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피에타

울프팩 2012. 9. 7. 17:05
김기덕 감독의 작품이 주는 매력은 위악성에 있다.
그의 데뷔작인 '악어'부터 '섬' '야생동물보호구역' '파란대문' '나쁜 남자' 등 초기 작품들은 인간의 내면에 잠재된 야수성과 폭력성을 고스란히 드러낸다.

살아남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악해져야 하는 등장인물들은 도덕적 위선이나 정치적 계산을 하지 않는다.
그런 점에서 작품 속 위악적인 캐릭터들은 더 없이 순진하고 단순하다.

다만 표현방법이 잔혹하고 과격해 비판을 받지만 그런 부분들은 우리가 굳이 드러내고 싶지 않는 속살같은 부분을 파헤친 데 대한 불편함과 충격의 표현일 수 있다.
그렇다고 그의 작품이 파격적 내용에만 그치지는 않는다.

그들만의 독특한 방식으로 살아가는 위악적인 캐릭터들이 작품 속에서 끊임없이 흔들리는 모습 속에 언뜻 언뜻 보통 사람들의 고민과 살아가는 방식이 보인다.
범상치 않은 인물들을 통해 보통 사람들의 삶을 그만의 방식으로 돌아보는 것이 바로 김기덕 감독 작품이 주는 매력이요, 메시지다.

그래서 한없이 내면으로 침잠했던 '활' '숨' '시간' '비몽' 등 나중 작품들은 실망스러웠다.
이 작품들에선 초기 작품에서 보여준 김기덕 특유의 위악성이 보이지 않았다.

그렇기에 이번에 개봉한 '피에타'가 더 없이 반가웠다.
초창기 김 감독의 작품에서 보여준 위악성이 살아 났기 때문이다.

돈을 갚지 않으면 사람을 불구로 만들어 보험비를 대신 가져가는 악독한 사채업자 강도(이정진)가 과거 자신을 버린 어머니(조민수)를 만나 구원에 이르는 과정을 담았다.
하지만 영화는 뻔한 줄거리로 치닫지 않는다.

김 감독 특유의 비틀기와 거친 야수성이 주인공 강도를 통해 핏빛 영상으로 드러나고, 캐릭터들의 관계가 충돌을 빚으면서 영화가 얘기하려는 메시지가 거대한 충격으로 베일을 벗는다.
이 과정에서 김 감독 작품마다 늘 논란이 됐던 여성을 학대하다시피 하는 장면들도 어김없이 등장하고, 강도가 휘두르는 잔혹한 폭력이 몸서리쳐지게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과정은 제목 그대로 '피에타' 즉, 자비를 갈구하는 마리아의 구원을 위한 전주들이다.
다만 복수가 상대적이듯 구원도 상대적이다.

즉, 카톨릭식의 무조건적인 용서를 위한 구원이 아니라 김기덕 방식의 구원이다.
누구에게는 그 과정이 다른 단어로 불릴 수도 있겠지만 김 감독에게는 구원이다.

그래서 구원과 복수가 거대한 뫼비우스의 띄가 돼서 한바탕 소용돌이친다.
실로 김기덕 다운 구성과 표현이다.

다만 강도는 좀 더 위악적이었어야 했다.
때때로 채무자 앞에서 강도가 흔들리는 모습은 메시지가 흔들리는 요인이 된다.

여기에 일부 작위적인 장면은 극의 몰입도를 떨어뜨린다.
특히 조민수가 부르는 노래나 채무자의 기타 연주는 지나친 센티멘탈리즘이다.

김 감독은 그러지 않아도 된다.
그러지 않아야 그의 위악적인 작품 세계가 더 빛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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