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병헌 22

광해, 왕이 된 남자 (블루레이)

추창민 감독의 영화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가 돋보이는 점은 영리하게도 역사적 빈틈을 파고 들어 재미있는 이야기로 만들었다는 점이다. 영화는 조선왕조실록 광해군일기 중에서 재위 기간 15일이 비어 있는 점에 착안해 이야기를 만들었다. 내용은 끊임없이 암살을 의심했던 광해군이 자신과 똑닮은 가짜를 내세워 위기를 모면하는 줄거리다. 쌍둥이처럼 닮은 가짜를 내세워 암살 위험을 피하거나 다른 사람 행세를 하는 이야기는 마크 트웨인의 소설 '왕자와 거지', 구로자와 아키라 감독의 명작 '카게무샤'(http://wolfpack.tistory.com/entry/카게무샤) 등에서 일찍이 써먹었던 방법이어서 신선한 소재는 아니다. 제작진은 이를 자잘한 에피소드와 우리식 웃음으로 채워넣어 차별화를 꾀했다. 그..

중독

같은 날 같은 시각 다른 장소에서 형제가 나란히 자동차 사고를 당한다. 오래도록 혼수상태였던 두 사람 가운데 동생만 깨어난다. 그런데 몸은 동생인데, 생각과 행동은 형이다. 다른 사람의 몸에 영혼이 들어가는 빙의 현상이다. 주변 사람들은 혼란스럽다. 눈에 보이는 것을 부정하고, 다른 존재로 받아들이기란 쉽지 않기 때문이다. 특히 사랑이라면 더더욱 힘들다. 그러나 시동생은 자연스럽게 형수를 아내처럼 대한다. 결국, 형수는 부부끼리만의 비밀을 알고 있는 시동생을 남편의 현신으로 받아들인다. 하지만, 시동생은 정말 빙의일까. 이쯤되면 사랑이 아니라 광기다. 박영훈 감독의 영화 '중독'(2002년)은 등골에 소름이 돋을 정도로 무서운 사랑을 보여준다. 오래전부터 마음 속으로 사랑했던 사람을 갖기 위해 꾸미는 한..

광해, 왕이 된 남자

1,000만명의 관객이 들었다하니, 누군들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추창민 감독의 '광해, 왕이 된 남자'(2012년)는 그렇게 구를수록 점점 커지는 눈덩이처럼 소문으로 관객을 끌어 모은 영화다. 순전히 입소문 만은 아니다. CGV를 독점하다시피 하고, 이름에 '광'자와 '해'자가 들어간 사람을 끌어모으는 등 각종 마케팅까지 더해진데다, 대종상 시상식에서 무려 15개 상을 싹쓸이한 효과도 있다. 그 바람에 욕도 많이 먹지만, 무턱대고 욕만 먹을 영화는 아니다. 나름 그럴듯한 상상력에 적절한 유머를 섞어 재미있게 볼 만 하다. 하지만 조선왕조실록에서 광해군 재위 기간 중 사라진 15일을 순전히 상상해서 지어낸 이야기는 그다지 신선하지는 않다. 왕이 암살을 피하기 위해 신분을 바꿔 똑같이 생긴 허수아비를 내..

영화 2012.11.02

악마를 보았다 (블루레이)

[아래 캡처 화면에는 청소년관람불가 영화여서 잔혹 영상이 일부 들어 있으니 청소년들은 보지 마시기 바랍니다. 블로그 운영자가 자체 성인 인증 기능을 글에 붙일 수 없게 돼 있어 이런 글을 대신 띄웁니다.] 논란이 많았던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2010년)는 제목처럼 인간 악행의 끝을 보여준다. 뼈속부터 타고난 악마처럼 죄의식없이 살인을 저지르는 연쇄살인범 장경철(최민식)은 비정상적인 사이코가 아니면 할 수 없는 잔인무도한 짓을 벌인다. 여자들을 납치해 폭행하고 토막살인하는 것은 물론이고, 그의 친구들은 인육을 먹기까지 한다. 세상에, 악마적 상상력이 너무 끔찍한 것이 아니냐는 반론이 터져 나올만 하지만 어쩌랴, 지존파 막가파 사건 등을 보면 현실은 영화보다 더 참담하다. 결국 감독과 작가의 상상..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 감독의 '악마를 보았다'는 참으로 불편한 영화다. 살인마에게 애인을 잃은 사내가 복수에 나섰으니 얼마나 잔혹하겠는가. 때리고 찌르는 것은 보통이고 뼈를 부수고 살을 찢어 발긴다. 그 바람에 스크린은 시종일관 사내의 증오심이 뿜어내는 핏빛 복수로 새빨갛게 물든다. 그 속에서 등장인물들은 서로 악마를 본다. 죽이려 달려드는 상대에게서, 그리고 상대를 파괴하려 드는 자신의 내부에서 그들은 각자 악마를 본다. 관객은 그렇게 변해가는 등장인물들의 모습에서 인간 본성의 파괴라는 또다른 악마를 본다. 스크린 속에서, 스크린 밖에서 서로 악마를 보는 셈이다. 악마들의 향연은 절로 얼굴이 찌푸려질 만큼 끔찍하다. 인육을 먹고, 더러 개에게도 먹이는 장면은 재심의를 받기 위해 편집에서 걸러냈지만 정황상 추정이 가능..

영화 2010.08.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