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니 보일 감독의 '예스터데이'(Yesterday, 2019년)는 발칙한 상상력이 빚어낸 이야기로 비틀스에 대해 고마움을 느끼게 만드는 영화다.
간단하게 말해 비틀스에 대한 헌사다.
내용은 어느 날 갑자기 지구에 찾아온 순간 정전 이후 세상 사람들은 비틀스에 대한 존재를 까맣게 잊는다.
비틀스뿐만 아니라 코카콜라도 사라진다.
마치 처음부터 세상에 없었던 것처럼 비틀스는 아예 구글 검색에 등장하지도 않으며 사람들은 그들의 존재와 노래를 전혀 모른다.
단 무명 가수인 잭 말릭(히메시 파텔)만 유일하게 비틀스의 노래를 기억한다.
뜻하지 않은 사건에 어리둥절하던 말릭은 비틀스의 노래를 자신의 노래처럼 다시 부르고, 세상은 유래 없는 명곡에 열광한다.
비틀스가 처음에 등장했을 때 누렸던 영광을 말릭이 다시 누리게 된 것이다.
영화를 보다 보면 주인공 잭 말릭이 부르는 노래를 통해 비틀스가 얼마나 위대한 밴드인지 새삼 느낄 수 있다.
지금 들어보면 당연하게 들리는 흔한 노래가 됐지만 만약 그들의 노래가 없었다면 훗날 그들의 노래를 전범 삼아 꿈을 키운 가수들과 그들의 노래에 영향을 받아 등장한 숱한 노래들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는 영국이 미국에 대해 내세우는 자존심이자 문화적 우월감의 표현이기도 하다.
마치 '너희는 이런 밴드가 있느냐'는 질문을 던지는 듯하다.
영화 속에서 미국의 음반 제작자들이 말릭의 노래에 열광하며 그를 최고 우상으로 떠받드는 모습에서 제작진이 강조한 미국에 대한 영국 문화의 상대적 우월감을 여실히 느낄 수 있다.
비틀스의 노래가 잘 기억나지 않는 말릭이 곡을 떠올리기 위해 비틀스의 고향 리버풀로 떠나는 장면도 마찬가지다.
미국 대형 음반사의 매니저는 최고 시설을 미국에서 제공하겠다고 하지만 말릭은 "미국에서는 불가능한 일"이라며 리버풀로 향한다.
이런 대사들 속에 은연중 영국뿐 아니라 유럽이 식민지였던 미국에 갖는 문화적 우월감과 상대적으로 강한 자존심을 엿볼 수 있다.
아닌 게 아니라 미국은 오랜 역사와 유구한 전통을 지닌 유럽에 대해 문화적 열등감을 느끼는 것도 사실이다.
비록 비틀스가 명성을 얻게 된 로큰롤이 재즈와 블루스에 기반한 미국에서 탄생했지만 음악적 원류를 따져 올라가면 역시 유럽의 클래식에서 벗어나기는 힘들다.
다만 이를 노골적으로 드러내지 않고 워킹타이틀 작품이 언제나 그렇듯 적당한 유머와 안타까운 로맨스로 잘 포장했다.
발칙한 스토리는 잭 바스의 원안을 토대로 리처드 커티스 감독이 만들었다.
리처드 커티스는 '러브 액츄얼리' '브리짓 존스의 다이어리' '어바웃 타임'에서 보여준 뛰어난 스토리 텔링 능력을 이 작품에서도 유감없이 보여준다.
이를 대니 보일 감독이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연출로 완성도를 높였다.
여기서 비틀스의 노래를 훔치는 말릭을 연기한 히메시 파텔을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그는 독학으로 기타와 피아노를 배운 뒤 극 중 삽입된 비틀스의 노래를 직접 연주하고 불렀다.
그것도 후시 녹음이 아닌 현장에서 라이브로 부르며 촬영을 했다.
그만큼 노래의 완성도가 높지 않으면 하기 힘든 일인데 파텔은 이를 훌륭하게 해냈다.
덕분에 극 중에서 비틀스의 인기를 훔치는 그의 연기가 전혀 어색하지 않고 충분히 빠져들 수 있다.
다소 억울하게 생긴 외모 또한 동정심을 유발하며 그를 미워할 수 없게 만든다.
비틀스는 영국이 낳은 위대한 백인 4인조 밴드이지만 그의 노래를 대신 부르는 파텔은 인도계 남성으로 보인다.
그 점 또한 다문화 다인종 세상에서 화합의 메시지를 전하는 역할을 했다.
영화를 보다 보면 두 가지가 궁금하다.
우선 비틀스 노래는 판권료가 어마어마하게 비싸기로 유명하고, 돈을 떠나서 어지간해서는 영화 사용을 잘 허락하지 않는 것으로 알려졌는데 무려 17곡이나 사용 허가를 어떻게 받아냈으며 얼마나 판권료를 지불했을지 의문이다.
리처드 커티스 감독을 비롯해 제작진이 폴 매카트니, 링고 스타 등 살아 있는 비틀스 멤버들과 존 레넌, 조지 해리슨 등 고인이 된 멤버의 유족들을 직접 만나 간곡한 설득으로 허가를 받았다고 한다.
다만 제작진은 비틀스 노래의 판권료를 공개하지는 않았다.
두 번째, 비틀스를 사람들의 기억 속에서 지운 뒤 이를 훔치는 엄청난 도발의 끝을 어떻게 맺을지 결말에 대한 궁금증이다.
결국 이것이 추리소설을 읽는 것처럼 끝까지 영화를 보게 만드는 동인이다.
제작진은 막바지에 사람들의 인연과 사랑, 노래 등 모든 것을 제자리에 돌려놓는다.
아마도 엄청난 사건을 감당할 자신이 없었거나 위험을 회피할 최선의 방법을 찾지 못한 모양이다.
4K 타이틀은 4K와 일반 블루레이 등 2장의 디스크로 구성됐다.
2160p UHD의 2.39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4K 타이틀은 쨍한 햇빛 같은 화질이다.
윤곽선이 칼 끝처럼 선명하고 색감 또한 자연스러우면서도 생생하다.
돌비 애트모스를 지원하는 음향은 리어 채널을 적절하게 활용해서 서라운드 효과를 충분히 느낄 수 있다.
부록으로 제작진 해설, 삭제 장면과 노래 녹음 장면, NG 장면, 다른 엔딩과 제작과정, 배우 및 제작진 인터뷰 등 풍성한 내용이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음성 해설을 제외하고 나머지 부록들에 한글 자막을 지원한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레디 플레이어 원(4K 블루레이) (0) | 2020.01.14 |
---|---|
런던 해즈 폴른(블루레이) (0) | 2020.01.10 |
페임(블루레이, 리메이크작) (0) | 2020.01.03 |
토이 스토리4(블루레이) (0) | 2020.01.01 |
해리포터와 아즈카반의 죄수(4K 블루레이) (2) | 2019.12.30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