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히치콕 16

마니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영화 '마니'(Marnie, 1964년)는 스릴러라기 보다 가슴 아픈 영화다. 어려서 받은 정신적 충격과 마음의 상처 때문에 평생을 위축된 채 살아가는 여인의 이야기다. 히치콕은 이 작품을 가리켜 "섹스 미스테리"라고 칭했다. 성적인 코드가 영화를 지배하기 때문. 야하다는 뜻이 아니라 성에 대해 위축되고 강박관념을 가진 여인이 이 때문에 도벽 등 비뚫어진 이상 심리 증세를 보인다. 여기에는 히치콕 개인의 경험도 관련 있다. 히치콕은 성불구였다. 딸이 있긴 했지만 시나리오 작가 제이 프레슨 앨런에게 고백했듯이 발기불능이어서 성생활이 원활하지 못했다. 그래서 앨런은 히치콕이 이 영화의 주연배우인 티피 헤드런에게 성적인 요구를 했다는 소문을 믿지 않았다. 하지만 성적 억압보다 정작 히치..

해리의 소동

'해리의 소동'(The Trouble With Harry, 1955년)은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의 작품 중에서 이단에 속하는 영화다. 스릴러의 거장인 그가 만든 블랙코미디로, 제작사인 파라마운트의 우려대로 흥행에 실패했다. 하지만 사람들이 히치콕의 이름 때문에 무서운 스릴러를 기대한 탓이지, 결코 못만든 작품이 아니다. 어느 평화로운 마을에서 발견된 시체 때문에 벌어지는 소동을 적당한 웃음과 긴장감 넘치는 영상으로 묘사했는데, 웃음과 스릴리 적절히 조화돼 시종일관 흥미진진하게 볼 수 있다. 결코 끔찍한 살인 행위나 무서운 장면이 등장하지 않으면서도 도대체 범인이 누구인 지 수수께끼처럼 펼쳐지는 이야기에 긴장하게 되고, 은유적인 에로티시즘과 비꼬는 농담이 가미된 대사에 절로 웃음이 나온다. 히치콕의 다른 면..

로프

영국 희곡작가 패트릭 해밀턴의 원작을 각색한 '로프'(Rope, 1948년)는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공동설립한 영화사 트랜스애틀란틱의 첫 작품이자, 히치콕의 첫 번째 컬러영화다. 히치콕은 해밀턴의 희곡에 유명한 실화인 레오폴드와 로엡 사건을 섞었다. 1924년 미국 시카고대 학생이며 동생애 연인이었던 네이던 레오폴드와 리차드 로엡은 니체의 초인론에 빠져 우수한 두뇌를 입증하려고 이유없이 친구를 살해했다. 결국 꼬리가 밟혀 둘은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히치콕은 이야기 뿐 아니라 구성도 연극을 그대로 따랐다. 즉, 영화는 마치 연극처럼 컷 없이 처음부터 한 씬으로 쭉 이어진다. 엄밀히 말하면 배우의 등을 크게 클로즈업으로 잡는 식의 트릭을 써서 컷을 넘겼지만 영화 속에서는 어찌나 자연스럽던 지 눈여겨 보지 ..

의혹의 그림자

"악당은 완전히 검은색이 아니고, 영웅도 완전한 흰색이 아니다. 세상은 모두 회색이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은 이런 생각을 갖고 미스테리 스릴러 영화 '의혹의 그림자'(Shadow Of A Doubt, 1943년)를 만들었다. 실제로 영화 속 인물들은 이러한 이중성을 갖고 모호하게 처리됐다. 평화로운 작은 마을의 어느 가족에게 어느날 낯선 삼촌(조셉 코튼)이 찾아온다. 삼촌은 더 할 수 없이 친절하고 점잖은 신사지만, 어디서 무엇을 하고 살았는 지 아무도 모른다. 형사들이 삼촌의 뒤를 캐면서 여주인공 찰리(테레사 라이트)는 알 수 없는 불안감에 빠진다. 결국 의문에 쌓인 삼촌의 정체와 마을의 이중성이 영화를 끌어가는 힘이다. 마을의 이중성은 "세상이 불결한 돼지우리라는 것을 아니? 세상은 지옥이야. 그..

파괴공작원

유니버셜에서 내놓은 '히치콕 콜렉션'에 수록된 첫 번째 작품은 '파괴공작원'(Saboteur, 1942년)이다. 여기에는 이유가 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이 유니버셜과 계약을 맺고 처음 만든 작품이기 때문. 뿐만 아니라 영국 출신인 그가 미국에서 미국을 배경으로 미국을 다룬 최초의 영화이기도 하다. 히치콕은 신고식을 화끈하게 준비했다. 억울하게 테러리스트 누명을 쓴 주인공이 파괴 행동을 일삼는 나치로 의심되는 악당들을 물리치는 내용으로, 미국인들의 애국심을 고취시키기에 충분한 작품이다. 무대도 후버댐, 자유의 여신상 등 미국을 상징하는 건축물들이다. 마침 영화 개봉 전 일본이 진주만을 기습하면서 분위기도 잘 맞아 떨어졌다. 주인공이 자신의 누명을 벗기 위해 범인을 찾는 과정이 쫓고 쫓기는 추격전으로 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