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파이(블루레이)

스파이물을 우스꽝스럽게 만든 영화는 많았다.

마이크 마이어스가 007 시리즈를 작정하고 씹어댄 '오스틴 파워' 시리즈, '미스터 빈'이 스파이로 변신한 로완 앳킨슨의 '쟈니 잉글리쉬' 시리즈, 여기에 대놓고 코미디로 만든 '겟 스마트' 등 여러 편이 있다.

 

하지만 폴 페이그 감독의 '스파이'(Spy, 2015년)는 결을 달리한다.

웃음을 목적으로 한 작품이지만 '오스틴 파워'나 '쟈니 잉글리쉬'처럼 억지 설정으로 웃음을 쥐어짜는 것이 아니라 기존 스파이물을 제대로 꼬집은 가치 전복을 통해 통쾌한 웃음을 선사한다.

 

특히 눈에 띄는 것이 여주인공이다.

이 작품의 주인공은 미끈하게 잘 빠진 미모의 여성이나 근육질의 잘 생긴 남성이 아닌 평범한 아줌마처럼 보이는 수잔(멜리사 맥카시)이다.

 

임무 수행 중 비극적으로 사라진 CIA의 정예요원 브래들리(주드 로)를 대신해 내근 요원 수잔이 현장에 파견된다.

상부에서는 수잔이 푸근한 외모 때문에 의심받지 않을 것이라고 판단해 기대 없이 일을 맡긴다.

 

그래서 수잔의 희망과 달리 근사한 직업이 아닌 보험 외판원 같은 신분으로 위장해 파견됐지만 뜻밖의 재능을 발휘해 오히려 정예 요원들 못지않게 임무를 훌륭하게 수행한다.

정작 요란하게 능력을 떠벌리던 정예 요원 릭(제이슨 스타뎀)은 수잔 덕분에 위기를 넘긴다.

 

수잔은 예상하지 못한 소동을 일으켜 웃음을 선사하지만 뛰어난 활약으로 결코 잘 생기고 세련된 선남선녀들만 세상을 구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기존 영웅들보다 기준 이하의 외모를 지닌 수잔은 '무한도전'처럼 보통 사람들에게 더 큰 희망을 불어넣어 준다.

 

오히려 팔등신 선남선녀가 주인공이었다면 이 작품의 매력은 반감됐을 것이다.

그만큼 페이그 감독의 뛰어난 캐스팅 선구안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각본을 직접 쓴 페이그 감독은 007 시리즈의 메인타이틀을 흉내 낸 인트로와 여성 요원들의 웃긴 콤비 플레이, 그저 색을 밝히고 힘만 과시하는 마초 스타일의 남성 요원들의 모습을 통해 기존 스파이물의 한계를 날카롭게 꼬집었다.

수잔은 "꼴에 여자라고..."라는 모욕적인 말을 내뱉은 악당을 통쾌하게 무찌르며 기존 스파이물에서는 느낄 수 없는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주드 로나 제이슨 스타뎀이 주인공이었다면 결코 줄 수 없는 즐거움이다.

1080p 풀 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최신작답게 화질이 좋다.

 

매끈한 윤곽선과 선명한 색상이 눈에 들어온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폭발적인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그만큼 각종 효과음의 채널별 안배에 신경을 썼다.

부록으로 삭제 장면, 추가 장면, 개그릴과 감독의 현장 지시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모두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야한 농담때문에 미국에서는 성인용 R등급을 받았다.

007 시리즈를 흉내낸 인트로 장면.

주인공 수잔을 연기한 멜리사 맥카시. 그는 리메이크한 '고스트 버스터즈' '더 키친' 등에 출연했다.

촬영은 '그랜드 부다페스트 호텔' '맘마미아2' '로얄 테넌바움' 등을 찍은 로버트 예먼이 맡았다.

주로 헝가리의 부다페스트에서 촬영.

폴 페이그 감독은 '고스트 버스터즈'의 리메이크판도 각본을 쓰고 연출했다.

뚱뚱한 여자스파이 수잔은 외모와 달리 뛰어난 싸움 실력으로 악당들을 무찌른다. 그러나 적의 시체를 보고 토하며 기절하는 등 기존 스파이와 다른 반전 매력을 선사한다.

래퍼 50센트가 실명으로 카메오 출연했다.

부록에 수록된 감독의 현장 지시 내용을 보면 배우들이 웃음이 터져 연기를 하지 못할 정도로 웃기다.

개봉 당시 한글자막에 대해 논란이 일었다. 관객의 이해를 돕기 위해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인 '다운튼 애비'를 '셜록'으로 바꾸는 등 지나친 의역이 문제가 됐다.

멜리사 맥카시는 유사한 코미디 액션물 '해피타임 스파이'에도 주연으로 등장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