히려 돋보인다.
조선시대 복식도 근사하다는 생각이 들만큼 매끈하게 빠진 의상의 선과 색, 그리고 궁정의 위엄과 쓸쓸함이 함께 살아나는 공간, 이를 잘 받쳐주는 조명 등 영상에 빠져들게 된다.

블루레이 타이틀로 나오면 미술과 의상, 조명 등을 눈여겨 볼 만 하다.
이병헌 류승룡 등 배우들의 연기도 영화에 빠져들게 할 만큼 흡입력 있다.

그래도 15개 상을 독식할 만큼 빼어난 걸작은 아니다.
이처럼 영화적 장치를 제외하고 극적으로 과장된 이야기에 빠져드는 것은 결국 살기 힘든 시대에 사람들을 행복하게 해 줄 지도자에 대한 갈망이 아닐까 싶다.

하지만 시대가 달라졌고, 더이상 제왕적 리더십이 통하지 않는 민주주의 시대에 영화 속에서 성군으로 비쳐진 광해 같은 지도자를 꿈꾸는 것은 상상으로나 가능한 일이다.
함성득 교수의 말마따나, 지금은 정부 국회 등 입법기관들과 합의를 통해 정책을 끌어내는 입법적 리더십이 필요한 때이다.

그런 면에서 오히려 영화 속 광해는 맞지 않을 터.
광해는 지금의 국무회의 격인 상참에서 중신들의 의견을 짓누르는 독재적 기질을 엿보였다.

지금은 상참에서 중신들이 좋은 의견을 내놓을 수 있도록 만드는 지도자가 필요하다.
즉, 좋은 팀을 꾸려 과감히 권한을 나눠주고 여기 맞는 책임을 부여해 선정을 베푸는 통합의 지도자다.

이번 대선에선 백성 입장을 우선 생각하는 영화 속 광해의 마음을 갖되, 정치는 운영의 묘를 발휘하는 그런 지도자가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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