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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 제국의 부활 (블루레이)

울프팩 2014. 7. 7. 22:51

기원전 6세기에 등장한 페르시아 제국은 멀리 인도부터 그리스까지 아우르는 대제국이었다.

계속 영토를 확장하니 이웃 국가들과 부딪치는 것은 당연한데, 그 중에서도 그리스와 전쟁을 벌인 배경에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분노와 복수가 씨앗이 된 그리스-페르시아 전쟁

 

기원전 500년, 페르시아 통치 아래 있던 그리스 도시들이 반란을 일으켰다.

이에 페르시아의 다리우스 왕은 막강한 군대를 보내 반란을 진압했는데, 기원전 494년 라데 전투에서 크게 패한 이오니아도 그 중 하나였다.

 

문제는 아테네가 이오니아를 지원했다는 점이다.

다리우스 왕은 자신의 권위에 도전한 아테네에 분노해 이들을 혼내주고자 기원전 492년 전쟁을 일으켰다.

 

그러나 첫 번째 원정은 폭풍우로 페르시아 함대가 난파되면서 실패했다.

2년 후인 기원전 490년, 다리우스 왕은 군대를 마라톤 만으로 보내면서 두 번째 원정을 시작했다.

 

하지만 지리에 익숙한 아테네군은 산기슭에 숨어서 지구전을 폈다.

결국 페르시아군은 보급선이 길어지면서 15만대군의 식량과 물을 조달하기가 힘들자 철수를 결정했다.

 

그때, 아테네군이 해안가에서 짐을 싸는 페르시아군을 덮쳐 7,000명을 죽이거나 부상을 입혔고, 전령이 마라톤 벌판을 달려서 아테네에 이 소식을 전했다.

이것이 바로 마라톤 경기의 유래가 된 역사상 유명한 마라톤 전투다.

 

당시 다리우스 왕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는 영화와 달리 마라톤 전투에 참전하지 않았지만, 전쟁에서 타격을 입은 아버지가 모욕을 당했다고 생각해 분노했다.

복수를 결심한 크세르크세스는 기원전 480년, 아르테미시움 해전과 역사적 사건인 살라미스 해전으로 이어진 제 3차 원정에 나섰다.

 

결국 영화 '300' 및 연작인 '300: 제국의 부활'(300: Rise of an Empire, 2014년)의 배경이 된 테르모필레 전투와 살라미스 해전은 본질은 모두 페르시아 제국의 10년 묵은 분노의 표출이었다.

 

아테네와 동맹국들의 육군과 해군 분업 전략

 

크세르크세스는 새로 건조하거나 해안지역에서 징발해 전함 1,207척, 수송선 3,000척으로 구성된 대함대를 결성했다.

이 함대는 제 2 차 세계대전때인 1944년 6월6일 연합군의 노르만디 상륙작전에 동원된 연합함대 이전까지 인류 역사상 최대 규모였다.

 

여기 맞서는 아테네군의 사령관은 테미스토클레스였다.

그는 페르시아군에 맞서기 위해 아테네의 은광에서 나는 모든 수입을 쏟아부어, 노잡이들이 3층으로 앉아서 노를 젓는 3단선을 127척 건조했다.

 

3단선은 무려 170명의 노잡이가 노를 젓기 때문에 속도와 방향 전환이 빨랐다.

그러나 요즘 해병에 해당하는 갑판 위 수병은 14명에 불과했다.

 

노잡이 외에 선원 20명과 전투 수병까지 탑승하다보니 127척에 필요한 인원이 2만6,000여명에 이르렀다.

인구가 많지 않았던 아테네는 결국 육상에서 싸우는 보병을 줄여야 했다.

 

대신 육상 전투는 영화 '300'의 테르모필레에서 장렬히 전사한 스파르타 등과 동맹을 맺고 여기 의존했다.

스파르타의 레오니다스왕이 이끄는 결사대 300명이 테르모필레의 좁은 통로를 틀어 막은 동안 아테네 함대는 아르테미시움에 포진했다.

 

이때 연합함대 지휘관은 스파르타의 유리비아데스 장군이었다.

다양한 동맹국 함대가 아테네인의 지휘를 받으려 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도 대형 폭풍이라는 불운이 페르시아 함대를 덮쳤다.

페르시아 함대는 폭풍으로 무려 400여척을 잃었다.

 

그러나 여전히 700여척이 건재한 페르시아 함대는 수적 위로 그리스 함대를 압박했다.

이 전투에서 그리스와 페르시아 함대는 모두 100여척씩 손상을 입었지만, 그리스 함대는 영화 '300'처럼 테르모필레에서 스파르타인들이 전멸하자 아테네 방어를 위해 철수했다.

 

하지만 테르모필레를 통해 쏟아져 들어온 페르시아군들은 테베, 아테네 등을 점령해 불태우고 약탈하며 철저히 유린했다.

살아남은 아테네 사람들은 아테나 앞바다에 위치한 살라미스섬 등으로 대피했다.

 

그리스 연합함대도 378척으로 강화한 뒤 살라미스 앞에 진을 쳤다.

여기서 유명한 살라미스 해전이 벌어졌다.

 

속임수로 이긴 살라미스 해전

 

이때 그리스 연합함대 사령관이었던 아테네의 테미스토클레스는 기만전술을 펼쳤다.

시킨노스 사건으로 통하는 기만전술 또한 유명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전쟁 포로로 잡혔으나 자신에게 충성을 다한 페르시아인 시킨노스를 시켜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에게 거짓 정보를 흘렸다.

그리스 함대가 살라미스 해협에서 몰래 빠져 나가려 한다는 가짜 정보였다.

 

여기에 속은 크세르크세스는 그리스 함대가 빠져나가지 못하도록 살라미스섬 인근의 출구 두 곳에 밤새 배를 띄워 지켰다.

중요한 것은 당시 전함들은 사람이 노를 저었다는 점이다.

 

배 안의 좁은 의자에서 밤을 새운 페르시아 노잡이들은 날이 밝자 지칠대로 지쳤다.

때를 기다렸다는 듯 그리스 함대는 입구에서 모습을 보이고 해협의 좁은 구역으로 물러났다.

 

미끼를 덥썩 문 페르시아 함대는 좁은 해협으로 몰려들면서 서로 부딪쳐 부서지면서 수적 우위를 전혀 누리지 못했다.

그 바람에 좁은 해협에 낀 페르시아 함대는 오히려 숫자가 적은 그리스 함대에게 철저하게 공격당했다.

 

여기서 영화와 다른 대목이 나온다.

영화에서는 그리스 수병들은 거의 벌거숭이 몸뚱이로 무장을 잘 한 페르시아 해군에게 달려들지만 실제 역사는 정 반대였다.

 

활과 근접전용 손도끼를 주로 사용한 페르시아 해군들은 겉옷과 바지, 귀를 덥는 모자 등 복식이 빈약했다.

반면 그리스 수군은 갑옷을 잘 갖춰입고 칼을 휘두르며 페르시아 해군을 마음껏 공격했다.

 

업친데 덮친 격으로 페르시아 해군은 거의 대부분 수영을 할 줄 몰라, 그리스 수군과 부딪쳐 물에 떨어지면 대부분 익사했다.

이 중에는 페르시아 왕 크세르크세스의 동생 아리아메네스도 있었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곳에서 전투를 조망하던 크세르크세스 왕은 결국 패배를 인정하고 철수했다.

 

자유인 대 노예의 싸움

 

사실 살라미스 해전은 그리스인과 그리스인의 싸움이었다.

표면상 국적은 그리스 대 페르시아지만 페르시아 해군의 절반은 그리스인들이었다.

 

페르시아는 지배 중인 그리스 식민지에서 배를 차출하면서 사람들까지 노잡이로 차출한 것.

반면 그리스인들은 노잡이도 자유인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8드라크메를 주겠다는 조건으로 노잡이를 모집했다.

강제로 끌려온 사람들과 자신의 의지로 배를 탄 사람들은 사기부터 달랐다.

 

군사학자들은 이 부분 또한 살라미스 해전의 승패를 가른 주요인으로 보고 있다.

 

기막힌 역사적 반전

 

그런데 여기서 드라마보다 더 극적인 역사적 반전이 일어났다.

영화에는 나오지 않지만 페르시아 대군을 물리친 테미스토클레스가 고향인 아테네에서 쫓겨난 것이다.

 

국내에도 번역 출간된 '플루타르코스 영웅전'에 보면 테미스토클레스는 변변치 못한 집안에서 태어난 미천한 신분이었다.

하지만 정치적 야심이 강하고 달변이었던 그는 사람들과 친화력을 무기로 정치에 발을 들여 놓는다.

 

그런데 일생의 최대 맞수였던 아리스테이데스와 미소년 스테실라오스를 놓고 사랑의 경쟁을 벌이게 됐다.

당시 그리스에서는 동성애는 물론이고 양성애도 흔했다.

 

이것이 원인이 돼 테미스토클레스는 아리스테이데스와 앙숙이 됐고, 나중에 권력을 잡자 아리스테이데스를 아테네에서 도편 추방했다.

하지만 이후 테미스토클레스의 권력은 급격하게 기울었다.

 

동맹국의 섬들을 돌며 돈을 갈취했고, 영웅적 업적에 대한 사람들의 시기심이 겹쳐 모든 지위와 명성을 박탈당한 채 테미스토클레스 역시 과거의 앙숙에게 그랬던 것처럼 도편 추방을 당했다.

그렇게 아테네에서 쫓겨난 테미스토클레스가 찾아간 곳이 페르시아다.

 

그를 받아준 것은 크세르크세스 왕이 죽고 나서 권좌에 오른 아들 아르타크세르크세스 왕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페르시아에서 왕의 총애를 받았다.

 

심지어 테미스토클레스는 왕의 어머니 마음까지 사로잡아 아테네 시절 못지 않은 권력과 명성, 부귀를 페르시아에서 누렸다.

그는 페르시아 제국의 식민지였던 헬라스 지역으로 총독으로 말년을 보내다가 65세에 눈을 감았다.

 

불패의 신화를 갖고 있던 페르시아군에 치욕적 패배를 안긴 장본인이 페르시아의 품 안에서 권력을 누리다가 세상을 떠났으니 이보다 더한 역사적 아이러니가 없다.

 

역사적 사실을 만화처럼 꾸민 영화

 

'300'을 만든 잭 스나이더 감독이 공동으로 각본을 쓰고 부인이자 제작자인 데보라 스나이더와 공동 제작한 영화 '300: 제국의 부활'은 노암 머로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

이 영화는 독특하다.

 

어찌보면 전작인 '300'의 속편이면서도 일정 부분 시간과 장소를 공유하는 연작이다.

즉, 전작에서 다룬 테르모필레 전투 이후가 나오고 전작에서 죽은 레오니다스 왕비가 복수에 나선다는 점을 보면 속편이다.

 

하지만 아르테미시움 해전은 테르모필레 전투와 같은 시기에 벌어진 일이다.

마치 한 몸에서 난 여러 머리를 가진 케르베로스처럼 이 작품은 '300'과 시공간을 공유하며 서로 다른 사건으로 엮은 같은 이야기를 한다.

 

이처럼 독특한 구성의 발단은 '300'의 원작 그래픽 노블을 그린 프랭크 밀러의 아이디어였다.

밀러가 제안한 해전 아이디어를 잭 스나이더가 드라마틱하게 씨줄 날줄처럼 엮었다.

 

눈에 띄는 것은 페르시아 함대를 지휘하는 여제독 아르테미시아를 연기한 에바 그린이다.

그는 여린 외모와 달리 잔악해 보이는 연기를 실감나게 펼쳤으며 몸을 아끼지 않고 액션 투혼을 발휘했다.

 

전작과 달리 해전을 다루면서 스케일은 커졌지만 소수정예의 비장한 싸움을 다룬 전작 '300'의 숨막히는 긴장감은 많이 희석됐다.

그래도 실감나게 재현한 고대 해전이 볼 만 하다.

 

여전히 스피디한 진행과 드라마틱한 슬로 모션이 교차하는 액션 장면은 전작처럼 잔혹한 순간을 극대화해 눈길을 사로잡는다.

다만 전작인 '300'에서 보여준 시각적 충격이 이후 '스파르타쿠스' '롬'처럼 숱한 아류작들이 흉내내는 바람에 더 이상 강렬해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 문제다.

 

1080p 풀HD의 2.40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윤곽선이 선명하고 색감이 또렷해 화질이 좋은 편이다.

DTS-HD 7.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듯한 착각이 들 만큼 서라운드의 위력이 대단하다.

 

리어에서 덮치는 파도소리를 들으면 절로 뒤를 돌아보게 된다.

부록으로 제작과정, 역사적 배경, 배우 인터뷰, 전함 제작 과정, 배우들의 액션 훈련 등이 한글 자막과 함께 모두 HD 영상으로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C에서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멸한 스파르타 결사대의 최후를 보여주면서 전작과의 연관성을 강조했다. 제작진은 다큐멘터리를 만드는 게 아니어서 실제보다 싸움 장면을 만화처럼 극적으로 과장했다. 

스파르타를 강렬한 붉은 색 망토로 상징했다면, 아테네는 냉정하고 침착한 푸른색 망토로 표현했다. 배우들은 찌르거나 베는 장면에서 반토막짜리 검이나 4분의 3만 남은 검을 사용했다. 검 끝은 CG로 그렸다. 

마라톤 전투 장면에 등장하는 주인공 테미스토클레스 역은 설리반 스테이플턴이 연기. '위대한 개츠비'에 나온 조엘 에저튼도 주인공 역을 제안 받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매춘부나 도기공들이 살았던 거리인 케라메이코스에서 자랐다. 그만큼 비천했다는 증거다. 

검은색과 황금색으로 상징되는 페르시아 제국. 만약 살라미스 해전에서 그리스가 졌다면 그리스는 역사에서 사라졌을 것이다. 

아테네 풍경은 당연히 컴퓨터그래픽이다. 원래 잭 스나이더는 속편을 만들 계획이 없었는데, 프랭크 밀러가 테미스토클레스 이야기를 해 속편을 구상하게 됐다. 

목이 잘리고 피가 튀는 잔혹 영상은 여전하다. 페르시아 함대를 지휘한 여제독 아르테미시아를 연기한 에바 그린. 아르테미시아는 실존 인물이다. 

촬영은 불가리아의 누 보야나 영화사 스튜디오에서 진행. 무기 갑옷 등 각종 소품도 불가리아 수공예 장인들의 손을 빌렸다. 고대 함선은 이동할 때만 돛을 펴고, 전투 중에서는 돛을 접었다. 그리스 함선은 폭 6미터, 길이 35~40미터였다. 

아르테미시움과 살라미스 해전은 리더의 중요성을 여실히 보여준다. 수적 열세였던 그리스 함대는 원형 진을 형성하고 있다가 페르시아 함대가 접근한 순간 진형을 풀며 빠르게 배를 회전시켜 양쪽에서 페르시아 군선의 옆구리를 들이받아 두 동강 내는 전법을 썼다. 

해전 영화인데도 전혀 물을 사용하지 않고 찍었다. 사방을 그린 스크린으로 둘러친 스튜디오에서 배우들의 동작을 촬영한 뒤 컴퓨터그래픽으로 배경을 합성했다. 

이 작품에서 매력적인 악역으로 등장하는 페르시아 함대의 여제독 아르테미시아는 현재 터키의 보드룸인 할리카르나소스 출신이다. 영화에서는 그가 페르시아의 왕인 다리우스의 총애를 받았다고 나오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 지략이 뛰어났던 그는 다리우스 왕의 아들인 크세르크세스에게 참모로서 전술적 조언을 하기도 했다. 

페르시아의 크세르크세스 왕은 살라미스 해협이 내려다보이는 높은 언덕 위에 의자를 갖다놓고 전투를 조망했다. 

크레스크세스 왕은 아르테미시아가 살라미스 해전에서 패하지만 여전히 총애했다. 특히 왕은 아르테미시아가 해전에서 보여준 용맹을 높이 사서 그리스 갑옷을 만들어 선사했다. 갑옷을 선사한 것은 어떤 남자보다 용맹하다는 뜻이다. 

제작진은 그리스 군선의 선체를 만들어 짐벌 위에 올려 놓고 흔들며 촬영. 페르시아 군선은 선수와 선미만 실물로 제작하고 선체는 CG로 그려 넣었다. 

영화에서는 아르테미시아가 전사하지만 실제로는 살라미스 해전에서 무사히 후퇴했다. 그후 그의 행적에 대해서는 역사적 기록이 남아 있지 않지만 후손들이 할리카르나소스를 통치한 것을 보면 계속 명성을 누린 것으로 보인다. 

스파르타의 고르고 여왕이 테르모필레 전투에서 전사한 남편 레오니다스 왕의 복수를 위해 함대를 이끌고 아테네를 지원하는 영화 내용은 허구다. 레오니다스는 왕비에게 결혼해서 아이를 많이 낳으라는 유언을 남겼다. 실제로 출산은 스파르타 여인들의 중요한 일이었다. 

프랭크 밀러의 '크세르크세스'가 원작으로 돼 있지만, 촬영 종료 직전까지 원작 그래픽노블은 출간되지 않았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300: 제국의 부활 : 블루레이
감독:노암 머로 출연:설리번 스테이플턴, 에바 그린, 레나 헤디, 로드리고 산토로 외
300: 제국의 부활
감독:노암 머로 출연:설리번 스테이플턴, 에바 그린, 레나 헤디, 로드리고 산토로 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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