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류승범 12

방자전 (블루레이)

'음란서생' '방자전'으로 이어지는 김대우 감독 작품의 묘미는 기발한 비틀기에 있다. 점잖은 양반들을 음란 소설 작가로 둔갑시킨 '음란서생'에 이어 '방자전'(2010년)에서는 진정한 로맨스의 주인공을 하인인 방자로 바꿔 놓았다. 헛웃음 나올 법한 황당한 설정이지만 그럴 법 하다는 개연성을 부여한 것은 탄탄한 구성이다. 양반이나 하인이나 똑같은 사람인데 어찌 미인을 보고 느끼는 사랑이 다를 수 있겠는가. 이 같은 의문에서 출발한 이야기는 결국 이도령과 방자, 춘향과 향단이 복잡하게 얽혀 돌아가는 고도의 심리 로맨스가 돼버렸다. 여기서 빛을 발하는 것은 김대우 감독의 비틀기다. 이도령은 유희 같은 사랑과 출세를 위해 여인을 이용하는 양반으로, 춘향 역시 팔자를 고쳐보기 위해 남자를 노리는 여인네로 나온다...

다찌마와리

류승완 감독의 '다찌마와리-악인이여 지옥행 급행열차를 타라'(2008년)는 아예 작정하고 만든 '쌈마이' 영화다. 첩보물인 007 시리즈의 구성을 따서 남자 주인공과 여자 첩보원이 만주와 미국, 유럽을 넘나들며 종횡무진 활약하는 내용이다. 언뜻 개요만 들으면 그럴듯한 액션이 연상되지만 정작 작품을 보면 실소가 터져나온다. 만주, 유럽, 미국으로 소개되는 풍경들은 차를 타고 오가며 본 것 처럼 어딘지 눈에 많이 익은 곳들이다. 여기에 굳이 자막을 보지 않아도 내용을 알 수 있을 듯한 일본어와 중국어, 심지어 요란한 총격전때 뜬금없이 터져나오는 심수봉의 '그때 그사람'까지 영화는 온통 B급 무비의 키치적 정서로 넘쳐난다. 특히 과장된 오버 연기는 거의 '총알탄 사나이' 수준이다. 그만큼 작정하고 들이댄 엉터..

라듸오 데이즈

하기호 감독의 데뷔작 '라듸오 데이즈'(2008년)는 여러모로 아쉬움이 남는 작품이다. 류승범, 김뢰하, 이종혁 등 괜찮은 배우들과 국내 최초의 라디오 방송국이라는 신선한 소재를 가지고도 제대로 영화를 살리지 못했기 때문이다. 너무 웃음에 집착한 탓이 아닐까 싶다. PPL과 광고 등 요즘 방송에서 벌어지는 일들을 30년대 라디오 방송에 덧입혀 풍자한 코미디는 독특했다. 여기에 배우들의 스캔들, 조금만 인기있으면 늘리는 연장방송과 여배우들의 주연 다툼 등 현대 방송극의 문제점도 날카롭게 꼬집었다. 그러나 아이들 학예회처럼 너무 난삽하게 이야기를 벌려놓다 보니 구성이 산만해졌다. 그나마 볼 만 한 것은 맨 마지막의 엔딩 타이틀 뿐이었는데, 이마저도 영화 '자토이치'를 흉내낸 감이 강하다. 2.35 대 1 애..

품행제로

고교를 진학하던 1983년에 교복 자율화가 됐다. 그전까지는 영화 '친구'처럼 검은 교복을 입고 머리를 밀고 다녔다. 그러다가 교복을 벗게되니 엄청난 충격이었다. 아이들은 제 세상을 만난 양 외모에 멋을 부렸고, 그 결과 '조다쉬' '나이키' '프로스펙스' '미즈노' 등 소위 학생들 사이에 알아주는 브랜드가 등장했다. 교사들은 학생들의 일탈을 막기 위해 방과 후에는 당구장, 오락실, 극장 순례가 일과처럼 주어졌다. 그마저도 숨이 막힌 학생들 가운데 일부는 화장실에 숨어 담배를 피웠고 담을 타넘어가서 술을 마셨다. 그러지 못한 학생들은 백판을 사다가 당시 금지곡들을 들었다. 애지중지하며 가방 속에 넣고 다녔던 워크맨도 당시 패션 아이콘이었다. 조근식 감독의 '품행제로'(2002년)는 혼돈과 추억의 80년대..

만남의 광장

역사를 희화화 할 때에는 당위성이 있어야 한다. 즉, 그럴 듯 해야 한다는 소리다. 특히 아픔이 큰 상처를 다룰수록 더욱 조심스러워야 한다. 그런 점에서 김종진 감독의 '만남의 광장'(2007년)은 참으로 무모한 영화다. 양 쪽에서 주민들이 철조망을 맡잡아 올려 조국이 분단되고, 이런 현실을 못견딘 주민들이 3km에 이르는 땅굴을 파서 왕래한다는 내용은 이색적일지는 몰라도 너무나 비현실적이다. 아무리 코미디라도 당위성이 떨어지면 억지 웃음이 된다. 그렇다보니 임창정, 류승범, 임현식, 이한위, 박진희 등 배우들의 천연덕스런 연기도 빛이 바랬다. 그래서 상영시간 내내 간헐적으로 소소한 웃음은 몇 번 있었지만 시종일관 유쾌하지는 못했다. 특히 막판 결말은 너무나 단세포적이다. 이도저도 해결할 방법이 없으면 ..

영화 2007.08.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