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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과 시작

울프팩 2021. 2. 11. 00:26

민규동 감독의 '끝과 시작'(2013년)은 옴니버스 영화 '오감도'에 수록된 같은 제목의 네 번째 에피소드를 확대한 작품이다.

내용은 큰 줄거리는 같지만 일부 소소한 부분이 달라졌다.

 

단편은 재인(황정민)과 나루(김효진)가 자동차에서 정사를 벌이다가 사고를 당하는 장면으로 시작하지만 장편은 재인의 아내인 정하(엄정화)가 자는 장면으로 시작한다.

전체적인 이야기는 재인의 내레이션으로 진행된다.

 

또 재인과 나루의 이야기가 실은 동창회에서 만난 재인이 정하에게 구상 중인 작품을 들려주는 내용이다.

즉 액자 소설처럼 피카레스크식 구조를 갖고 있다. 

 

재미있는 것은 민 감독은 이를 상상이 현실로 되풀이되는 식으로 구성했다.

특히 과거 재인이 정하에게 들려준 상상 속 이야기가 미래에 재인과 정하가 결혼한 뒤 현실화된다.

 

민 감독은 이 과정을 과거와 현재, 미래가 서로 번갈아 전개되는 식으로 시간을 교차시켰다.

마치 뫼비우스의 띠처럼 서로 연결되는 이야기는 과거와 미래가 반복되면서 교차돼 결국 과거의 끝이 미래의 시작일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한다.

 

이는 곧 모든 관계에 적용되는 테제일 수 있다.

어떤 관계의 종말이 새로운 관계의 시작으로 이어지며 서로에게 영향을 미치는 구성은 지극히 변증법적이다.

 

물론 영화에서는 이런 관계가 이야기의 서술 외에 뚜렷하게 드러나지는 않는다.

어쩌면 민 감독은 몽환적이고 판타지적인 내용을 강조하기 위해 주제를 일부러 부각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그렇다 보니 단편은 이해하기 힘든 몽환적인 시처럼 끝나고 말았다.

그런 점에서 전체적인 상황을 이해하기에는 당연히 단편을 늘린 장편이 낫다.

 

하지만 작품의 주제가 뿌연 안갯속처럼 불투명하고 명확하지 않은 점은 대중과 소통하는 데 있어서 장애가 될 수 있다.

대신 시처럼 몽환적인 영상으로 느낌을 전달하는데 주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런 부분은 영화를 만든 감독의 입장에서 만족스러울 수 있지만 관객의 입장에서 보면 자의식의 과잉으로 보인다.

따라서 장편의 충분한 설명도 친절로 다가오지 않는다.

 

차라리 답답한 꿈이라면 길게 이어지기보다 빨리 깨는 것이 낫다.

장편보다 차라리 단편을 더 좋게 보는 이유다.

 

2.3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평범하다.

윤곽선이 두텁고 이중으로 나타나며 전체적으로 콘트라스트가 맞지 않아 화이트 피크가 높게 나타난다.

 

암부 디테일도 떨어진다.

음향은 돌비 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며 부록은 엄정화, 김효진이 함께 부른 '네가 오면' 뮤직 비디오와 예고편뿐이다.

 

참고로 한글 자막을 켰을 때 12분 40초부터 13분 사이에 자막이 사라진다.

13분 40초 부분에 다시 한글 자막이 나타나는데 음성과 씽크가 약간 어긋난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민 감독이 각본까지 썼다. 재인과 나루의 이야기는 재인이 정하에게 들려주는 작품 이야기로 시작된다.
김효진이 정하의 후배이자 정하의 남편과 불륜관계인 나루를 연기.
나루는 재인이 없는 정하의 집에서 정하와 함께 살아간다. 옛날 이야기도 아닌데 아내와 첩이 한 집에서 기묘한 동거를 한다.
'백두산'의 각본을 쓰고 감독 데뷔한 김병서 감독이 촬영을 했다. 그는 '신과 함께' '위험한 관계' '푸른 소금' 등을 찍었다.
"아내와 첩이 동시에 차려주는 제사상을 받는 복 터진 남자"라는 정하의 대사가 웃기다.
정하와 나루는 다분히 동성애적 관계라는 점을 암시한다. 자연광을 살린 촬영 덕분에 어두운 장면의 디테일이 DVD 타이틀에서 충분히 살아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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