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171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

'람보'와 '록키'가 실베스터 스탤론의 대명사였듯이 '코만도'와 '터미네이터'는 아놀드 슈왈츠제네거를 상징하는 대명사다. 그만큼 '터미네이터' 시리즈는 아놀드가 빠지면 팥 없는 찐빵이다. 맥지 감독이 만든 터미네이터 4번째 시리즈 '터미네이터: 미래전쟁의 시작'(Terminator Salvation, 2009년)이 그 꼴이 됐다. 아놀드가 나오지 않을 뿐더러(영화 후반 등장하는 아놀드 모습은 특수 분장을 한 대역이다) 전작들에서 보여준 물질문명에 경도된 인간을 준엄하게 질타하는 메시지도 사라졌다. 팥 대신 찐빵을 채운 것은 화면 가득 요란하게 때려부수는 액션 뿐이다. '미녀 삼총사' 시리즈를 감독한 맥지 답게 이번 작품은 활극에 초점을 맞췄다. 터미네이터와 사라 코너의 자리는 크리스찬 베일과 샘 워싱턴이..

영화 2009.06.05

마더

모성은 위대하다. 자식을 위해서라면 목숨을 거는 일도 마다 않는다. 그래서 때로는 투사가 되기도 하고, 때로는 악마가 되기도 한다. 봉준호 감독의 '마더'는 그 위대하고도 무서운 모성을 다루고 있다. 바보 취급을 받는 아들(원빈)이 어느날 우연히 살인사건 용의자로 경찰에 잡혀가면서 엄마(김혜자)의 고난은 시작된다. 아무도 아들 편을 들어주는 사람이 없는 세상에서, 엄마는 아들의 결백을 밝히기 위해 외롭고 힘든 싸움을 한다. 엄마가 상대해야 할 적은 세상의 벽이다. 사람들의 편견과 공권력이 쌓아올린 벽은 개인이 상대하기에는 힘에 부칠만큼 벅차다. '살인의 추억'과 '괴물'에서 그랬듯 '무대뽀' 정신으로 일관하는 공권력은 무자비한 것은 물론이고 우둔하기 까지 하다. 그 앞에 선 개인은 한 없이 무력하다. 그..

영화 2009.06.01

잘 알지도 못하면서

오래전 홍상수 감독의 어떤 작품 언론시사회를 다녀온 뒤 호된 비판을 한 적이 있다. 개인적으로는 재미있는 작품이었다. 하지만 그 전에 나온 작품들과 궤를 같이 하는 그의 끝없는 자기 복제가 지나쳤다고 봤기 때문이다. 적어도 돈을 받고 상영하는 상업 영화 감독이라면 그래서는 안된다는 생각이었다. 그러나 지금 그 작품을 다시 본다면 그렇게 비판하지 않을 것 같다. 어느덧 자기 복제는 그의 색깔이 돼버렸다. 이제는 망하든 흥하든, 우디 앨런처럼 자기 스타일을 고집하는 그의 '선택'을 존중한다. 그의 9번째 작품인 '잘 알지도 못하면서'도 자기 복제는 여전하다. 심지어 김태우, 고현정 등 그의 전작들에서 등장한 배우들도 계속 출연한다. 이 작품은 그다지 유명하지 않은 영화감독이 자신의 선후배들을 만나면서 벌어지..

영화 2009.05.17

7급 공무원

신태라 감독의 '7급 공무원'은 제목 그대로 7급짜리 영화다. 영화에 등급을 부여한다고 가정했을 경우 가장 낮은 등급을 7급으로 책정했을 때 이야기다. 코미디 프로처럼 황당한 웃음을 지향하면서도 그다지 웃기지 않고, 첩보물 흉내를 내지만 액션은 싱겁다. 철저한 오락영화에서 재미와 볼거리가 없다면 볼짱 다봤다는 뜻이다. 이유는 한마디로 모든게 어설펐기 때문이 아닐까 싶다. 두 남녀가 정보원이면서 서로의 신분을 숨긴 채 일과 연애를 병행하는 이야기는 흡사 '미스터 앤 미세스 스미스'를 연상시킨다. 하지만 액션은 턱없이 부족하다. 반면 웃음을 유발하기 위한 억지 상황은 안스러울 정도. 국정원 직원들을 어찌나 바보처럼 묘사했던 지, 국정원 직원들이 이 영화를 보고 나면 화가 날 것 같다. 차라리 '총알 탄 사나..

영화 2009.05.10

박쥐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박찬욱 감독의 '박쥐'가 그런 작품이다. 박 감독이 '복수는 나의 것' '올드보이' '친절한 금자씨' '공동경비구역 JSA' 등 전작들에서 보여준 연출력이 워낙 뛰어났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칸 영화제 진출 소식과 박 감독이 스스로 자신의 가장 뛰어난 작품이라고 평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작품에 대한 기대를 한껏 부풀렸다. 작품에 대한 호불호는 사람마다 갈리겠지만 전작들에서 보여준 탄탄한 이야기 구조와 짜임새 있는 화면 구성 등을 이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힘들었다. 개인적으로는 '쓰리'도 그랬지만, 약간 비현실적인 판타지풍이 박 감독과 잘 안맞는게 아닌가 하는 생각도 든다. 영화는 철저한 이중성을 이야기한다. 성직자이면서 악마의 상징인 흡혈귀로 살아가는 남자와 성적 욕망에 몸부림치..

영화 2009.05.0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