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영화

변호인

울프팩 2013. 12. 21. 18:32
대통령 노무현.
언론과 그다지 관계가 좋았던 대통령은 아니었다.

취임하자마자 각 부처별 기자실을 없애버렸고, 구독하던 신문들도 부수를 줄여버렸다.
기자실에 모인 일부 기자들이 작당을 해서 여론을 왜곡한다고 봤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언론은 출발부터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았고, 집권 기간 내내 불편한 동거가 이어졌다.
정치적으로도 잘한 일도 많았지만 못한 일도 많았다.

2009년 5월29일.
한창 공사중인 광화문 광장이 내려다보이는 커다란 창 앞에 섰다.
(http://wolfpack.tistory.com/entry/노무현의-마지막-모습들)

잠시 후, 네 귀를 펼쳐 든 태극기를 앞세운 채 노무현 전 대통령의 영정과 운구가 천천히 앞을 지나갔다.
여러가지 복잡한 심경에 나도 모르게 뜨거운 눈물이 흘러 내렸다.

정치적 평가를 떠나 인간 노무현에 대한 애정 때문이었다.
비록 언론과 불편한 대통령이었고, 재임기간 온갖 잡음이 일었지만 그런 모든 일의 배경에는 잘못된 세상을 바로잡고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만들어보기 위해 정치에 뛰어든 그의 초심이 있었다.

다만 방법이 서툴고 서두르다보니 매끄럽지 못했을 뿐이다.
양우석 감독의 데뷔작 '변호인'(2013년)에는 그런 노무현의 초심이 들어 있다.

영화는 이 작품이 실화라는 말도, 특히 노무현의 이야기라고 밝히지 않는다.
하지만 우리는 안다.

부산상고, 대전지법 판사, 세무전문 변호사에서 인권변호사로 변신, 요트 그리고 1981년 부림사건.
파편적인 사실만으로도 송강호가 연기한 송우석 변호사가 누구라는 것을 짐작하기 어렵지 않다.

영화는 철저하게 부림사건에만 초점을 맞췄다.
돈 버는 일에만 몰두했던 변호사가 억울하게 끌려간 대학생의 시국사건을 맡으면서 인권 변호사로 변모하는 과정을 다뤘다.

그렇게 송우석이 사회와 현실에 눈을 뜨고 양심의 소리에 귀 기울이는 과정이 가슴을 뜨겁게 만든다.
그야말로 법률적 지식에 해박한 기술자인 변호'사'가 진정 사람냄새 나는 변호'인'으로 변하는 과정을 설득력있게 그렸다.

그런 점에서 양 감독은 영리한 선택을 했다.
노무현의 인생 전체가 아닌 가장 드라마틱한 순간을 잡아 임팩트있게 다뤘다.

그만큼 응집력이 높았다.
다만 송강호가 시청하는 TV 화면에 잠깐 비춘 작고한 코미디언 배삼룡처럼 그 시대를 추억할 만한 음악이나 영화 등 문화적 코드들이 좀 더 많이 나왔더라면 영화가 더 윤택했을 것이란 아쉬움이 든다.

더불어 송강호와 곽도원의 연기는 명불허전, 훌륭했다.
송강호는 굳이 노무현 흉내를 내려들지 않고 그만의 스타일로 노무현을 제대로 살렸다.

열변을 토하는 그의 연기만으로 스크린이 가득찬다.
그리고 곽도원은 권력을 제대로 휘두를 줄 아는 악당 역할을 제대로 해냈다.

'범죄와의 전쟁 : 나쁜놈들 전성시대'에서 검사에 이어 이번 고문 경찰 역도 제대로 해냈다.
그가 아니었다면 고장난명(孤掌難鳴), 영화의 울림이 크지 않았을 것이다.

인간 노무현의 진심과 그의 이름을 가명으로 가려야 하는 현실이 함께 보이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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