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박하사탕 (블루레이)

울프팩 2013. 6. 27. 07:06
영화가 시작되고 나서 얼마 후, 철로 위에 올라 선 설경구의 얼굴이 스크린을 가득 메우며 달려오는 기차를 향해 두 팔을 활짝 벌리고 "나 다시 돌아갈래"라고 외치는 충격적인 장면이 나온다.
그 장면의 인상이 어찌나 강렬하던 지, 이창동 감독의 '박하사탕'(1999년) 하면 우선 떠오른다.

'초록 물고기'로 감독 데뷔한 이창동 감독이 두 번째로 만든 이 영화는 설경구가 연기한 영호라는 인물이 겪은 20년을 다루고 있다.
1979년부터 자살로 생을 마감하는 1999년까지 현대사의 가장 아픈 부분이 한 인물의 기억 속에 고스란히 녹아 있다.

이를 위해 각본을 직접 쓴 이 감독은 영호의 죽음부터 과거로 시간을 되짚어 올라가는 플래시백 기법을 사용했다.
시간을 거꾸로 올라가는 방식이 처음 나온 것은 아니지만, 이 작품에서는 아주 효과적이다.

주인공의 죽음으로 시작해 충격을 주면서 도대체 왜 죽어야만 했는 지 이유를 따져보는 과정이 미스테리 영화처럼 궁금증을 불러 일으켰다.
공장 노동자 출신의 순하디 순한 청년이 광주민주화항쟁의 진압군, 서슬퍼런 군사 정권 아래서 공안 경찰을 거치며 변해가는 과정은 그 자체가 인간성 말살의 비극이다.

이를 한 개인의 잘못이라고 치부하기에는 역사의 짐이 너무 크고 무겁다.
그만큼 영호의 변화는 사회구조와 제도라는 환경속에서 자유로울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이는 곧 치유될 수 없는 영호의 상처이자, 같은 시대를 살았던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안고 있는 내상이기도 하다.
그렇기에 이 감독도 속죄하는 심정으로 이 영화를 만들었다고 한다.

형식이나 구성 면에서 이 영화는 대단히 훌륭하다.
무엇보다 우리를 속박하는 현대사의 20년을 결코 길지 않은 시간인데도 함축적으로 잘 표현했다.

특히 시간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각각의 기억이 옴니버스 영화처럼 전개된다.
즉, 토막난 조각이 하나의 거대한 그림을 이루는 퍼즐처럼 유기적으로 물려 상당히 치밀하고 설득력있게 영호의 죽음을 설명한다.

여기에는 상영시간 130분 내내 영호 그 자체로 산 설경구의 뛰어난 연기도 한 몫 했다.
신인 아닌 신인 설경구는 이 영화로 제 37회 대종상과 제 36회 백상예술대상, 제 29회 영평상에서 신인남우상을 휩쓸었다.

뿐만 아니라 이 작품은 체코의 카를로비바리영화제에서 심사위원특별상을 받기도 했다.
2011년 체코의 휴양도시 카를로비바리(=까를로비바리, http://wolfpack.tistory.com/entry/체코의-까를로비바리)를 간 적이 있는데, 그 곳에서도 한국영화로 김기덕 감독의 작품들과 이 작품을 우선 떠올렸다.

1080p 풀HD의 1.8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화질이 준수하다.
장면에 따라 디테일이 떨어지는 등 편차는 있지만 채도나 색감 등이 과거 소장 의욕을 떨어뜨리는 DVD에 비하면 월등 좋다.

문제는 DTS-HD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기차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동하는데 소리는 계속 리어에서 흘러 나오는 식으로, 무조건 인위적인 채널 분리를 하다 보니 효과음이 영상과 맞지 않아 자연스럽지 못하다.

부록으로 이 감독과 이동진 기자의 음성해설, 제작과정, 오디션 장면 및 아웃테이크, 카를로비바리 영화제 영상 등이 들어 있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 play 표시가 있는 사진은 play 버튼을 누르면 관련 동영상이 나옵니다.*
영호(설경구)가 순수했던 시절을 그리워하며 유언처럼 "나 다시 돌아갈래"를 외치는 충격적인 장면이 상당히 인상 깊다. 이 장면은 충북 재천의 진소천 기찻길에서 기차가 들어오는 시간에 맞춰 촬영했다.
나락으로 떨어진 영호가 비참하게 살아가는 비닐하우스 장면은 경기 일산서 촬영.
수 많은 영화에서 단역으로 출연한 경향신문의 영화담당기자였던 배장수 선배가 카메라점 주인으로 등장.
김여진이 설경구의 아내 역을 맡았다.
이 영화에는 의외로 아는 얼굴들이 단역을 맡아 많이 나온다. 설경구의 가구점 여직원으로 나온 배우는 바로 김기덕 감독의 '섬'에서 주연을 맡은 서정이다.
시대가 바뀔 때마다 거꾸로 달리는 기차는 챕터를 나누는 역할을 한다. 이를 위해 제작진은 태백선 기차 맨 뒷 칸에 카메라를 매달고 촬영한 뒤 이를 반대로 돌렸다.
경찰관 역할로 공형진도 출연.
이 작품은 노래하는 장면이 심심찮게 등장한다. 샌드페블즈의 '나 어떡해', 론리 제임스 디오가 몸 담았던 메틀밴드 레인보우의 'Catch The Rainbow' 등이 시대를 상징하는 배경처럼 쓰였다. 설경구는 경찰 회식 장면에서 김수철의 '내일'을 분위기있게 아주 잘 불렀다.
군산 술집으로 나오는 물망초는 서울 마포구 용문동에 있는 실제 술집을 빌려 오픈세트로 활용했다.
군산 술집 아가씨로 나온 배우는 '살인의 추억'에서 여경으로 나온 고서희. 당시 21세였다. 얼굴을 알아볼 수는 없지만 '살인의 추억'에 박노식도 공원으로 등장.
정작 식당 장면은 군산시 운율동에서 촬영. 이 작품은 감독의 친구인 명계남이 제작을 맡았고, 문성근도 제작비 지원을 도왔다.
여주인공을 연기한 문소리. 이 감독은 "오디션을 통해 문소리를 뽑았는데 가장 눈에 띄었다"고 기억했다. 블루레이에 실린 제작과정을 보면 문소리가 식당 장면에서 연기가 뜻대로 되지 않아 울음을 터뜨리고 스스로 머리를 때리는 장면이 나온다.
박하사탕은 사랑을 잇는 매개체이자 영호가 순수했던 시절의 흔적이다. 박하사탕 공장에 다니는 순임(문소리)은 군에 간 영호에게 편지를 보낼 때 마다 사탕을 하나씩 넣어 보낸다.
김인권도 군인으로 잠깐 등장. 짧은 장면이지만 군인 말투 연기가 자연스러웠다.
광주거리에 투입된 군대가 시민들을 쫓는 장면은 서울 은평구 수색역에서 촬영.
진압군 얘기는 이 감독이 당시 투입됐던 사람들에게 직접 들은 내용을 소재로 썼다고 한다.
이 감독은 "시간을 영화적 이미지로 보여주고 싶어 기찻길을 담았다"고 한다. 촬영과 조명은 그 분야를 대표하는 김형구 촬영감독과 작고한 이강산 조명감독이 맡았다. 이모개 촬영감독도 촬영부 스탭으로 참가.
박하사탕 SE (2Disc)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박하사탕 : 블루레이
이창동 감독/설경구 출연/문소리 출연/김여진 출연
예스24 | 애드온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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