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

울프팩 2012. 2. 4. 23:36

2005년 윤종빈 감독이 '용서받지 못한 자'를 들고 나왔을 때, 훗날 꽤 문제작을 만들 만한 감독으로 보였다.
쉽게 다루기 힘든 군대 내 부조리를 다큐멘터리처럼 묘사한 솜씨가 일품이었기 때문.

그로부터 7년, '범죄와의 전쟁 : 나쁜 놈들 전성시대'로 돌아온 그의 시선은 한층 예리하고 깊어졌다.
윤 감독이 각본까지 쓴 이 작품은 피라미드처럼 올라가는 권력에 기생하는 한 사나이의 비루한 삶을 다뤘다.

부패한 세관공무원이었다가 해고된 익현(최민식)은 살아남기 위해 뒷골목 권력인 조폭두목 형배(하정우)와 손을 잡고, 더 잘 살기 위해 검사 정치인 등 권력의 상층부에 줄을 댄다.
더럽게 얽힌 먹이사슬 속에서 큰 권력은 작은 권력을 잡아먹거나 비호하며 썩은 내를 풍긴다.

그렇기에 스러지는 희생자들은 결코 동정받지 못한다.
모두가 하나 같이 '나쁜 놈들'이기 때문.

유일하게 선한 희생자가 있다면 그들의 가족이다.
한밤 중 들이닥친 경찰의 손에 끌려가는 수갑 찬 애비를 봐야 하고, 피비린내 풍기는 건달들 틈바구니에서 호로새끼가 될 지 모를 위협 속에 하루하루 살아간다.

이를 윤 감독은 시종일관 긴장의 끈을 놓치 않고 건조하게 잡아 냈다.
일말의 감상이 배어들 여지없이 무색무취한 마초들의 세계와 권력의 암투를 핵심만 짚어서 일목요연하게 보여준다.

그토록 냉정한 영상이 어느 순간 가슴을 먹먹하게 하는 지점이 있다.
얼치기 악당이 돼가는 익현이 제 새끼는 잘 키우려고 아들을 보듬는 장면이다.

감정선을 자극하는 대사나 연기없이 드라이하게 잡은 영상 속에 오히려 속 깊은 부정이 느껴진다.
더불어 애잔한 부정이 무서운 권력으로 귀결되는 엔딩을 보면 등골이 서늘하다.

단순 깡패들의 싸움을 다룬 여느 건달 영화와 달리 권력의 부조리를 제대로 짚어낸 점이 돋보인다.
냉정한 악당을 연기한 하정우와 반 건달(반달)로 등장한 최민식은 물론이고, 검사 역의 곽도원, 익현의 오른팔을 연기한 김성균, 반대파 조직 두목 역의 조진웅 등 배우들도 실감나게 연기를 잘해줬다.

시대적 배경은 1980년대와 90년대이지만 요즘 풍경이 자꾸 중첩된다.
연일 신문지면을 장식하는 사건들과 크게 다르지 않기 때문.

세월은 흘렀어도 나쁜 놈들은 그대로다.
영화 속에서 흘러나오던 1980년대 초반 인기를 끈 이명훈의 '그대로 그렇게'와 함중아와 양키스의 '풍문으로 들었소'라는 노래 제목 조차도 이런 현실을 꼬집는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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