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그리스 18

터키 시데

터키의 해안 도시인 시데는 자동차로 안탈리아에서 1시간 20분, 폭포가 있는 마나브가트에서는 20~30분 가량 걸린다. 이 곳은 푸른 하늘을 배경으로 바닷가에 우뚝 서있는 새하얀 로마시대 신전이 더 할 수 없이 아름다운 고대 유적지다. 안탈리아 일대에 들어서 있던 팜필리아의 항구도시로 발전한 시대는 시데탄이라는 독자 언어를 썼다. 이 언어는 청동기시대에 터키 남서부 아나톨리아 지역에 살던 사람들이 사용한 루비아어로 발전했다. 시데는 바로 루비아어로 석류라는 뜻이다. 그만큼 시데는 오랜 역사를 갖고 있다. 고대 그리스의 역사학자 헤카타이오스는 시데를 황소의 신 타우로스의 딸 이름이라고 주장했다. 기원전 540년경, 이 지역은 페르시아의 지배를 받았고, 기원전 334년에는 알렉산더 대왕에게 항복해 마케도니아..

여행 2014.05.05

비포 미드나잇 (블루레이)

제시와 셀린느가 돌아 왔다. '비포 선셋' 이후 9년, '비포 선라이즈' (http://wolfpack.tistory.com/entry/비포-선라이즈-비포-선셋)이후 18년 만이다. 세월의 두께는 두 사람의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났다. 호리호리하고 가냘펐던 제시(에단 호크)와 셀린느(줄리 델피)는 주름지고 배가 나왔으며, 결정적으로 두 사람 사이에 쌍둥이 자매가 태어났다. 그렇게 리차드 링클레이터 감독의 '비포 미드나잇'(Before Midnight, 2013년)은 두 연인의 속절없는 세월을 이야기한다. 영화는, 아니 영화 속 연인은 좀 더 현실적으로 돌아 왔다. 1편에서 사랑을 싹 틔우고, 2편에서 안타깝게 사랑을 보낸 그들은 3편에서 세월따라 변해버린 사랑을 이야기한다. 어느덧 아이들이 뛰노는 중년이 ..

지중해

가브리엘 살바토레 감독의 '지중해'(Mediterraneo, 1991년)는 모든 것을 놓아 버리고 싶은 영화다. 특히 요즘처럼 푹푹 찌는 여름이나 바쁜 일상에 쫓겨 심신이 지쳐있을 때 보면 영화 속으로 달아나고 싶게 만든다. 내용은 제 2 차 세계대전 때 그리스의 작은 섬에 상륙한 이탈리아 병사들이 평화로운 풍경에 취해 전장의 현실을 잊고 꿈 같은 나날을 보내는 이야기다. 어찌보면 무릉도원을 꿈꾸는 비현실적인 얘기라고 할 수 있겠지만, 놀랍게도 실화다. 영화는 실제로 제 2 차 세계대전 당시 그리스의 미기스티섬에 파견된 이탈리아 군인의 수기를 토대로 제작됐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미기스티섬에 찾아가 그림같은 풍경을 필름에 담았다. 눈이 시리도록 푸른 에게해, 그 위에 물새알처럼 점점히 떠있는 하얀 집들,..

제트(Z)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 후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제트'(Z, 1969년)가 제작된 지 20년 만에 국내에 들어 왔다. 그리스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야당 정치인의 암살을 다룬 내용은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상황이 흡사해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만큼 '제트'의 국내 개봉은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갈망 만큼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영화는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처럼 흥미진진하다. 정의로운 검사가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조직적 은폐와 사건 왜곡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아주 긴장감 넘친다. 특히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이를 다큐멘터리나 뉴스 보도처럼 들고찍기와 롱 샷, 클로즈업을 병행하며 현장감있는 영상으로 실감나게 재현했다. 단순 흥미를..

일요일은 참으세요

부부였던 줄스 닷신 감독과 멜리나 메르쿠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페드라'와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년)이다. 그 중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국내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주인공인 창녀를 떠받들고,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바람에 정작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은 멜리나 메르쿠리의 주제가도 국내에서는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실제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의외로 사회비판적인 정치색이 강하다. 영화 속에서 그리스 창녀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고 그리스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감이 강한 반면, 미국인 철학자는 잘난 체 하고 남을 무시해 타인의 삶을 바꾸려 든다. 결국 영화는 도덕적이고 평화주의자 행세를 하며 잘난척 하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