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칸영화제 20

클린

올리비에 아사야스 감독의 '클린'(Clean, 2004년)은 마약에 중독된 여인이 갱생의 길을 걷는 과정을 다룬 영화다. 주연은 감독의 부인이었던 장만옥이 맡았다. 주인공 여인은 록 가수인 남편과 함께 마약에 빠져 헤매던 중 남편이 약물 과다 복용으로 사망하면서 새로운 삶을 맞게 된다. 뒤늦게 자신의 삶도 돌아보고 버리다시피 한 아들도 생각한다. 결국 그가 있어야 할 자리인 엄마로, 여인으로 돌아가는 방법은 과거와 단절하고 새 삶을 사는 것 뿐이다. 제목인 클린은 결국 여인의 새로운 삶을 의미한다. 하지만 삶이 그렇게 쉬운가. 어느 한 순간 지우개로 지우듯 깨끗이 지우고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누구나 쉽게 살 수 있을 것이다. 아사야스 감독은 삶의 힘든 변곡점에 카메라를 들이댔다. 장만옥은 변화가 필요한..

돈의 맛 (블루레이)

임상수 감독이 전작 '하녀'에 이어 '돈의 맛'(2012년)에서도 가진 자들의 부도덕함에 메스를 들이댔다. 이번에 겨냥한 상대도 역시 최상위 1%에 해당하는 부유층이다. 전작에서 전도연이 그들의 부도덕함을 낱낱이 살펴보는 고발자였다면 이 작품에서는 하인 격인 김강우가 맡았다. 영화는 요즘 한국 사회가 안고 있는 돈에 얽힌 병폐들을 집약했다. 더 많은 돈을 벌거나 죗값을 치르지 않기 위해 벌이는 권력층을 향한 뇌물공세와 문란한 성생활 및 마약, 사람의 목숨을 하찮게 여기는 도덕 불감증까지 총동원됐다. 뿐만 아니라 부유층과 바람난 가정부로 필리핀 여자를 선정해 점점 늘어나는 동남아 노동자들의 문제도 다뤘다. 이 모든 것을 임 감독은 돈 때문에 벌어지는, 돈의 맛에 취한 부작용으로 봤다. 그런데 욕심이 과했다..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

러시아 영화인 비탈리 카네프스키 감독의 '얼지마 죽지마 부활할거야'(Zamri Umri Voskresni, 1990년)는 루저들의 승전가다. 카네프스키 감독은 1960년 모스크바 국립영화학교에 입학했으나 정부 정책에 반대한다는 이유로 1966년 강간죄를 뒤집어 쓰고 무려 8년이나 옥살이를 했다. 1974년 감옥에서 풀려나 41세인 77년에 학교를 졸업하고 두어 편의 단편영화를 찍었으나 사상성을 의심받으며 쓰레기로 낙인찍혀 사실상 영화를 찍을 길이 막혀 버렸다. 결국 영화촬영현장의 잡부 등으로 일하던그가 우연히 렌필름 제작자의 눈에 띄어 장편 데뷔한 작품이 바로 이 작품이다. 필름은 렌필름에서 쓰고 남은 자투리 흑백필름을 사용했고, 촬영은 당시 무능한 퇴물로 간주됐던 블라디미르 브릴랴코프가 맡았다. 배우들..

일요일은 참으세요

부부였던 줄스 닷신 감독과 멜리나 메르쿠리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작품이 '페드라'와 '일요일은 참으세요'(Never on Sunday, 1960년)이다. 그 중 '일요일은 참으세요'는 국내에서 상영되지 못했다. 박정희 정권 시절, 주인공인 창녀를 떠받들고, 미국을 비판했다는 이유에서다. 그 바람에 정작 미국에서는 아카데미 주제가상까지 받은 멜리나 메르쿠리의 주제가도 국내에서는 한동안 금지곡이 됐다. 실제로 보면 로맨틱 코미디를 표방하고 있지만 의외로 사회비판적인 정치색이 강하다. 영화 속에서 그리스 창녀는 자신의 삶을 즐길 줄 알고 그리스 문화에 대한 긍지와 자존감이 강한 반면, 미국인 철학자는 잘난 체 하고 남을 무시해 타인의 삶을 바꾸려 든다. 결국 영화는 도덕적이고 평화주의자 행세를 하며 잘난척 하는..

아티스트 (블루레이)

시대의 변화는 흥한 자와 망한 자를 낳는다. 화약은 총과 포를 부르며 칼의 시대를 접었고, 인터넷과 컴퓨터로 대표되는 디지털의 등장은 아날로그 시대의 대표적 산물인 인쇄매체의 후퇴를 불렀다. 영화도 마찬가지다. 1927년 알 졸슨이 주연한 최초의 토키영화인 '재즈싱어'는 순식간에 무성영화의 몰락을 가져 왔다. 미셀 아자나비시우스 감독의 '아티스트'(The Artist, 2011년)는 바로 무성영화에서 유성영화 시대로 넘어가던 1920년대 후반 한 스타의 이야기를 다뤘다. 더글라스 페어뱅크스를 연상케 하는 주인공 조지(장 뒤자르댕)는 무성영화만 고집하다가 유성영화가 등장하면서 쇠락의 길을 걷는다. 그런 그에게 구원의 손길을 내민 것은 유성영화 시대에 스타로 떠오른 신인 여배우 페피(베레니스 베조)다. 결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