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학의 대부인 독일의 카를 폰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이란 정치의 연속"이라고 주장했다.
전쟁은 국익을 위한 정치의 연장선이니, 당연히 국가를 위한 일로 보고 정당성을 부여했다.
하지만 클라우제비츠는 전쟁의 안개가 전쟁의 경과나 결과를 예측 불가능하게 만든다며 이를 경계했다.
전쟁의 안개란 결과를 불확실하게 만드는 불완전하고 부정확한 정보들을 말한다.
미국의 유명 다큐멘터리 감독인 에롤 모리스가 만든 '전쟁의 안개'(The Fog of War: Eleven Lessons from the Life of Robert S. McNamara, 2003년)는 그런 점에서 의미 심장하다.
이 작품은 케네디와 존슨 대통령 시절 국방장관을 지낸 로버트 맥나마라를 장시간에 걸쳐 인터뷰한 다큐멘터리다.
케네디 대통령을 미국의 영웅으로 만든 쿠바 미사일 위기와 미국을 수렁에 빠뜨린 월남전에 대한 그의 생각을 들을 수 있는 작품이다.
하지만 이 작품은 숨겨진 진실을 파헤치기 보다는 맥나마라의 변명으로 일관한다.
맥나마라는 쿠바 미사일 위기도 그렇고, 통킹만 사건으로 시작된 북베트남 폭격도 그렇고 당시에 잘못된 정보로 잘못된 판단을 했다고 변명한다.
"보고싶은 것만 봤다"고 비교적 솔직하게 인정한 점도 있지만 모든 변수를 헤아리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주장한다.
결국 왜 미국이 쿠바 미사일 위기 때 수 많은 사람의 목숨을 걸고 핵전쟁의 도박을 벌였는 지, 무슨 생각으로 미국의 젊은이를 월남전에 수렁으로 몰았는 지 속시원한 대답 대신 뿌연 전쟁의 안개가 실상을 가리는 느낌이다.
그렇게 이 작품은 뫼비우스의 띠처럼 의문으로 시작해 의문으로 끝난다.
제목처럼 전쟁의 안개 속을 돌고 도는 형국이다.
오히려 그 답은 보는 사람들이 찾게 만든다.
에롤 모리스 감독은 토막 토막 삽입한 자료 화면과 영상들을 통해 과연 맥나마라의 대답이 진실일 지 끊임없이 의심하게 만든다.
마치 상대방을 지긋이 바라보는 듯한 카메라 앵글은 숨가쁘게 토해내는 맥나마라의 이야기 속에서 진실을 꿰뚫어 보려는 눈 같다.
에롤 모리스 감독의 작품은 그래서 무섭다.
'가늘고 푸른 선'에서 보여주듯 상대의 주장을 가감없이 전달하지만 툭툭 던지는 질문을 통해 화자가 스스로 모순을 드러내게 만든다.
그만큼 이 작품은 생각할 거리가 많은 작품이다.
좋은 작품인데도 불구하고 많이 알려지지 않은 것 같아 아쉽다.
1.78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그저 그렇다.
그래도 크게 흠이 되지 않는 것이 인터뷰 영상과 자료 화면들이 주를 이루기 때문.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으로 약 40분에 이르는 삭제 장면이 들어 있는데, 한글 자막을 지원하지 않는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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