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일본 55

두더지

후루야 미노루(古谷実)의 만화 '두더지'는 우연히 발견한 걸작이다. 만화의 주인공 스미다는 중학교 3학년생. 그렇지만 중학생답지 않은 조숙함으로 세상을 냉소적으로 바라본다. 그의 꿈은 단 하나, 오로지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 또래 친구들처럼 돈을 많이 벌거나 유명해지는 것에 관심이 없다. 그저 험한 세상에서 한 몸 간수하는 평범한 사람이 되는 것이 주인공의 꿈이다. 그래서 그는 꿈을 묻는 친구에게 말한다. "난 두더지처럼 숨어 살 거야."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그의 삶은 더 할 수 없이 피폐하다. 어머니는 바람이 나서 집을 나가버렸고 아버지는 빚더미에 올라앉아 거리의 부랑자가 됐다. 결국 중3생 스미다는 학교를 포기하고 생활전선에 뛰어든다. 이 만화에 10여 년간 장기불황에 허덕인 일본인의 삶이 녹..

2005.01.17

바람의 파이터

양윤호 감독의 '바람의 파이터'(2004년)는 일본에서 극진 가라데를 창설하고 전 세계를 돌며 무술 고단자들과 대결을 벌인 최배달의 젊은 날을 다루고 있다. 방학기의 만화 '바람의 파이터'가 원작. 영화는 최배달이 일본에 밀항해 갖은 수모를 당한 끝에 산속에 들어가 혼자 무술을 연마하고 내려오면서 시작된다. 그때부터 그는 미야모토 무사시처럼 도장 격파에 들어간다. 전국 유명 도장을 돌며 무술인들과 싸움을 벌였던 것. 그렇게 이름을 날린 그는 훗날 자신의 경험을 살려 극진 가라데를 만든다. 젊은 날의 최배달을 연기한 양동근은 얼핏 보면 안 어울릴 것 같은데 그럭저럭 잘 소화했다. 싸움 장면도 그럴듯하게 처리를 해서 그런대로 볼 만하다. 예전 이 영화의 일본 현지 촬영을 취재 간 적이 있는데, 제작 현장을 ..

킨키 키즈 '硝子の少年'

1997년 일본 출장을 처음 갔다. 볼 일을 보고 틈이 나서 도쿄 시부야에 있는 HMV에 들렸다. 당시 국내에 일본 음반 판매가 금지된 시절이라 평소 듣고 싶던 일본 가수들의 음반을 사기 위해서였다. 우선 엑스재팬의 음반을 왕창 사들고 돌아다니다가 잘 나가는 싱글 음반만 모아놓은 곳을 보게 됐다. 거기서 맨 위에 꽂혀 있던 CD를 집어 들었는데 그게 바로 킨키 키즈(Kinki Kids)의 '硝子の少年'(유리 소년)였다. 그때는 도대체 이들이 누구이고 그 싱글 CD에 어떤 노래가 들어있는지도 모르고 무조건 샀다. 다행히 들어보니 리듬이 흥겹고 들을 만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이 노래가 이들의 최고 히트곡으로, 일본에서만 싱글 판매 약 180만 장 기록을 세운 곡이었다. 킨키 키즈는 1979년생인 도모토 코..

서든 올 스타즈 'Tsunami'

일본 그룹 서든 올 스타즈(Southern All Stars)의 노래 '츠나미'. 우리에게는 해일이라는 뜻의 쓰나미로 유명하다. 일본 드라마 '모토카레'(옛애인)에 쓰인 노래다. 얼마전 우리 나라에서 V.one(강현수)이 리메이크한 '그런가봐요'의 원곡. 1996년 일본 출장을 갔다가 PC통신 천리안 때문에 알게된 친구를 도쿄에서 만났다. 당시 그는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현지에서 유명한 광고기획사 PD로 몇 년째 일하고 있었다. 고국에서 찾아온 친구를 위해 바쁜 시간을 쪼갠 그는 마침 도쿄에 머물던 지인을 시부야 한복판으로 불러냈다. 불쑥 나타난 지인은 뜻밖에도 '그것은 인생'을 부른 가수 최혜영이었다. 나도 놀랐지만 내 직업이 기자라는 것을 알게 된 최혜영은 더 놀랐다. 그렇지만 낯선 땅에서 만난 동포..

춤추는 대수사선2-레인보우 브릿지를 봉쇄하라

1998년 일본에서 개봉해 700만 명 관객을 동원한 일본판 블록버스터 '춤추는 대수사선'의 속편. 전편과 마찬가지로 모토히로 카츠유키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춤추는 대수사선 2'(踊る大搜査線 The Movie2, 2003년) 역시 일본에서 8주 동안 2,000만 명 관객을 동원한 대히트작이다. 그렇지만 국내 성적은 신통치 않았다. 일본에서는 TV 드라마로 인기를 끄는 등 성공 배경이 충분했지만 국내에서는 인물도 낯설고 정서도 달라 관객에게 크게 어필하지 못한 듯싶다. 실제로 일본식 개그와 액션이 와닿지 않아 보는 내내 지루했다. 오히려 사건 수사보다 주도권 다툼을 벌이는 경찰 관료들의 신경전을 다룬 부분이 더 볼 만했다. 내용은 도쿄의 오다이바 지구를 관할하는 완간 경찰서 형사들이 연쇄살인범을 잡기 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