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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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스토리(블루레이)

울프팩 2022. 5. 15. 16:24

"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거야"라는 대사로 유명한 아서 힐러(Arthur Hiller) 감독의 '러브 스토리'(Love Story, 1970년)는 음악이 살린 영화다.

이 영화의 음악은 뛰어난 프랑스 작곡가 프란시스 레이(Francis Lai)가 맡았다.

 

앤디 윌리엄스(Andy Williams)가 가사를 붙여 부른 유명한 주제가부터 '눈장난(Snow Frolic)'까지 여기 들어간 곡들은 주옥같이 아름답고 서정적이다.

아서 힐러 감독은 프랑스에 사는 레이에게 음악을 맡기면서 장문의 편지를 써서 보냈다.

 

프란시스 레이의 음악이 살린 영화

힐러 감독은 불어를 못하고, 레이는 영어를 못하는데도 불구하고 힐러 감독은 영어로 써 보낸 편지에 영화의 줄거리와 분위기, 그리고 강조하고 싶은 대목에 필요한 음악들을 조목조목 적어 보냈다.

레이는 대본이나 영화를 보지 않은 상태에서 곡을 써서 보냈는데, 이를 듣고 감동한 힐러 감독은 울음을 터뜨렸다.

 

힐러 감독이 원했던 분위기를 그 이상으로 살린 심금을 울리는 음악은 아닌 게 아니라 영화보다 빛났다.

덕분에 이 영화의 OST는 1970년 빌보드 앨범 차트 2위에 올랐고, 레이는 아카데미 음악상과 골든글로브 음악상을 받았다.

 

힐러 감독이 영화음악가로 대번에 떠올린 레이는 원래 빼어난 아코디언 연주자였다.

독학으로 음악을 배운 그는 연주뿐 아니라 작곡도 곧잘 해서 이 작품 외에도 뛰어난 영화음악들을 많이 만들었다.

 

그의 이름을 널리 알린 첫 작품은 클로드 를르슈(Claude Lelouch) 감독의 1966년 고전 영화 '남과 여'다.

개그맨 서경석이 김효진과 진행한 개그 코너에 삽입곡으로 쓰이면서 영화를 보지 않은 사람들도 널리 알게 된 이 영화음악은 귀에 쏙쏙 박히는 반복적인 멜로디가 인상적이다.

 

그리고 심야 FM 라디오 프로에서 이지리스닝 음악으로 곧잘 틀었던 1968년 '하얀 연인들'과 1969년 르네 클레망(Rene Clement) 감독의 걸출한 명작 '빗속의 방문객'의 아련한 음악도 모두 레이의 작품이다.

이후 레이는 유럽 특유의 서정적인 성애영화 '엠마뉴엘 2' '빌리티스' 등의 아름다운 음악을 만들었고 1981년 미셀 르그랑 감독의 대작 '사랑과 슬픔의 볼레로' 음악도 맡았다.

 

그렇게 레이는 40년간 활동하며 100편 이상의 영화음악과 600 여곡의 음악을 남겼다.

말년을 프랑스에서 보낸 그는 2018년 86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통속적인 순애보

음악을 제외하면 영화음악은 흔하디 흔한 통속적인 순애보다.

하버드 대학을 다니는 부잣집 도련님과 가난한 집안의 여자 음대생이 집안의 반대를 무릅쓰고 결혼하는 이야기다.

 

결국 남자는 집안의 도움 없이 힘들게 돈을 벌며 공부해서 변호사가 되지만 아내가 불치의 백혈병에 걸리면서 그만 비극을 맞고 만다.

에릭 시걸이 쓴 뻔한 줄거리의 시나리오는 할리우드 제작사들의 관심을 끌지 못했다.

 

여러 스튜디오를 거쳤으나 모두 퇴짜를 맞았고 마지막으로 파라마운트는 선조건을 내걸었다.

먼저 소설로 출판해 보고 반응이 괜찮으면 영화를 찍겠다는 조건이었다.

 

시걸은 부랴부랴 소설을 써서 출판했고 다행히 곧잘 팔려서 파라마운트에서 영화를 만들게 됐다.

눈물샘을 자극하는 전형적인 멜로물인데도 이 영화에 대한 기억이 오래갔던 것은 레이가 만든 아름다운 음악 덕분이다.

 

별 것 아닌 장면에 레이의 음악이 흐르면서 두고두고 잊지 못할 명장면이 됐다.

대표적인 부분이 눈이 펑펑 쏟아지는 하버드 교정에서 두 연인이 눈 장난을 하는 장면이다.

 

원래 이 장면은 예정에 없었다.

힐러 감독이 제작비 200만 달러를 아껴 쓰며 촬영한 덕분에 예산이 조금 남자 자투리 영상이라도 찍으려고 배우들을 데리고 급히 보스턴을 찾았는데 하필 눈이 펑펑 쏟아지는 바람에 준비했던 장면 대신 서둘러 미식축구장 등에서 배우들에게 애드리브로 연기를 주문해 찍었다.

 

당연히 별로 볼 것도 없고 통째로 드러내도 상관없는 장면인데 여기에 레이의 음악이 얹히면서 이 영화를 상징하는 대표적인 장면이 됐다.

배우들도 그렇게 눈에 띄지 않았다.

 

아쉬운 캐스팅

당시까지 이렇다 할 흥행작이 없던 라이언 오닐(Ryan O'Neal)이 남자 주인공 올리버를 연기했고 마찬가지로 신인이었던 알리 맥그로우(Ali MacGraw)가 여주인공 제니퍼를 맡았다.

오닐은 유약해 보이는 이미지였고 맥그로우는 그렇게 빼어난 미인이 아니어서 '로미오와 줄리엣'과 달리 캐스팅에 아쉬움이 많이 남는다.

 

알리 맥그로우를 고집한 것은 파라마운트의 제작부문 총괄이었던 로버트 에반스가 고집했기 때문이다.

여성 편력이 심했던 에반스는 당시 맥그로우와 사귀고 있었고 영화 개봉 후 결혼했다.

 

오닐과 맥그로우의 연기도 평범했다.

여기에 제작진이 분장에 신경을 쓰지 않은 것인지, 잘 몰라서 그런 것인지 모르겠지만 백혈병에 죽어가는 여성이 너무 혈기왕성하고 병에 걸리기 이전과 다름없이 쌩쌩해 어색하다.

 

힐러 감독의 연출 또한 섬세하지 않아 느닷없는 장면이 많고, 편집 또한 매끄럽지 못해 여러 군데 덜컹거린다.

그만큼 영화적 완성도가 높지 않은 작품이다.

 

만약 레이의 음악이라도 없었다면 기억에 남기 힘든 작품이 돼버렸을 수도 있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좋다.

 

50년이 넘은 작품인데도 잡티나 스크래치 하나 없이 깨끗하게 복원이 잘 됐다.

물론 중경과 원경의 샤프니스가 떨어지는 등 예리한 맛이 부족하고 화질 편차가 있지만 제작연도를 감안하면 높게 쳐줄만한 화질이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 효과가 두드러지지 않는다.

전방에 사운드가 집중됐으며 음량도 작은 편이다.

 

부록으로 힐러 감독의 해설, 제작 배경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사랑이란 미안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것"이라는 대사가 유명하다. 두 사람이 사랑하면 서로를 충분히 이해하기에 굳이 말할 필요가 없다는 뜻이다.
아이스하키 경기장면이 독특하다. 마치 카메라가 퍽처럼 빙판에 낮게 붙어서 움직인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하키스틱 하단에 카메라를 붙이고 하키 선수 출신 카메라맨을 구해서 선수들을 따라 빙판 위를 움직이며 찍었다.
토미 리 존스는 이 작품이 영화 데뷔작이다. 그는 하버드대 영문학과를 막 졸업하고 영화에 출연했다. 그의 대학시절 기숙사 룸메이트가 앨 고어 전 부통령이다.
제작진은 존 보이트, 마이클 더글라스 등 여러 배우들이 남자 주인공 역을 거절해 라이온 오닐에게 맡겼다. 라이언 오닐은 이미지와 달리 지독한 바람둥이였다. 수 많은 여인과 바람을 피운 그는 애인이었던 배우 파라 포세트의 장례식에서 친딸인 배우 테이텀 오닐을 못 알아보고 수작을 걸었다가 보도가 돼 망신을 당했다.
눈장난 장면은 대본에 아예 없다. 20년 만에 최악의 눈보라가 미국 동부를 덮치면서 촬영 중단 얘기가 나왔다. 힐러 감독은 급히 배우들에게 미식축구장에서 하고 싶은 것을 하라고 한 뒤 촬영했다.
1960년대 미국에서도 부모세대들은 혼전 성관계를 못마땅하게 여겼다. 그런 점에서 이 장면도 아버지에 대한 아들의 반항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알리 맥그로우는 피아노를 칠줄 몰랐다. 그러나 힐러 감독은 직접 그가 피아노 치는 것을 찍고 싶어서 3주간 개인교사를 붙여 12초에 해당하는 악보만 연습해 실제로 연주하게 했다.
파라마운트 제작총괄이었던 로버트 에반스는 처음부터 알리 맥그로우를 여주인공으로 밀었다. 맥그로우는 막강한 애인 덕에 여주인공을 연기했고 이후 에반스와 결혼했다가 이혼했다. 나중에 유명 스타였던 스티브 맥퀸과 결혼 후 이혼했다.
라이언 오닐은 권투를 하고 운동도 잘했지만 스케이트를 타지 못해서 하키경기 장면에서 다른 배우가 스케이트 연기를 대신했다.
이 영화를 대표하는 장면 중 하나로 곧잘 등장하는 스케이트장 앞 카페는 6미터 크기의 세트다. 제작진은 스케이트장 앞에 세트를 만들어 찍었다.
항암 치료를 받는 여성치고는 너무 멀쩡해 보인다. 힐러 감독은 1960년대 냉전의 긴장관계 속에 살았던 사람들은 지친 심신을 위로하기 위해 이런 영화를 원했다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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