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러시아 17

전쟁과 평화 (블루레이)

'자이언트'처럼 원작소설보다 더 잘만든 영화가 있는 반면, 원작소설 근처에도 미치지 못하는 영화도 있다. 킹 비더 감독의 '전쟁과 평화'(War And Peace, 1956년)는 후자에 속하는 영화다. 레프 톨스토이가 1864~1869년에 쓴 이 장편소설은 나폴레옹의 러시아 침공때 휘말린 다양한 등장인물들의 인생사를 다루고 있다. 등장인물만 600명이 넘는 대작인 만큼 내용이 워낙 방대해 쉽게 줄이기 힘든 작품인데 영화는 이를 약 3시간 20분 분량으로 압축했다. 그렇다보니 이야기 전개를 쫓아가기에 급급해 정작 톨스토이가 강조한 메시지를 모두 놓치고 말았다. 원작의 중요한 주제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다룬 삶에 대한 자세다. 귀족의 명예를 중시해 고귀하게 사는 삶을 중요하게 여긴 안드레이 공작이 전쟁을 겪..

이스턴 프라미스 (블루레이)

데이빗 크로넨버그 감독의 '이스턴 프라미스'(Eastern Promises, 2007년)는 그의 전작인 '폭력의 역사'(http://wolfpack.tistory.com/entry/폭력의-역사)와 닮은 이란성 쌍둥이 같은 작품이다. 어느날 우연히 병원에 실려온 어린 산모의 죽음에 얽힌 이야기를 여주인공이 풀어가는 내용. 그 과정에서 잔혹한 러시아 폭력조직의 실태가 드러나고, 이를 눈치챈 폭력조직은 여주인공을 향해 위협의 손길을 뻗친다. 크로넨버그 감독은 전작인 '폭력의 역사'에서 폭력이 주는 공포와 이를 극복하기 위해 폭력을 행사하는 이야기를 다뤘다. 언뜻보면 모순되고 서로 배치되는 이야기를 통해 폭력의 양면성을 다룬 전작처럼 이번 작품 역시 극한의 폭력이 주는 공포와 여기서 벗어나기 위한 주인공들의 힘..

인간의 운명

러시아의 거장 세르게이 본다르추크 감독이 만든 '인간의 운명'(Sudba Cheloveka, 1959년)은 묵직한 제목 만큼이나 선이 굵은 영화다. 원작은 '고요한 돈강'으로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러시아의 문호 미하일 숄로호프의 동명 중편 소설. 그야말로 거장과 거장이 영상으로 만난 작품이다. 내용은 가정을 이뤄 행복하게 살던 러시아 남성이 제 2 차 세계대전 발발과 함께 참전했다가 집안이 풍비박산나는 얘기다. 독일군에게 포로로 잡혀 비참한 생활을 하는 동안 아내와 딸은 독일군의 폭격으로 죽고, 하나 남은 아들마저 포병 장교로 근무하던 중 전사한다. 힘들게 죽을 고비를 넘기고 살아 돌아온 주인공은 하루 아침에 삶의 희망을 모두 잃어버린 셈이다. 그러던 중 전쟁통에 고아가 된 어린 소년을 발견하고, 어떻게든..

안나 카레니나 (블루레이)

'전쟁과 평화' '부활'과 함께 러시아의 대문호 레프 톨스토이의 3대 걸작 중 하나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는 그동안 10여차례에 걸쳐 영화와 드라마 시리즈 등으로 제작됐다. 그만큼 나중에 나온 영화들은 내용이 익히 알려졌으니 볼거리로 승부 할 수 밖에 없다. 얼마나 문학적 상상력을 영상으로 구현했는 지, 문학작품 최고의 여주인공으로 꼽히는 안나 카레니나를 얼마나 그럴 듯 하게 소화했는 지가 승부를 가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조 라이트 감독의 '안나 카레니나'(Anna Karenina, 2012년)는 절반의 성공이다. 조 라이트 감독이 워낙 미술과 의상 조명 구도 등 미장센에 공을 들이는 만큼 볼거리는 훌륭하다. 감독은 특이하게도 이 작품을 연극 무대처럼 꾸민 세트에서 대부분 촬영했다. 으례히 러시아 ..

파업

예전 대학 시절 학교에서 '파업 전야'라는 16미리 영화를 본 적이 있다. 장산곶매라는 영화집단이 만든 작품이었는데, 열악한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공장노동자들이 파업을 일으키는 내용이다. 이 영화를 학교에서 본 이유는 당시 정권에서 극장 상영을 금지했기 때문이다. 결국 대학가를 돌며 상영을 했고, 경찰은 이를 막으려고 최루탄을 뿌리며 생난리를 떨었다. 당시 극장에서 봤던 상업영화들과 달라 꽤 충격적이었는데, 영화를 함께 지켜 본 주연배우 홍석연에게 싸인까지 받았던 기억이 난다. 그때 작품에서 받은 인상이 하도 강렬해서 싸인을 해준 홍석연을 지금도 기억하는데, 그는 이후에 영화 '친구' '넘버3' '도가니' 등 여러 편의 상업영화에 단역으로 나왔다. 세르게이 에이젠슈타인 감독의 무성영화 '파업'(Stac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