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물을 전면에 내세운 영화는 많지만 당나귀가 주인공인 영화는 드물다.
로베르 브레송 감독의 작품 '당나귀 발타자르'(Au Hasard Balthazar, 1966년)는 당나귀의 일생을 다룬 영화다.
이 영화는 발타자르가 새끼 당나귀 시절부터 여러 주인의 손을 거쳐 죽음을 맞을 때 까지 당나위의 삶을 묵묵히 담아 냈다.
울음이나 특별한 행동없이 그저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이는 당나귀는 인간의 본성을 반추하는 거울이다.
영화 속 당나귀의 삶은 참으로 변화무쌍하다.
어린 시절에는 아이들의 사랑을 받지만 자라서는 무거운 짐마차를 끌고 채찍 세례를 받으며, 급기야 꼬리에 불이 붙기까지 한다.
여기에 당나귀의 삶은 능동적이지도 못하다.
즉, 자신의 삶에 주인이 되지 못하고 어떤 주인을 만나느냐에 따라 변하는 수동적인 삶을 살 수 밖에 없다.
짐마차를 끌기도 하고, 성인의 환생으로 추앙받기도 하다가 어느 순간 서커스 무대의 구경거리가 된다.
말없이 변화무쌍한 삶을 온 몸으로 견디는 당나귀의 모습에는 인간이 숨어 있다.
온갖 행태의 주인은 당나귀의 삶을 결정하는 정치체제일 수도 있고, 지배계급의 모습일 수도 있다.
그 안에서 가지 않겠다고 미약한 저항만 시도할 수 있는 당나귀는 온갖 정치 사회적 굴레를 쓰고 있는 피지배계급의 모습과 다를 바 없다.
그만큼 브레송 감독은 세상을 험악하게 봤다.
아니, 사람의 삶 자체를 온갖 험한 꼴로 가득한 고난의 연속으로 본 셈이다.
결국 당나귀에게 찾아드는 마지막 안식은 죽음이다.
급기야 밀수꾼들의 손에서 범죄도구로 이용되는 당나귀의 유일한 구원이 비극적 죽음이라는 것은 너무 비관적이고 염세적이다.
당나귀 못지 않게 별다른 표정 변화 없는 배우들의 연기도 특이하다.
연기 그 자체를 싫어한 브레송 감독이 대부분의 배역을 마을에서 캐스팅한 주민들에게 맡겼기 때문.
즉, 브레송은 필름에 연기가 아닌 삶을 담고 싶었다는 뜻이다.
당나귀를 주인공으로 내세운 것도 그런 뜻이 아닐까 싶다.
당나귀는 연기를 할 줄 모르기 때문에 영화 속 모습이 실제 삶 자체이다.
따라서 연기를 통해 허구의 삶을 보여주는 배우들의 거짓 몸짓과 달리 작품 속 당나귀의 움직임에는 실제 삶이 주는 묵직한 진실의 울림이 담겨 있다.
그것이 보는 이에게 다양한 느낌을 불러 일으키는 점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1.66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화질이 좋지 않다.
디테일이 떨어지고 윤곽선은 예리하지 못하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5.1 채널을 지원하지만 서라운드 효과를 느낄 만한 부분이 없다.
부록도 전혀 없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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