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블로그 103

강호정(블루레이)

1980, 90년대 무수하게 쏟아져 나온 홍콩 누아르는 감독에 따라 작품이 천차만별로 갈린다. 서극이나 오우삼 같은 감독들은 자기 개성을 살리며 스타일리시한 작품들을 만들었고, 왕가위 감독은 결이 다른 홍콩의 우수 어린 정서를 반영했다. 나머지 감독들 중에는 서극이나 오우삼의 영향을 받아 흥행을 노리고 흉내를 낸 사람들이 많다. 그나마 흉내를 잘 내면 다행인데 그렇지 못하면 아주 보기에 곤혹스러운 작품이 돼버린다. 1980년대 '영웅본색'이후 숱하게 쏟아져 나온 온갖 영웅 시리즈들이 대부분 그런 작품들이다. 당시 이런 작품들의 제목에 속아 비디오 가게에서 돈과 시간을 날린 씁쓸한 기억이 있다. 황태래 감독의 '강호정'(江湖精: Rich And Famous, 1987년)도 그런 허접한 작품 중 하나다. 1..

퀘벡시티의 다름광장

퀘벡시티의 명물인 샤토 프롱트낙 호텔을 중심으로 주변에 볼 만한 것들이 많이 있다. tvN 드라마 '도깨비'에 등장한 곳들은 아니지만 한 번쯤 가볼만한 곳들이다. 우선 호텔 바로 앞에 다름 광장(place d'Armes)이라고 부르는 자그마한 공터가 있다. 광장이라고 해서 꽤 넓은 공간을 생각하면 오산이다. 이 곳은 분수대 겸 동상인 진실의 기념탑(monument of the truth)을 중심으로 둘러선 나무들이 그늘을 만들고 주변에 벤치들이 놓여 있다. 다름 광장이 의미있는 곳은 퀘벡시티의 올드타운 관광은 이 곳을 기점으로 시작된다는 점이다. 광장 앞 버스 정류장에 온갖 관광버스들이 와서 사람을 내려놓고, 호텔 쪽에는 칼레슈라고 부르는 관광마차들이 서 있다. 칼레슈는 1인당 65 캐나다달러를 내면 약..

여행 2019.08.01

4등(블루레이)

한때 '2등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다'는 광고 문구가 유행한 적이 있다.그만큼 1등이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한 문구이지만 1등에 무섭도록 집착하는 우리 사회의 단면을 보여주는 말이기도 하다. 2등도 그럴진대, 하물며 4등은 말할 필요도 없다.특히 등수가 곧 미래요, 운명인 운동선수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정지우 감독의 영화 '4등'(2015년)은 제목 그대로 4등이 최고 등수인 어린 수영선수의 이야기다.초등학교 5학년생인 주인공 준호(유재상)는 열심히 수영 연습을 하지만 대회 성적이 늘 4등에 머문다. 수영에 소질이 있고 곧잘 하는데도 성적이 늘지 않자 엄마는 잘 가르치는 코치를 수소문해 아이를 맡긴다.한때 한국 기록을 수시로 갈아치울 만큼 주목받는 국가대표였던 수영코치 광수(박해준)는 국가대표 감독의 체..

'도깨비'의 공원들, 퀘벡시티

tvN 드라마 '도깨비'는 퀘벡시티의 공원 몇 군데에서 촬영을 했다. 가장 대표적인 곳이 거버너스 가든(governors' garden)이다. 이 곳은 샤토 프롱트낙 호텔 바로 옆, 뒤프랭 테라스의 대포들이 줄 지어 늘어선 뒤쪽에 있다. 드라마에서는 김신(공유)이 지은탁(김고은)을 다시 만났지만 신들의 장난으로 지은탁이 김신을 알아보지 못하자 답답함을 호소하는 장면이 나오는데 그 장면을 거버너스 공원에서 찍었다. 특히 두 사람이 나란히 걸으면서 첫 사랑에 대한 대화를 주고받는 장면이 나온다. "혹시 그거 알아요? 떨어지는 단풍잎을 잡으면 함께 걷던 사람과 사랑이 이루어진다는 걸." "하, 첫 사랑 그분이 얘기해 주셨나 봐요? 그런데 그걸 믿어요? 남자들은 호감 있는 여자한테 옛 여자 얘기하거든요. 바보처..

여행 2019.07.28

'도깨비'의 물리학, 투어니 분수와 의사당-퀘벡시티

질량의 크기는 부피와 비례하지 않는다. 제비꽃 같이 조그마한 그 계집애가 꽃잎같이 하늘거리는 계집애가 지구보다 더 큰 질량으로 나를 끌어당긴다. 순간, 나는 뉴턴의 사과처럼 사정없이 그녀에게로 굴러 떨어졌다. 쿵 소리를 내며, 쿵쿵 소리를 내며 심장이 하늘에서 땅까지 아찔한 진자운동을 계속했다. 첫사랑이었다. tvN 드라마 '도깨비'에 나온 김인육 시인의 시 '사랑의 물리학'이다. 김고은이 천천히 횡단보도를 건너 뛰어올 때 공유가 혼잣말 하듯 나지막이 읊조리던 시다. 그림엽서 같은 그 장면을 찍은 장소가 바로 퀘벡시티의 주 의희 의사당(Colline Parlementaire) 건너편 잔디밭이다. 의사당 앞 투어니 분수(Fontaine de Tourny) 뒤쪽으로 자그마한 잔디밭이 펼쳐지고 그 뒤에 성벽이..

여행 2019.07.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