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암살 7

26년

조근현 감독의 '26년'은 5.18 광주민주화 운동의 유족들이 모여 전두환 전 대통령을 단죄하는 내용의 영화라고 해서 기대가 컸다. 실제 역사와 상상을 어떻게 버무렸을 지 궁금했는데, 기대 이하로 실망스럽다. 강풀의 원작 만화를 보지 못해서 영화 내용이 원작에 얼마나 충실한 지 알 수 없지만 영화의 내용은 너무 치졸하다. 제작진의 역사 인식의 한계를 극명하게 드러낸 작품으로 주인공들의 단죄는 개인의 분노와 복수 이상을 넘어서지 못한다. 초반 5.18 항쟁 당시 개개인의 과거 사연을 만화로 처리해 현재 시점의 실사와 차별한 시도는 좋았지만 이후 이야기의 진행은 너무 답답하고 맥이 빠지게 흘러간다. 왜 그리 등장인물들의 사설은 길고 구구절절한 지 일장 연설을 듣는 것 같고, 막상 복수에 나선 행동은 마치 골..

영화 2012.11.30

제트(Z)

민주화 열기가 뜨겁던 1980년대 후반,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의 영화 '제트'(Z, 1969년)가 제작된 지 20년 만에 국내에 들어 왔다. 그리스의 독재정권에 항거하던 야당 정치인의 암살을 다룬 내용은 당시 박정희 독재 정권과 상황이 흡사해 국내에 들어올 수 없었다. 그만큼 '제트'의 국내 개봉은 민주화에 대한 뜨거운 갈망 만큼이나 상징적인 의미가 있었다. 영화는 묵직한 주제에도 불구하고 한 편의 추리소설을 읽는 것 처럼 흥미진진하다. 정의로운 검사가 경찰 고위 관계자들의 조직적 은폐와 사건 왜곡에도 불구하고 진실을 파헤치는 과정이 아주 긴장감 넘친다. 특히 코스타 가브라스 감독은 이를 다큐멘터리나 뉴스 보도처럼 들고찍기와 롱 샷, 클로즈업을 병행하며 현장감있는 영상으로 실감나게 재현했다. 단순 흥미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