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2014/08 11

가장 따뜻한 색 블루 (블루레이)

1990년대 후반, 특이한 취재 경험을 한 적이 있다. 언론을 통해 처음 커밍 아웃을 하게 된 어느 여성이다. 한창 혈기방장한 20대에 어울리게 가죽 옷을 입고 긴 머리를 휘날리며 담배를 피워물던 그는 록커 느낌이 물씬 났다. 아닌게 아니라 밴드 활동을 하기도 했고, 다소 약간은 겉멋처럼 동성애에 빠져든 그 친구를 따라 처음으로 서울 신촌 사거리에 있는 여성 동성애자들의 아지트 같은 카페를 방문했다. 들어서자마자 깜짝 놀랐다. 출입을 막지는 않았지만 금남의 집이나 다름없는 그 곳에 여기저기 남자들이 앉아 있었다. 개중에는 정장에 넥타이를 맨 사람도 있었다. 그런데, 그 친구의 소개로 하나 둘 만나보니 그곳에 남자들은 하나도 없었다. 큰 키에 청바지와 남방을 받쳐 입고, 머리를 군인처럼 짧게 자른 선머슴 ..

명량

이순신 장군을 다룬 영화의 최대 난관은 바로 이순신을 그리는 것이다. 1970년대 국민학교 교과서에 무과 시험 중 낙마했으나 버들가지로 다리를 동여매고 시험을 치른 장군의 일화가 등장할 만큼 익숙한 존재인지라, 피상적으로라도 장군을 아는 사람들이 많기 때문이다. 따라서 장군에 얽힌 연대기적 이야기들은 동어반복으로 보일 수 있기 때문에, 그 이면에 드러나지 않은 부분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결국 인간 이순신을 그려야 하는 것이 난제인데, '난중일기'를 제외하고 그의 진면목을 알 수 있는 사료들이 많지 않다는 점이 문제다. 최단 기간 내 1,000만 관객을 돌파한 김한민 감독의 '명량'(2014년)도 마찬가지 한계를 안고 있다. 1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해전 장면은 볼 만 하나 이순신의 모습이 피상적으로 ..

영화 2014.08.15

피아노 (블루레이)

제인 캠피온 감독은 작품들 속에서 여성의 사회적 지위와 홀로서기에 대해 일관된 메시지를 견지해 왔다. 이를 대표적으로 보여 주는 작품이 바로 '피아노'(The Piano, 1993년)다. 이 작품 속 주인공인 에이다(홀로 헌터)는 아주 척박한 환경에 놓인 외로운 여성이다. 그의 현실을 대변해 주듯 사방이 온통 진흙밭 투성이인 뉴질랜드에서 그는 오로지 딸과 피아노에 의지해 살아간다. 하나 뿐인 남편(샘 닐)은 온통 땅을 사서 넓히는데만 관심이 있고, 에이다를 이해하려고 하지 않는다. 엎친데 덥친 격으로 에이다는 말을 하지 못한다. 오로지 딸과 수화로만 대화하는 에이다에게 유일하게 감정을 표출할 수 있는 통로는 피아노 뿐이다. 그가 때로는 부드럽게 때로는 격정적으로 연주하는 피아노는 에이다의 말이자 감정이다..

니드 포 스피드 (블루레이)

스캇 워 감독의 '니드 포 스피드'(Need for Speed, 2014년)는 게임의 후광을 등에 업은 영화다. 1994년 PC용으로 처음 나온 동명 게임은 플레이스테이션 시리즈인 '그란투리스모'와 더불어 자동차 게임의 최고봉으로 꼽힌다. 예전 도스 시절 '문라잇 매드니스'와 더불어 속도감을 만끽할 수 있는 몇 안되는 PC게임이었다. 이 게임의 묘미는 경주에서 이기면 보상으로 새로운 자동차를 받을 수 있고, 경찰과 쫓고 쫓기는 추격전을 통해 아드레날린 지수를 마구 높일 수 있다는 데 있다. 특히 쉽게 타보기 힘든 어마어마한 가격의 슈퍼카를 가상 공간에서나마 마음껏 몰아보는 재미가 있다. 영화는 게임의 이 같은 묘미를 그대로 가져왔다. 코닉세그 아제라, 포드 머스탱, 부가티, 람보르기니, 맥라렌 등 슈퍼카..

설국열차 (블루레이)

봉준호 감독의 '설국열차'(2013년) 블루레이가 최근에 국내 출시되자마자 화질 논란에 휩싸였다. DVD프라임에서 일부 이용자들이 문제제기를 한 부분은 두 가지다. 검은 부분에서 기름때가 번지듯 둥글게 곡선을 그리며 번지는 현상(벤딩)과 파편처럼 깨지는 현상, 그리고 전체적으로 블랙의 밝기가 떠서 회색에 가깝게 보인다는 것. 급기야 전량 회수(리콜) 논란이 일고 일부 이용자가 봉 감독에게 이메일을 보내고 제작사에 문제제기를 하면서 봉 감독이 직접 나섰다. 불거진 화질 논란...제작사 측, '리콜은 없다'는 의견 그가 DVD프라임 게시판에 전달한 글을 보면 자신의 소장기기(삼성DLP 프로젝터 800B)에서는 문제 없었다는 것이고, 이용자들이 비교 대상으로 삼은 프랑스판과 비교했을 때 장단점이 있다는 요지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