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김기덕 15

풍산개

전재홍 감독의 '풍산개'는 김기덕 사단이 만든 영화여서 관심을 끌었다. 말 그대로 제작, 각본을 김기덕 감독이 맡고 연출은 유명한 김흥수 화백의 외손자인 전재홍이 담당했다. 영화는 아니나다를까, 김기덕의 색깔이 짙다. 우선 소재부터 독특하다. 남과 북을 새처럼 자유롭게 오가며 돈받고 심부름을 해주고, 사람도 빼오는 특이한 인물이 주인공이다. 과거 '악어' '야생동물보호구역'처럼 일상에서 보기 힘든 특이한 인간군상에 집착하는 김기덕의 기질이 유감없이 발휘된 영화다. 다만 김기덕 특유의 잔혹 영상은 보이지 않는다. 그의 영화를 여성들이 불편해 한다는 점 때문에 의도적으로 수위를 낮춘 것도 있지만, 상황보다는 캐릭터 내면에 집착하는 전재홍의 색깔이 많이 배어 있기 때문이다. 소재가 독특하다보니 이야기를 끝까지..

비몽

언제부턴가 뜻한대로 되지는 않고 이 땅의 사람들은 그를 알아주지 않는데, 외국의 기대치는 높다. 그래서 아마 김기덕 감독은 혼란스러웠을 것이다. 그의 작품이 서서히 변해간다고 느낀 것은 '해안선'부터였다. 이전 작품인 '악어' '파란 대문' '섬' '수취인 불명' '나쁜 남자' 등은 현실에 뿌리를 두고 부조리와 치열하게 싸웠기에 공감이 갔고 과격한 표현 방식 또한 그만의 독특한 미학으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런데 지나친 비판이 독이 됐던가. '해안선' 이후 그의 작품들은 그의 내면으로 파고 들기 시작했다. 그래도 '봄여름가을겨울 그리고 봄' '시간' 등은 그런대로 대중들이 이해할 수 있는 이야기구조(내러티브)를 갖고 있는데 비해 '해안선' 이후 나머지 작품들은 대중과 괴리돼 있다. '비몽'도 마찬가지다..

영화 2008.10.11

시간

'섬' '악어' '나쁜 남자' '파란 대문' 등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은 대체로 낯설고 불편하다. '시간'(2006년)도 마찬가지다. 애인의 사랑을 잡아두기 위해 끊임없이 성형 수술을 하는 여인때문에 빚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진정한 사랑이란 과연 무엇인 지 진지하게 묻고 있다. 한편으로는 끊임없이 외형을 바꿔 새로움을 추구하는 여인의 모습을 통해 성형중독에 빠진 세태를 비꼬고 있다. 결국 새로움을 추구하다가 서로의 정체성과 과거의 추억까지 모두 잃어버린채 서로 낯선 존재로 남게된 연인의 모습은 섬뜩하다. 과거 작품들에서 외부로 표출됐던 인물들의 분노가 이 작품에서는 자학하듯 얼굴을 뜯어고치는 식의 인물 내부로 향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이 작품의 언론시사회 직후 "앞으로 한국에서 영화를 개봉하지 않..

김기덕 감독은 '성스러운 피'를 만든 알레한드로 조도로프스키나 '집시의 시간'을 만든 에밀 쿠스트리차 감독을 좋아했다. 이유는 "영화란 익숙한 것보다 낯선 것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믿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런가, 그의 작품은 보편적 시각으로 접근하면 더없이 낯설고 기이하다. 그의 12번째 작품 '활'도 마찬가지다. 바다 위에 폐선처럼 떠있는 배 위에서 생활하는 노인과 소녀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두 사람에 대한 일체의 설명 없이 그들의 생활에만 초점을 맞춘다. 이들에게는 활이 유일한 오락기구요, 악기이자 무기요, 생활의 수단이 된다. 김 감독이 활을 주요 도구로 선택한 이유는 한 가지, 시위처럼 팽팽한 인생을 살고 싶다는 생각 때문이다. 이를 나타내듯 영화가 끝나면 엔딩 크레디트가 오르기 전에 "팽팽..

빈 집

'빈 집'(2004년)은 김기덕 감독의 작품치고 퍽이나 얌전하다. 우선 피가 거의 나오지 않고 잔혹하거나 가학적 장면도 별로 없다. 그런 점에서 '섬'이나 '나쁜 남자'처럼 김기덕 감독 특유의 그로테스크한 영상을 기대한 사람들에게는 실망일 수 있다. 그러나 이 작품도 예전 작품들처럼 범상치 않은 인물들을 다루고 있다. 여기 등장하는 주인공 태석(재희)은 빈 집만 골라다니며 마치 자기 집처럼 숙식을 하고 빨래까지 해주는 특이한 인물이다. 폭력적인 남편에게 시달리는 여자 선화(이승연)도 그를 따라다니다가 사랑에 빠지게 되는 인물로 흔치 않은 캐릭터다. 이처럼 독특한 인물이 만나서 한 집에 유령처럼 동거를 하는 내용은 판타지에 가깝다. 현실을 다루면서도 결코 현실 같지 않은 기이한 느낌을 주는 점이 김기덕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