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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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주얼 서스펙트

브라이언 싱어 감독을 유명하게 만든 수작 '유주얼 서스펙트'(The Usual Suspects, 1995년)는 관객의 주의력을 테스트하는 영화다. 의문의 사건을 수사하는 과정에서 용의자의 증언을 토대로 진범을 밝히는 과정은 베스트셀러 추리소설 못지 않게 흥미진진하다. 그만큼 크리스토퍼 맥쿼리가 쓴 스토리가 탄탄했다. 특히 막판 반전은 무릎을 치게 만드는 기발함이 돋보인다. 이야기만 훌륭한게 아니라 영화적 구성 또한 뛰어나다. 이 작품은 마치 문학작품을 그대로 옮긴 것처럼 유난히 대사가 많은데, 쉼없이 떠드는 대사의 홍수 속에 문득 문득 찾아드는 침묵이 일종의 챕터 구분 역할을 하며 관객의 주의를 환기시킨다. 캐릭터도 잘 살아 있다. 카리스마 넘치는 보스같은 가브리엘 번을 비롯해 약자처럼 보이는 케빈 스페..

지하실의 멜로디

한창 전성기때 알랑 들롱과 장 가방이 콤비를 이뤄 나온다는 것만으로도 가슴 뛰는 영화. 앙리 베르누이 감독의 느와르 '지하실의 멜로디'(Melodie En Sous-Sol, 1963년)는 그런 영화다. 이 작품 속 알랑 들롱은 푸른 물이 뚝뚝 떨어질 것 같은 시퍼런 청춘이다. 반면 장 가방은 노장의 완숙미가 엿보인다. 신-구가 완벽한 조화를 이뤄 긴장감을 불어넣은 범죄영화가 바로 이 작품이다. 내용은 '오션스 일레븐'이나 '이탈리안 잡'처럼 치밀한 계획을 세워 휴양지 유명 호텔의 카지노를 터는 이야기다. 앙리 베르누이 감독은 후반부 금고를 터는 장면을 아슬아슬하게 보여준다. 주변 정황과 알랑 들롱, 장 가방의 표정을 번갈아 보여주며 긴장감을 불어넣은 것이 이 작품의 묘미다. 하지만 대부분의 느와르물이 그..

인생은 아름다워 (블루레이)

로베르토 베니니 감독의 '인생은 아름다워'(La Vita E Bella, 1997년)는 말이 필요없는 감동적인 걸작이다. 베니니가 각본을 쓰고 감독에 주연까지 한 이 작품은 코미디 속에 홀로코스트라는 인류의 비극을 절묘하게 녹여냈다. 그러나 결코 그 과정이 과장되거나 경망스럽지 않다. 오히려 아픔을 내색하지 않기 위해 짓는 웃음처럼 희극 뒤에 배어나는 페이소스가 가슴을 아리게 한다. 이야기는 제 2차 세계대전 때 나치의 유대인 수용소로 끌려간 가장이 아들을 살리기 위해 벌이는 눈물겨운 노력을 담았다. 아버지는 철부지 아들에게 수용소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상품을 타기 위한 놀이라고 거짓말을 한다. 소리지르는 독일군은 점수 따는 것을 방해하는 훼방꾼이며, 그들에게 들켜서 상품도 못탄 채 집에 가지 않으려면 숨..

돼지의 왕

잔혹 스릴러를 표방한 연상호 감독의 애니메이션 '돼지의 왕'(2011년)은 여러 작품이 중첩돼 있다. 우선 일본 중학생들의 우울한 삶을 다룬 후루야 미노루의 걸작 만화 '두더지'와 권력의 속성을 날카롭게 파헤친 이문열의 '우리들의 일그러진 영웅', 그리고 유하 감독의 영화 '말죽거리 잔혹사' 등이 엉켜 있다. (http://wolfpack.tistory.com/entry/두더지) 어느 중학교에서 또래 집단간에 벌어진 학원 폭력의 이야기를 미스테리 스릴러처럼 다루었다. 무엇보다 탄탄하고 흡입력있는 이야기가 영화를 집중해서 보게 만든다. 특히 약자를 괴롭히는 자들에 대한 적개심을 불러 일으킬 만큼 캐릭터 하나하나에 감정이입이 잘 돼 있고 메시지 전달도 설득력있다. 그만큼 양익준, 오정세, 김혜나, 김꽃비 등..

돈의 맛

임상수 감독의 영화들은 언제나 욕망에 천착한다. '하녀' '바람난 가족' '그때 그 사람들' '처녀들의 저녁식사' 등 그의 작품들은 항상 돈과 섹스, 권력 등 가장 구질구질한 욕망을 직시한다. 이를 통해 자본주의와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점에 메스를 들이대기를 주저하지 않는다. 그만큼 직설적인 화법은 특별한 쾌감을 선사하며 화제를 뿌린다. 그러나 잘못 들이댄 메스는 오히려 고통만 키운다. '돈의 맛'은 그런 작품이다. 잘못 스친 칼날이 사방 가득 역겨운 피비린내만 풍겼다. 남성판 '하녀', 아니 '하인'에 해당하는 이 작품은 재벌가에서 온갖 궂은 일을 처리하는 집사 같은 청년이 보게되는 잘못된 부자의 삶을 다뤘다. 하지만 최상위 1%의 모습을 다뤘다고 하기엔 너무 피상적이다. 부도덕한 성관계, 권력층..

영화 2012.05.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