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9/12 11

이지라이더 (4K 블루레이)

미국 유명배우 데니스 호퍼가 2010년 5월 29일, 전립선암 합병증으로 숨을 거뒀다. 1936년생으로, 74세였다. 그는 사람들에게 '지옥의 묵시록' '블루벨벳'의 개성 강한 조역으로 남아 있으나, 그의 생애 최고작은 제작, 감독, 각본, 주역 등 1인 4역을 한 '이지라이더'(Easy Rider, 1969년)이다. 그는 피터 폰다와 함께 만든 반항적인 이 작품으로 칸영화제 신인감독상을 받으며 1960년대 미국 영화계의 한 획을 그은 아메리칸 뉴시네마의 기수가 됐다. 이 영화는 오토바이를 타고 떠도는 두 명의 젊은이들을 통해 그때까지 부와 번영의 상징으로 탄탄한 반석을 다진 미국이 과연 건강한 국가인지 심각한 의문을 던졌다. 여전히 남성우월적이고 인종차별적인 시각이 팽배한 보수적인 사회분위기 속에 방랑..

아메리칸 히스토리X(블루레이)

나와 다르다는 이유로 타인을 공격하는 증오 범죄의 이면에는 일종의 공포심이 도사리고 있다. 미지의 존재에 대한 두려움이 상대를 배척하며 나아가서 폭력으로까지 이어지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증오 범죄가 야기하는 폭력은 나약함의 발로이자 비겁함의 증거이기도 하다. 이를 여실히 보여주는 것이 인종 혐오다. 특히 미국 같은 다인종 다민족 국가에서는 인종 혐오가 두드러질 수밖에 없다. 과거에는 생존을 위해서였지만 지금은 권력의 향유를 꾀한다는 점에서 비난받아 마땅하다. 토니 케이 감독의 '아메리칸 히스토리 X'(American History X, 1998년)는 인종 범죄의 부당성을 에드워드 노튼이 연기한 데릭 빈야드라는 인물을 통해 웅변하듯 보여준다. 한때 신나치 그룹의 영웅이었던 데릭은 자동차를 훔치러 온 흑인..

더 키친(블루레이)

앤드리아 버로프 감독의 '더 키친'(The Kitchen, 2019년)은 때로는 여성들이 더 무서울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영화다. 갱단의 일원인 남편들이 강도짓을 하다가 체포된 뒤 먹고살기 위해 여성들이 조직을 접수하는 내용이다. 원작은 올리 매스터스와 밍 도일의 그래픽 노블이다. 1970년대를 배경으로 3명의 여자가 헬스 키친으로 알려진 뉴욕 맨해튼의 웨스트사이드 지역을 차지하는 과정을 다뤘다. 나약하고 심지어 남편에게 얻어맞으며 죽은 듯 살아가던 여인들이 갑자기 용기가 치솟아 남자들도 못하는 일을 해낸다. 다른 조직과 흥정을 벌여 거대한 공사를 따오기도 하고 정적들을 제압하기도 한다. 언뜻 보면 여성 전사의 이미지가 떠오르지만 그렇다고 대단한 활약을 펼치는 여성들은 아니다. 그저 평범한 가정주부처..

에너미 앳 더 게이트(블루레이)

장 자크 아노 감독의 '에너미 앳 더 게이트'(Enemy At The Gates, 2001년)는 저격 영화의 정수 같은 작품이다. 제2차 세계대전을 배경으로 구 소련군의 저격수였던 실존 인물 바실리 자이체프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다. 1915년 첼라빈스크주 에라노마치에서 태어난 자이체프는 우랄 산맥의 산속에서 자라며 어려서부터 사슴 사냥으로 사격 솜씨를 갈고닦았다. 1936년 해군에 입대해 군사경제학교를 나온 뒤 러시아 태평양 함대에서 회계 반장으로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독소전이 발발하자 그는 흑해 함대로 지원해 해군 육전대의 저격수가 됐다. 다시 육군으로 소속이 바뀌어 제284저격사단 산하의 1047저격연대에 배속된 그는 독일군이 쑥대밭을 만든 스탈린그라드에서만 242명을 사살하는 등 종전까지 총..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4K 블루레이)

개인적으로 영화 '해리 포터' 시리즈는 의외의 선물이었다. 조앤 롤링의 원작 소설이 별 감흥이 없어서 영화를 전혀 기대하지 않았다. 그런데 영화는 소설과 달리 의외로 아주 재미있었다. 글만 읽어서는 원작자의 상상력을 쫓아가기 버거웠는데 영화는 이를 눈으로 확인시켜 줬기 때문에 재미가 배가 된 듯 하다. 크리스 콜럼버스 감독의 '해리포터와 비밀의 방'(Harry Potter and the Chamber of Secrets, 2002년)은 다분히 키치적인 상상력으로 가득하다. 마법학교, 하늘을 나는 빗자루, 괴물 등 유럽의 어린이라면 다들 한번 쯤 그려봤을 만한 공상의 세계다. 이를 우리 관객들도 쉽게 받아들이는 것은 글로벌 시대의 영향이 아닐까 싶다. 2편은 1편보다 더욱 사악한 음모가 도사리고 있다. 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