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하울링

울프팩 2012. 2. 18. 15:02
개를 살인 교사에 이용하는 이야기 중에 가장 충격적이었던 것은 어린 시절 읽었던 '바스커빌가의 개'였다.
아더 코난 도일 경이 쓴 셜록 홈즈 시리즈인 이 작품은 지옥의 개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등골이 오싹했다.

늑대개가 사람을 잇따라 물어죽이는 연쇄살인을 다룬 유하 감독의 '하울링'도 이 같은 범주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개가 사람의 목줄을 물어뜯는다는 설정은 그럴 법 하기에 섬찟하다.

다만 주변에서 늑대개를 본 적이 없기에, 이들을 훈련시켜 살인무기로 쓴다는 설정이 가능한 지 모르겠다.
과학적 진실과 개연성을 떠나 일본 원작 소설을 토대로 한 소재의 참신함은 눈길을 끌기에 충분하다.

특히 늑대개라는 설정은 여러가지를 상징한다.
오랜 세월 인간과 가까이지낸 가축인 개와 분명히 야수인 늑대의 교배는 야성과 사회성의 충돌을 의미한다.

영화 속에서 늑대개는 비단 동물에 국한하지 않는다.
송강호와 짝을 이뤄 강력반 여형사로 등장하는 이나영은 사실상 늑대개 같은 존재다.

남자들만 우글거리는 강력반에 무슨 여형사냐, 책상이나 지키며 허드렛일이나 하라는 등 편견에 사로잡힌 경찰들의 시선은 곧 아직까지 이 사회에 남아있는 무언가 바꿔보려고 나서는 독립적인 여성을 바라보는 잘못된 시각일 수 있다.
그렇기에 잘못된 편견의 틀을 깨고 존재의 정당성을 입증하기 위해 홀로 고군분투하는 이나영의 모습에 늑대개가 중첩될 수 밖에 없다.

무엇보다 이 같은 설정이 자연스러웠던 것은 결코 오버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이나영이 멋드러진 액션으로 적을 때려부수는 슈퍼영웅같은 여형사가 아니라, 체력적으로 한계가 있는 우리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여성들의 모습을 고스란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야성과 사회성의 충돌 속에 이를 넘지 못하는 안타까운 여형사의 모습이나 막판 늑대개의 최후는 예상가능한 이야기이지만 공감할 만한 울림을 만들어 낸다.
그 점이 바로 이 영화의 힘이다.

그런 점에서 이 영화의 주인공은 이나영이다.
그의 싸늘한 연기는 사회성의 틀을 깨려는 늑대개 같은 존재를 훌륭하게 표현했다.

막판까지 꾸준히 긴장감을 유지한 유하 감독의 연출력도 칭찬할 만 하다.
'말죽거리 잔혹사'만큼 가슴 짠한 추억어린 감동을 주지는 못했지만, 있는 대로 겉멋을 부린 엉성한 영화인 '비열한 거리'보다는 잘만든 볼 만한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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