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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별들의 고향(블루레이)

울프팩 2016. 5. 8. 10:07

영화 감독 이장호와 소설가 최인호에게 항상 따라붙는 작품이 있다.
바로 '별들의 고향'(1974년)이다.

호스티스 생활을 하던 경아라는 여인을 통해 1970년대 도시인의 부조리하고 공허한 삶을 다룬 이 작품은 우리 대중문화의 획을 그은 작품으로 꼽힌다.
이 소설을 1972년 조선일보에 연재하며 주목을 받은 최인호는 이후 대표적 대중소설가로 부상했고, 이를 영화로 만들어 감독 데뷔한 이장호는 70년대 우리 대중영화의 붐을 일으킨 장본인이 됐다.

하지만 이 작품은 그런 점에서 원죄를 갖고 있다.
70년대 초반 우리 영화는 외화 쿼터를 확보하기 위해 땜빵으로 대충 만들던 관행이 강했으나, 이 작품이 흥행하며 제대로 만들면 성공할 수 있다는 인식을 심어줬다.

1974년 개봉한 이 작품의 흥행 성적은 46만6,000여명으로 국내 최고 관객동원 기록이었다.
그 바람에 '영자의 전성시대' '나는 77번 아가씨' '벌레먹은 장미' 등 호스티스물이 줄을 이으며 한국영화 중흥의 기틀을 다졌으나, 그 바람에 한국영화가 호스티스, 창녀 등 퇴폐적인 내용에만 집착하며 퇴보했다는 원성도 함께 들었다.

그만큼 이 작품이 대중들에게 미친 영향은 컸다.
특히 "내 입술은 작은 술잔이에요" "오랜만에 함께 누워보는군"  "행복해요" 등 영화 속 대사들이 오래도록 두고 두고 유행이 됐다.

뿐만 아니라 당시 동아방송의 인기DJ였던 이장희가 맡은 음악은 팔리는 우리 영화 OST의 시초가 됐다.
OST에 삽입된 곡 중에 이장희가 부른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 '휘파람을 부세요' '한 잔의 추억', 윤시내가 부른 '나는 열아홉살이에요' 등은 나중에 일부 금지곡이 되긴 했지만 줄줄이 히트했다.

지금도 다시 보면 영상과 음악이 절묘하게 어우러지는 앙상블과 문학적 메타포를 함유하고 있는 대사, 배우들의 연기 등이 유난히 감성을 자극하는 수작이다.
1080p 풀HD의 2.35 대 1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플리커링이 있지만 괜찮은 화질이다.

 

과거 DVD 타이틀이 4 대 3 풀스크린으로 좌우가 잘리고 화질이 아주 좋지 않았던 데 비해 블루레이 타이틀은 온전한 영상을 모두 볼 수 있으며 디지털리마스터링을 거쳐 깨끗하게 손질됐다.

음향은 DTS-HD 모노를 지원한다.

 

부록이 없던 DVD 타이틀과 달리 이장호 감독과 김홍준 교수의 음성해설, 디지털 복원전후 비교 영상, 이미지 갤러리 등이 부록으로 들어 있다.

특히 음성해설에 한글자막까지 지원해줘 아주 편리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포착한 장면들> 

이 작품은 1974년에 국도극장에서 개봉해 석 달 동안 상영하며 46만5,000명의 관객을 동원해 당시까지 한국영화 최고 흥행 기록을 깼다. 당시 한국영화 관람객수는 편당 2,000~3,000명 수준이었다. 멀티플렉스도 없던 시절 단관 개봉해서 46만명을 동원한 것은 대단한 기록이다. 

초반과 후반이 같은 장면으로 이어지는 수미쌍관식으로 구성된 이 영화의 초반 나루터 장면은 광나루에서 촬영. 

당대 최고 배우였던 신성일이 화가 문호 역을 맡았다. 그의 본명은 강신영. 1937년생으로 올해 76세다. 후시 녹음 당시 신성일 목소리는 성우 이강식이 맡았고 안인숙 목소리는 성우 고은정이 담당했다. 

영화 초반 원작자인 소설가 최인호가 놀이터에서 딸을 안은 채 깜짝 출연한다. 그는 '별들의 고향' '겨울여자' '깊고 푸른 밤' '바보들의 행진' 등 일련의 대중소설 때문에 통속작가로 폄하되지만 서울고 3년생이던 1963년 한국일보 신춘문예에 응모한 소설이 가작 입선하며 등단한 재원이다. 

최인호는 1972~73년 조선일보에 이 작품을 연재해 화제가 됐다. 원로 작가들이 주로 맡던 신문연재소설을 20대 작가가 맡은 것은 파격이었다. 그 바람에 그는 출판사 예문관과 계약금 50만원을 받고 이 책을 내게 된다. 당시 50만원은 월급쟁이 20개월치 월급에 해당하는 거금이었다. 이후 예문관은 최인호의 책 40여종을 출간하며 최인호 작품 전문으로 이름을 알렸다. 

이장호 감독의 연출은 독특했다. '나 그대에게 모두 드리리'라는 노래를 듣는 관객들의 모습을 훑는 장면에서 배우들이 카메라를 정면으로 쳐다보는 금기시된 연출을 시도했다. '독도는 우리땅'을 부른 개그맨 정광태도 깜짝 출연. 

담배를 물고 있는 청년은 개그맨 전유성이다. 이 감독은 최인호와 초등학교부터 중학교, 서울고까지 같이 다녔다. 이 감독은 홍익대 조소과를 다니던 동생인 이영호의 등록금을 친구인 최인호에게 저작권료로 갖다 주고 판권을 확보했다. 결국 이영호는 휴학을 하게 됐고, 이 감독은 동생을 책임지기 위해 배우로 데뷔시켰다. 

경아의 못된 첫 번째 남자로 나온 배우는 디자이너 하용수다. 지금은 패션 디자이너로 알려졌지만 한양대 연극영화과 출신인 그는 TBC 공채 탤런트이기도 하다. 

당시 이 작품은 안인숙이 신성일과 촬영 중 진짜 키스를 했다고 기사가 실려 화제가 됐다. 지금은 어이없는 얘기이지만 입술만 살짝 댔다가 떼던 당시로서는 파격이었다. 신성일 회고에 따르면 이 감독이 신성일에게 여배우를 설득해 대담한 키스를 해달라고 부탁했단다. 

신성일의 아파트로 나온 곳은 반포 주공아파트. 음악을 맡은 이장희는 이 감독의 서울고 2년 후배로 최인호의 소설만 읽고 무조건 음악을 만들었다. 우리 영화 사상 최초로 대사가 수록된 OST는 개봉 전에 먼저 발매됐는데 "오랫만에 누워 보는 군"으로 시작되는 대사가 수록됐다. 안인숙의 목소리를 연기한 성우 고은정의 대사도 녹음됐는데 고은정이 허락받지 않고 수록했다고 음반사에 항의해 음반사에서 소정의 사례를 했다는 후문이다. 

8년간 신상옥 감독 밑에서 조감독을 한 이장호 감독은 부친이 대한민국 건국 후 초대 영화검열관을 지내 어려서부터 영화를 아주 많이 봤다. 그는 홍익대에서 건축미술을 전공했으나 공부를 하지 않자 부친의 권유로 신 감독이 운영하는 신필름에 들어갔다. 당시 전속배우들과 전속감독들까지 거느린 신필름은 할리우드의 거대 메이저 스튜디오 같은 대기업이었다. 

이 감독은 참신한 얼굴을 원해 여주인공을 신인공모했으나 마땅한 사람을 뽑지 못했다. 이 감독은 신인 탤런트 김영애를 섭외했으나 영화제작자가 거부하고 대신 KBS어린이합창단 출신의 아역배우 안인숙을 제안했다. 당시 아역배우 이미지를 벗고 싶었던 안인숙은 이 역을 따내기 위해 무료 출연했다. 

1953년생인 안인숙은 '얄개전' '어제 내린 비' 등에도 출연했으며 이 작품 히트 후 1975년 당시 미도파백화점 사장이었던 대농그룹 박영일 전 회장과 결혼했고 직후 바로 은퇴했다. 박 회장은 1998년 미도파가 법정관리에 들어간 뒤 경영에서 손을 뗐다. 

이희우가 각색한 원래 시나리오는 원작과 많이 다른 신파조였다. 여기에 불만을 품은 최인호가 원작을 요약한 시나리오를 이 감독에게 다시 줬고 이 감독은 두 개의 시나리오를 놓고 고민하다가 아예 소설책을 촬영장에 갖고 나와 책을 펴놓고 촬영을 했다. 

부호의 집으로 나온 곳은 세검정에 있던 집으로, 당시 영화에 자주 등장했다. 당시에도 가정부로 나온 전원주. 이 감독이 연기를 좋아한 백일섭은 경아를 호스티스로 만든 나쁜 남자를 맡았다. 

여러개의 거울이 달린 침실은 극 중 유일하게 사용된 세트다. 

맨 왼쪽이 카메오 출연한 이장호 감독. 당시 정소영, 홍파, 하길종 감독 등이 이 작품의 연출을 욕심냈다. 특히 최인호 조차도 신인인 이 감독에게 연출을 맡기는 것을 불안하게 생각했다. 

대포집에서 경아를 유혹하는 사내는 송영수 조감독이 맡았다.

1978년 제작된 속편은 최인호가 직접 시니라오를 쓰고 요절한 하길종 감독이 연출했다. 주연으로 정윤희 혜은이 등이 물망에 올랐으나 장미희가 낙점됐다. 

많은 사람들의 가슴을 울린 설원의 엔딩. 펑펑 눈이 쏟아진 이 허허벌판은 이 감독이 처가가 있던 천호동을 자주 왔다갔다하면서 눈여겨 본 광나루 백사장이다.

별들의 고향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별들의 고향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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