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조승우 9

불꽃처럼 나비처럼

김용균 감독의 '불꽃처럼 나비처럼'은 비운의 왕비 명성황후의 최후를 둘러싼 가상의 역사드라마다. 명성황후를 마음에 둔 무사가 최후까지 사랑을 위해 목숨을 바친다는 내용이다. 원작이 야설록의 무협소설이다보니 영화는 무협 드라마에 가깝다. 만화가 이현세와 스토리 작가로 단짝을 이뤘던 야설록은 '남벌'로 대표되는 민족적 색채가 강한 작가다. 경우에 따라서는 마초 성향이 두드러진 지나친 국수주의로 보이기도 한다. 이 작품은 명성황후 시해라는 일본의 극악무도한 행위 때문에 주인공이 람보처럼 설쳐도 지나친 국수주의나 마초로 보이지는 않는다. 하지만 원맨 히어로에 의존해 이야기를 풀어가는 과정은 결코 무협지의 범주를 뛰어넘지 못하는 한계를 갖고 있다. 특히 명성황후와 무사의 미묘하게 전개되는 감정선을 좀 더 꼼꼼하게..

타짜 (블루레이)

도박에 빠져드는 가장 큰 이유는 크게 한 탕 할 수 있다는 유혹 때문이다. 잘하면 한 방에 일어서는 것이고, 그렇지 못하면 인생이 한 방에 갈 수 있다. 최동훈 감독의 '타짜'(2006년)는 인생의 한 방 역전을 노리며 꽃노리패에 빠져드는 노름꾼들의 이야기다. 원작은 유명한 허영만의 만화. 최 감독은 '범죄의 재구성'과 흡사한 스피디한 화면으로 방대한 원작을 간결하게 압축했다. 속도감있는 MTV식 빠른 편집 스타일을 싫어한다면 눈에 거슬릴 수도 있지만, 전체적으로 도박장의 긴박한 분위기를 잘 살린 볼 만 한 작품이다. 조승우, 김혜수, 김윤석, 백윤식, 유혜진 등 개성 강한 배우들의 연기대결도 눈길을 끈다. 뭐니뭐니 해도 요즘 열애설로 관심의 대상이 된 김혜수, 유혜진이 우선 눈에 들어온다. 두 사람은 ..

말아톤 (CE)

흥행 성적이 전부는 아니겠지만 관객 520만 명이라는 수치는 여러 가지를 기대하게 만든다. 그러나 지나친 기대는 아니하느니만 못한 법, 실망이 크기 때문이다. 자폐아 마라토너 배형진 군의 실화를 토대로 만든 정윤철 감독의 '말아톤'(2004년)은 여러 가지를 생각하게 만드는 가슴 따뜻한 휴먼드라마다. 하지만 500만 명이나 들만한 영화인지 의문이다. 흔히 장애인들을 다룬 다큐멘터리나 드라마가 눈물에 호소하기 일쑤인데, 이 작품은 강요하는 듯한 감동과 적당한 거리를 두고 있다. 덕분에 차분하면서도 침착한 이야기 진행은 오히려 극적인 장면을 나열해 눈물을 짜내는 것보다 더 호소력 있다. 그렇지만 거꾸로 눈물샘을 자극하기를 기대한 관객들에게는 심심한 작품이 될 수도 있다. 어쩌면 장르영화의 도식을 피하기 위해..

하류인생

임권택 감독의 99번째 영화 '하류인생'(2004년)은 흑백 TV를 보는 느낌이다. 색상은 화려한 컬러지만, 그 안에 들어있는 내용은 1960~70년대 흑백 TV 시대의 정서를 담고 있다. 그만큼 그때는 세상 또한 흑과 백이었다. 독재에 반대하면 무조건 빨갱이가 되는 세상이었고, 돈이 없으면 하류인생이 되는 시대였다. 임 감독과 제작자 이태원 사장, 정일성 촬영감독은 이 같은 시대상을 필름에 담았다. 주인공 태웅(조승우)은 1950년대 말 자유당 정권 말기에 불량 학생으로 살다가 건달이 된다. 5.16 쿠데타 덕분에 군부와 줄이 닿아 건설업으로 돈을 만진 그는 우여곡절 끝에 1970년대 박정희 유신시대에 영화제작자로 변신한다. 이 과정에서 1950년대부터 1970년대를 관통하는 시대상이 태웅의 삶에 에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