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른하고 후덥지근한 여름, 턴테이블에서 맘보 음악이 바람 불 듯 흘러나오고, 여기 맞춰 청년이 흐느적거리듯 춤을 춘다.
잊을 수 없는 이 장면 하나만으로도 왕가위 감독의 '아비정전'(Days of Being Wild, 1990년)은 충분히 볼 가치가 있는 작품이다.
1960년대 홍콩을 배경으로 젊은이들의 엇갈린 사랑을 다룬 이 작품은 세기말 홍콩 반환을 앞두고 불안했던 홍콩 사람들의 심리를 투영한 작품이다.
영상이나 구성이 꽤나 공들여 잘 만든 작품인데도 흥행에는 실패했다.
이유는 왕가위의 데뷔작이었던 '열혈남아'에 매료된 사람들이 또다시 툭툭 끊어지는 듯한 빠른 몽타주 기법의 액션과 열정적인 이야기를 기대하고 봤다가 너무나 긴 호흡의 서정적인 이야기를 견디지 못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작품은 '열혈남아'와 너무 다른 작품이다.
마치 오래전 60년대 영화를 보는 듯 단색조의 영상과 롱 테이크, 정지화면처럼 대사가 거의 없이 집요하게 인물의 표정을 클로즈업으로 잡아내는 화면은 느와르로 대표되는 홍콩 영화라기 보다는 프랑스 예술영화를 보는 듯 하다.
아닌게 아니라, 왕가위가 본격 예술 영화를 지향하고 만든 작품이기도 하다.
결국 흥행 실패로 왕가위는 아비정전의 후속작을 접어야 했다.
그래서 작품 말미에 양조위가 반짝 등장하는 엔딩은 무려 10년이 지난 2000년에 '화양연화'라는 걸작으로 꽃 핀다.
이 작품에서 하고자 했던 이야기, 각종 실험들을 왕가위는 '화양연화'로 끝을 맺는다.
약간은 치기 어린 어설픈 부분도 보이지만 이 작품은 왕가위의 예술적 감각을 보여주는 대표적 작품으로 꼽을 만 하다.
1080p 풀HD 영상의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 스크린을 지원하는 블루레이는 국내에 출시되지 않았다.
하지만 홍콩판을 구입하면 한글 자막이 들어 있다.
깨끗한 영상을 기대하고 블루레이를 구입했다면 초반 화질에 실망할 수 있다.
샤프니스만 또렷할 뿐 뿌옇고 배경이 지글거려 블루레이로서는 한참 떨어진다.
그러나 후반부로 갈 수록 안정되는 등 화질 편차가 심한 편이다.
음향은 DTS HD 7.1 채널을 지원한다.
리어 활용도가 높고 현의 울림이 좋아서 음향은 DVD보다 확실히 들을 만 하다.
부록은 전무하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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