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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천 DVD / 블루레이

고지전 (블루레이)

울프팩 2012. 1. 23. 13:53

장훈 감독의 '고지전'(2011년)은 지난해 본 우리 개봉영화 중에 가장 완성도가 높은 작품이었다.
전장의 긴박한 상황과 죽음 앞에서 흔들리는 인간의 심리를 깔끔하면서도 공감이 가도록 잘 표현했다.

무엇보다 이 작품은 전장에 나즈막히 깔리는 노래 한 자락이 모든 것을 말해준다.
그것도 한국전쟁 당시 히트한 고(故) 신세영의 '전선야곡'을 골라 병사들의 애절한 심경을 잘 드러냈다.

'전선야곡'이 우리 영화에 등장한 것은 처음이 아니다.
강제규 감독의 '태극기 휘날리며'에도 한국전쟁 초반 상황에 이 곡이 나오지만, 실제 이 곡은 1952년에 등장해 고증에서 어긋났다.

사실과 다르다보니 '태극기 휘날리며'에서는 나왔는 지 조차 모를 만큼 존재감이 없는 반면, '고지전'에서는 노래가 주연 배우 못지 않은 무게감으로 다가온다.
특히 최후의 일전을 앞두고 대치한 남과 북의 병사들이 한 목소리로 조용히 부르는 노래는 묵직한 감동을 자아낸다.

이 작품이 여느 전쟁물과 달리 남다른 진중함으로 다가오는 또다른 이유는 리얼한 묘사때문이다.
특히 피가 튀는 전장보다 생사의 갈림길에 선 병사들의 전쟁 스트레스를 참으로 미묘하게 잘 잡아냈다.

총알이 쏟아지고 팔다리가 흩어지는 잔혹한 전장은 특수효과를 통해 만들어 낼 수 있지만, 심리 묘사는 탄탄한 시나리오와 탁월한 연출, 배우들의 훌륭한 연기가 제대로 조합을 이루지 못하면 표현하기 힘들다.
그런 점에서 이 작품은 어설픈 감상주의로 흐른 '태극기 휘날리며'보다 훨씬 뛰어나다.

초반 맥거핀 역할을 한 북한군의 편지를 통해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보이도록 관객을 유도해 전장 한 복판으로 끌고 들어가는 장 감독의 연출 솜씨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다.
더러 작위적인 부분이 눈에 거슬리긴 하지만 덮고 넘어가도 될 만큼 완성도 면에서 빼어난 전쟁영화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우수하다.
무엇보다 세세한 흙먼지 하나까지 잡힐 듯 보이는 디테일이 훌륭하고 갈색톤의 색감도 잘 살아 있다.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서라운드 음향은 소리의 방향감과 이동성이 좋아 마치 전장의 한복판에 있는 것처럼 박진감 넘친다.
부록으로 감독과 배우들의 음성해설, 촬영과정, 특수효과, 시사회 풍경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 play 버튼이 붙은 사진은 버튼을 누르시면 관련 동영상이 재생됩니다. *

자료 사진 등을 통해 실감나게 되살린 한국전쟁 당시 풍경을 보면 장 감독도 꽤나 꼼꼼한 듯 싶다. 부천 세트장서 촬영한 도심 풍경.
휴전협상이 열린 판문점은 전주 인근에 만든 세트. 일부 배경은 CG로 만들었다.
초반 북한군의 전차가 등장하는 전투 장면은 전주서 촬영.
초반 흩날리는 눈발은 CG로 처리.
어느 한 쪽이 무조건 악에 받치거나 무조건 정의롭기만 한 스테레오타입 전쟁물이 아니어서 공감이 간다.
바른 생활이 불가능한 전장 스트레스를 리얼하게 살린 점이 가장 훌륭하다. 되먹지 않은 영웅담보다 낫다.
이념보다 죽음으로 내 몬 자가 적일 수 있다는 화두를 던져 준 작품.
신세영의 '전선야곡'을 새롭게 발견하게 해 준 작품. 과거 흘려듣던 트롯트가 이 작품에서는 더 할 수 없는 비장함으로 다가온다.
이제는 전쟁 영화라면 빠지지 않고 등장하는 핸드헬드 촬영은 다소 어지럽다. 다행히 쉐이커없이 자작 모터로 흔들어 댄 '태극기...'와 달리 심하게 흔들지 않아 멀미 날 정도는 아니다.
한국전쟁의 특성인 험난한 고지전을 아주 실감나게 묘사. 이를 위해 제작진은 산 꼭대기에 말뚝을 박고 와이어로 카메라를 연결해 병사들과 함께 서 있기도 힘든 경사진 비탈을 45도로 오르며 전투 장면을 촬영.
제작진은 화재로 헐벗은 산을 찾아 헤맨 끝에 충남에서 해발 650m의 백암산을 발견해 전장으로 세팅했다.
사람사는 세상이니 있을 수 있는 적끼리 소통하는 부분은 '공동경비구역 JSA'를 연상케 한다. 공교롭게 '공동경비구역 JSA'의 원작 소설가 겸 시나리오를 쓴 박상연 작가가 이 작품의 대본을 썼다.
'전선야곡'을 부른 신세영은 한국전쟁 당시 군 위문대로 전방 부대와 함께 북진했다가 포로가 될 뻔하기도 하는 등 전쟁 당시 죽음의 고비를 여러번 넘겼다고 한다.
주연 못지 않게 류승수 고창석 이제훈 류승룡 등 탄탄한 조연들의 연기가 훌륭했다.
'에너미 앳 더 게이트' '라이언일병 구하기' 등 2차 세계대전물에서는 숱하게 등장하는 저격 장면이 이 작품에도 등장. 저격병의 등장은 한국전쟁물에서는 흔히 보기 힘든 설정이다.
북한군의 편지 등은 일종의 맥거핀이다. 영화는 미스터리 스릴러처럼 시작하지만 본질은 그렇지 않다.
결단력있는 장교 역을 잘 연기한 고수.
한국전쟁 당시 실제 사용한 무기를 실탄이 발사되지 않도록 촬영용으로 개조해 사용.
소통의 장소가 된 14벙커는 스튜디오에 지은 세트. 빛을 잘 살렸다.
목욕 장면은 단풍든 가을에 촬영. 울긋불긋한 단풍은 CG로 색을 바꿨다.
이 안개가 걷히면 죽는다. 온 산을 자욱하게 뒤덮은 안개가 걷히지 않기를 간절히 바라는 마음으로 남과 북의 젊은이들은 '전선야곡'을 함께 부른다. 특히 '어머니의 흰머리가 눈부시어 울었소'라는 가사가 가슴을 절절하게 울린다. 영화속 가사는 노래와 달리 '이 아들의 공비는...'을 '이 아들의 명비는...'으로 더 절박하게 바꿨다. 안개는 CG로 처리.
4개의 강철봉을 X자로 연결해 여기에 카메라를 매단 뒤 4명이 들고 뛰면서 교통호 전투를 찍었다.
'전선야곡' 이후 이어지는 마지막 고지전은 영화의 클라이맥스다. 특히 온 세상을 아름다울 정도로 하얗게 휘감은 안개에서 적나라한 갈색 전장으로 바뀌는 색감의 대비가 강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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