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은 추억을 간직한다.
세월이 흘러 사람이 변하듯 집도 낡고 퇴색해 가지만 그 속에 들어 있는 흔적들은 오래된 사진처럼 고스란히 남아 추억을 불러 일으킨다.
이용주 감독의 '건축학개론'은 오래된 집에서 시작해 새 집으로 끝난다.
오래된 집에는 풋풋했던 대학 시절 첫사랑의 기억이 묻어 있다.
자신만만하면서도 사실은 두렵고, 좋아하면서도 그런 척 하지 않는 용기와 두려움, 사랑과 질투의 이율배반적인 감정이 함께 도사리고 있는 청춘기의 사랑은 그래서 시행착오적일 수 밖에 없다.
이제훈과 수지가 연기한 청춘의 사랑은 그만큼 안타깝고 불안하다.
세월이 흘러 두 사람이 다시 만나는 계기가 된 새 집은 새로운 기억을 만들기 위한 매개체가 된다.
하지만 엄태웅과 한가인이 연기한 훗날의 두 사람은 결코 옛 기억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실제 건축학도였던 이용주 감독은 가슴아픈 첫 사랑의 기억을 과거와 현재를 넘나들며 오래된 집을 새로 증축하듯 정교하게 쌓아 올렸다.
10년의 간극이라면 굳이 예전 모습과 요즘 모습을 서로 다른 배우들이 연기하지 않아도 됐을텐데, 일부러 나눠서 서로 다른 감정과 기억을 명확히 구분한 설정도 좋았다.
그만큼 배우들의 연기도 훌륭했다.
의외로 외모가 많이 변해 놀라게 만든 한가인보다 수지의 풋풋한 연기가 더 눈에 들어 왔고, 엄태웅과 이제훈의 연기는 진정성이 느껴진다.
"하드디스크가 1기가면 평생 쓰겠다"는 대사처럼 시대를 반영한 에피소드는 저절로 유머가 되고, 전람회의 노래 '기억의 습작'으로 그 시절의 향수를 불러 일으키는 자연스러움이 이 영화의 힘이다.
그렇기에 별다른 과장이나 자극이 없어도 이야기에 빠져들어 주인공들의 현실적이고 애잔한 정서에 공감하게 만드는 좋은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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