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격자' '황해' 등 스릴 넘치는 작품을 만든 나홍진 감독은 '황해'를 마치고 나서 우리나라에서는 왜 오컬트 영화가 잘 되지 않는 지 의문을 가졌다.
그는 그 이유를 성경의 틀 안에서만 찾으면 답이 없다고 보고 그러기 위해 아시아 토속 종교를 다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 결과 등장한 작품이 '곡성'(2016년)이다.
이 영화는 제목과 동일한 발음의 전남 곡성에서 벌어지는 기이한 연쇄살인을 다루고 있다.
원래 지명이 제목이었으나 지역 사회의 반발이 커서 한자로 울음소리를 뜻하는 동음이의어 哭聲으로 제목을 바꿨다.
곡성에서 잇따라 엽기적인 연쇄살인이 벌어지는데 경찰은 그 답을 찾지 못한다.
급기야 경찰관 집안마저 괴이한 일을 겪게되자 무당을 불러 굿을 한다.
이 과정에서 멀리 바다건너 들어온 일본 귀신과 한국의 토종 귀신이 대결을 벌이게 되고 가족을 지키기 위한 경찰관의 사투도 시작된다.
영화는 오컬트 무비의 명작인 윌리엄 프리드킨 감독의 '엑소시스트'와 비슷하다.
귀신 들린 어린 소녀가 고통을 겪고 이를 퇴치하기 위해 퇴마사를 부르는 설정 등이 흡사하다.
다만 '엑소시스트'가 다룬 천주교와 이교도 악마의 대결을 실체를 알 수 없는 아시아의 악마와 토종 귀신의 대결로 바꿨다.
그 바람에 종교는 설자리를 잃고 밀려났다.
오히려 도움을 청하는 경찰관에게 성당의 신부는 "실체를 알 수 없는 일인데 무엇으로 확신하냐"며 거절한다.
괴이한 일을 마주한 부제마저도 종교적 의심에 시달리게 된다.
그만큼 서양에서 건너 온 종교는 이 영화 속에서 전혀 힘을 쓰지 못한다.
심지어 경찰관이 목에 걸고 온 십자가는 다른 동료 경찰관에게 조롱의 대상이 된다.
그러다 보니 이 영화에서 만큼은 악의 힘이 더할 수 없이 거대해 보인다.
과연 악이란 무엇인지, 이를 이겨내기 위한 수단은 무엇인지 의문을 갖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단순한 오락물에 머무르지 않고 거대한 철학적 사유의 문을 열어 젖혔다.
모처럼 생각할 꺼리를 던져 준 좋은 영화이지만 답을 제시하지는 못한다.
그 이유는 너무나 불친절한 영화이기 때문이다.
영화를 보는 사람들은 사유의 시간을 통해 생각하며 느끼고 얻는 것이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영화는 질문만 한보따리 던져놓고 어정쩡하게 매듭을 지었다.
왜 무당이 일본 귀신 편에 섰는 지, 일본 귀신과 무당이 촬영한 사진의 의미, 왜 하필 이들이 곡성에 나타났는지, 성적인 메타포와 일본 귀신의 관계, 수호신에 해당하는 여자 귀신이 갖고 있는 피해자들의 물건이 갖는 의미, 피해자들이 공격의 대상이 된 이유 등에 대해 명확한 설명을 하지 않았다.
피해자들 가운데 누구는 죽고 누구는 살아 남는 등 일관성이 없어서 관객이 공통점을 유추하기 힘들다.
또 수호신 격인 여자 귀신이 갖는 힘의 한계도 의문이다.
어느 순간 일본 귀신을 극한까지 몰아부치고 무당도 내쫓으면서 결정적인 순간에 수호신으로 제 역할을 하지 못한다.
비겁한 것은 속임수로 오인할 수 있는 교차 편집이다.
무당과 일본 귀신은 각자 굿을 하는데 이 장면을 동시에 공방하듯 교차 편집으로 보여주다보니 무당과 일본 귀신의 관계를 헷갈릴 수 있다.
의도했든 아니든 이런 교차편집은 관객을 오도한 속임수다.
여기서부터 이 영화의 실타래가 엉크러졌다고 본다.
결정적으로 악령의 목적에 대해 아무것도 드러내지 않는다.
야단법석의 연쇄살인을 통해 악령이 얻은 것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다.
부활을 위한 육신인지, 사령을 빙자한 돈을 노린 사기극인지, 아니면 좀비 같은 꼭두각시를 만들어 악을 전파하려는 것인지 명확한 해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그래서 모든 것을 삐딱하게 바라보는 결코 건강하지 않은 의심을 심게 만든다.
한마디로 의심과 의혹, 미궁으로 빨려들어간 진실의 실체에 대해 무한 궁금증을 갖게 만드는 불편한 영화다.
심지어 마지막 보루 같은 가족주의에 대해서도 이 영화는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가장으로서 가족을 지키기 위해 목숨을 거는 아버지, 끝까지 자식을 품기 위해 아이를 보호하는 어머니,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하는 아이마저도 모두가 궁극의 희생물이 된다.
부성애와 모성애마저 뿌리채 흔들리는 결말 앞에서 일말의 희망이나 기대를 갖기 힘들다.
아버지와 어머니마저 믿을 수 없는 아이는 누구에게 의지해야 하는가.
그리고 그런 아이는 누가 지켜주는가.
여기서 전통 귀신이란 답을 찾으면 참으로 한심한 지경에 놓이게 된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 또한 오컬트 장르의 틀을 벗어나지 못한 여타 작품의 한계를 분명히 안고 있다.
'엑소시스트'식 구성과 결말을 피하려다보면 제시할 수 있는 답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결국 엑소시스트로 돌아가면 식상한 영화가 되고 만다.
그 점이 나홍진 감독이 가졌던 국내에서 오컬트 무비가 흥행에 성공하지 못하는 궁금증에 대한 답일 수 있다.
개인적으로는 불편하고 불만인 작품이지만 이 작품이 보여준 유머에 대해서는 높이 평가할 만 하다.
건강원에서 오가는 주인과 경찰관들의 대화, 벼락맞은 사나이가 입원한 병실에서 그의 아내가 풀어놓는 넋두리, 번개치는 밤중에 벌어지는 파출소 소동, 경찰관과 그의 아내 그리고 딸이 빚어내는 맛깔스러운 대화 등은 중요한 코믹 릴리프이다.
비극적이거나 무서운 영화에서 웃긴 부분을 집어 넣어 분위기를 바꾸는 코믹 릴리프는 어설프면 오히려 쓰지 않느니만 못하다.
그런데 나 감독은 이를 훌륭하게 소화한 덕분에 해당 장면들이 불편하지만 재미있는 영화로 만드는데 크게 일조했다.
오히려 오컬트나 공포 시퀀스보다 이런 부분들에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덕분에 불편하고 불친절해서 높게 평가하기는 힘들지만 나름 볼만한 영화가 됐다.
배우들의 연기는 훌륭했다.
무당을 연기한 황정민, 경찰관 역의 곽도원, 일본 귀신을 연기한 쿠니무라 준, 정체모를 여인을 연기한 천우희는 물론이고 동네 사람 및 동료 경찰관으로 나온 최귀화, 손강국의 연기도 보는 사람을 빠져들게 만든다.
의외로 어린 소녀를 연기한 김환희의 연기도 뛰어났다.
귀신에 들려 악착을 떠는 연기는 왠만한 어른들도 힘들텐데, 연기라는 의심이 들지 않을 정도로 다부지게 해냈다.
특히 밥을 마구 퍼먹은 뒤 트림을 내뱉으며 무심한 눈빛으로 식칼을 쳐다보는 연기는 절로 소름이 돋게 만든다.
블루레이 타이틀은 본편과 부록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구성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인 화질이 좋다.
석양 무렵 어둠이 드리우는 산세 풍경을 보면 그라데이션이 자연스럽다.
DTS X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확실하다.
리어 스피커에서 분명하게 들리는 말소리 등을 들어보면 방향감을 뚜렷하게 느낄 수 있다.
부록으로 배우들 해설, 제작진 해설, 프랑스 영화평론가 뱅상 말로사의 해설 등 3편의 음성해설과, 제작과정, 배우 및 제작진 인터뷰, 분장, 로케이션, 굿 장면 촬영, 종교인들이 말하는 선악 설명 등 다양한 내용들이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다만 삭제장면이 누락돼 아쉽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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