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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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

이정철 감독의 데뷰작 '가족'(2004년)이 지난해 히트작 중 하나라는 게 이해가 안 간다. 추석 때 개봉한 이 작품은 200만 명 이상의 관객이 들며 흥행에 성공했고, 수애에게 청룡영화상 신인여우상까지 안겨줬다. 주된 내용은 부녀 간의 갈등 때문에 삐뚤어지게 자란 딸이 감옥을 다녀온 뒤 아버지(주현)의 사랑을 점차 깨닫는다는 것. 도식적이고 뻔한 줄거리에 이렇다 할 에피소드도 없고 더할 수 없이 심심한 내용인데도 불구하고 추석이라는 시점과 대박 경쟁작이 없었던 것이 흥행의 요인이 아닌가 싶다. 극장에서 볼 만한 영화라기보다 TV 단막극으로 소화할 만한 작품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평범한 그저 그렇다. 내용이 그렇듯 영상에도 이렇다 할 임팩트 요소가 없다...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지브리 스튜디오의 애니메이션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平成狸合戰ぽんぽこ, 1994년)은 인간의 자연 파괴를 너구리의 입장에서 다룬 문명비판적 작품이다. 1960년대 일본의 갑작스러운 개발정책으로 숲이 파괴되면서 삶의 터전을 잃게 된 너구리들이 집단회의 끝에 변신술을 사용해 인간들에게 맞서는 내용이다. 비록 희화화된 애니메이션 캐릭터들이 등장하지만 메시지만큼은 어느 드라마나 다큐멘터리 못지않게 무겁고 진지하다. 덕분에 1994년 앙시 국제애니메이션 페스티벌에서 장편 영화상을 받았지만 같은 지브리 스튜디오 소속인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의 작품에 비해 내용이 대중적인 편은 아니다. 그렇다 보니 좀 늘어지는 감이 든다. 어찌 보면 그런 점이 미야자키 하야오와 대비되는 다카하타 이사오(高畑勲) 감독의 뚜렷한 특징이..

미스터 & 미세스 스미스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Mr & Mrs Smith, 2005년)는 어른들을 위한 결혼에 대한 우화다. 영화 속 주인공인 스미스 부부(브래드 피트 Brad Pitt &앤젤리나 졸리 Angelina Jolie)는 연애시절 달콤한 사랑을 꿈꾸며 만나 서로를 알아가는 신혼을 거쳐 어느덧 5~6년이 지나면서 서로에게 무감각해지는 권태기를 맞는다. 둘 다 직업이 킬러여서 서로를 터놓을 수 있는 기회가 없었다는 점도 한 몫했다. 결과적으로 여기서 돌파구가 되는 것은 직접적인 충돌이다. 영화는 부부의 갈등을 총과 주먹을 사용하는 극단적 방법으로 해결한다. 쌓이고 쌓인 서로에 대한 감정을 온 집안을 날려버릴 만큼 강렬한 총격전과 죽일 듯 주먹을 주고받는 화끈한 부부싸움으로 분출한다. 현실에서 결코 이뤄지기 힘든 일..

슈베르트 '죽음과 소녀'-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 DVD

유명한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Alban Berg Quartett)이 연주한 슈베르트(Franz Peter Schubert)의 '죽음과 소녀' DVD 타이틀이 나왔다. 아주 조용히, 소리 소문 없이 한글 자막이 들어간 라이선스반으로 나왔다. 영화도 잘 안 팔리는데, 하물며 클래식 DVD가 팔릴까 싶어서 그랬는지 너무 소리 없이 나와 안타까울 지경이다. 안타까운 까닭은 알반베르크 현악4중주단의 '죽음과 소녀'(Streichquartett No. 14 ‘Der Tod und das Mädchen)는 이대로 묻히기에 너무 아까운 최고의 연주기 때문이다. 이 곡을 연주한 악단은 많지만 이들의 연주가 가장 드라마틱하다. EMI에서 나온 이들의 CD음반을 처음 들었을 때 2악장에서 느꼈던 숨이 막힐 듯한 감동을 지..

더 독

이소룡이 위대한 전설로 남을 수 있었던 이유는 끝까지 그의 아우라를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는 '맹룡과강' '당산대형' '정무문' '사망유희' 등 홍콩에서 촬영한 작품은 물론이고 미국 제작사에서 만든 '용쟁호투'에서도 특유의 괴조음과 비장미 넘치는 무술 영웅의 이미지를 유지했다. 그는 모든 작품에서 팬들이 원하는 것을 제대로 알았고 한 번도 팬들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환경이 달라진다고 옷을 갈아입으면 자신의 색깔을 잃고 만다. 특히 자신의 몸에 맞지 않는 옷일 경우 더욱 추해 보인다. 루이스 레테리어(Louis Leterrier) 감독의 '더 독'(Unleashed, 2005년)은 무술 스타 이연걸(李连杰)을 구겨진 걸레처럼 더 할 수 없이 초라하게 만든 작품이다. 그의 액션은 변함없이 화려하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