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이와이 슌지 9

러브레터 (블루레이)

국내 개봉전인 1997년, 불법복제 비디오테이프로 처음 봤던 이와이 슌지 감독의 영화 '러브레터'(Love Letter, 1995년)는 사실 플롯이 정교한 영화는 아니다. 영화의 기본 골격은 산에서 조난당해 사망한 남자친구와 이름이 똑같은 사람에게 편지를 보내면서 남자친구가 과거 짝사랑했던 사연을 알게 되는 여인의 이야기다. 죽은 남자친구는 짝사랑했던 여인을 못잊어 똑같이 생긴 지금의 여자친구를 좋아한 것. 이해가 가지 않는 것은 그토록 좋아한 여인이라면 왜 한 번도 찾아가 고백하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오히려 똑같이 생긴 여자를 만나는 것 보다 서로 잘아는 사이인 여인을 찾아가 사랑을 얻는게 더 현실적이지 않을까. 생판 본 적도 없는 사람이 중학교 졸업앨범을 뒤져 찾아낸 주소로 편지를 주고 받는 것을..

피크닉

이와이 슌지 감독의 '피크닉'(1996년)은 '러브레터' '4월이야기' '하나와 엘리스' 등 순정만화처럼 곱디 고운 그의 작품들과 같은 분위기를 기대하고 본다면 깜짝 놀랄 수 밖에 없다. 이 작품은 어둠과 죽음, 상실의 비극이 혼재된 다크판타지다. 낭만적이고 서정적인 작품을 만든 이와이 슌지 감독에게는 양면성이 있다. 가슴 떨리는 사랑의 기억이 있다면 세상으로부터 달아나고픈 소외의 충동이 있다. 그래서 이와이 슌지 감독의 팬들은 전자를 '화이트 이와이'라고 부른다. '러브 레터' '4월이야기' 등이 대표적이다. 반대로 후자는 '검은 이와이'라고 부른다. '언두' '피크닉' '릴리 슈슈의 모든 것' 스왈로우테일 버터플라이' 등이 여기 해당하며, 이 작품들이 2005년 한꺼번에 국내 개봉했다. 그 중 '피크..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

유키사다 이사오(行定勲) 감독의 '세상의 중심에서 사랑을 외치다'(世界の中心で, 愛をさけぶ, 2004년)는 황순원의 '소나기'와 곽재용 감독의 '클래식' 분위기를 적당히 섞어놓은 듯한 영화다. 사람을 울리기로 작정하고 만든 슬픈 사랑 영화인 만큼 신파조로 흐르는 것은 당연지사다. 백혈병에 걸린 여고생과 첫사랑을 못 잊는 남자의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가타야마 쿄히치의 소설이 원작이다. 2001년 나온 원작은 출간 당시 관심을 끌지 못했으나 이 영화에 리츠코 역할로 나온 시바사키 코우(柴咲コウ)가 서적정보지에 소개하며 인기를 끌어 무라카미 하루키의 '상실의 시대'를 누르고 역대 일본소설 판매 3위에 올랐다. 영화는 히라이 켄이 담당한 음악, 특히 단아한 경음악들이 좋았고 '하나와 앨리스' '러브레터' '..

하나와 앨리스

이와이 슌지(岩井俊二) 감독의 최근작 '하나와 앨리스'(Hana & Alice, 2004년)는 가슴을 아련하게 만드는 이와이 슌지 감독 특유의 감성이 잘 살아난 작품이다. 두 여고생이 한 남학생을 사랑하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다룬 이 작품은 '러브레터' '4월 이야기'처럼 명쾌한 결론 없이 일말의 여백을 남겨두고 끝난다. 원래는 일본 네슬레사가 초콜릿 브랜드 광고를 위해 이와이 슌지에게 의뢰한 단편 3부작을 장편으로 늘린 것. 이와이 슌지는 이 작품에서 감독, 각본은 물론이고 음악까지 맡아 훌륭한 재능을 과시했다. 이 작품을 보면 감성도 외모처럼 타고날 수밖에 없다는 것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16 대 9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에 아쉬움이 남는다. 일본 DVD 특유의 뿌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