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어두워질 때까지

울프팩 2012. 11. 13. 18:00

007 시리즈로 유명한 테렌스 영 감독은 특이한 이력을 갖고 있다.
1915년 중국 상하이에서 태어난 그는 영국 케임브리지대학에서 동양사학을 전공한 뒤 20대인 제 2 차 세계대전때 전차부대 전차장으로 참전했다.

당시 그는 영화 '머나먼 다리'로 유명한 마켓가든 작전에 참가해 네델란드 아른헴에서 싸웠다.
종전 후 1945년 영화감독을 준비하던 그는 은퇴한 영국군 장교와 부상병들을 위한 자선단체에서 우연히 16세 소녀를 소개 받았다.

전쟁이 끝나 아른헴의 집에 돌아와 어머니를 따라 자선단체에 들렸던 소녀는 바로 오드리 헵번이었다.
헵번의 어머니는 테렌스 영이 아른헴 관련 다큐멘터리를 준비 중이라는 소식을 듣고 제작자에게 딸의 출연을 부탁했으나, 제작자는 발레를 배우는 어린 소녀를 출연시킬 수 없다며 거절했다.

그때 처음 만난 테렌스 영과 헵번의 인연은 약 20년 뒤 영화 '어두워 질 때까지'(Wait Until Dark, 1967년)로 다시 이어졌다.
프레드릭 노트의 연극 대본을 원작으로 한 이 작품은 마약 범죄단의 음모에 휘말린 맹인 여성이 이들을 물리치는 스릴러다.

이 작품에서 주인공을 맡은 오드리 헵번은 히치콕 감독을 연출자로 선정하려던 제작진에게 테렌스 영 감독을 추천했다.
이 작품에 앞서 최초의 007 영화인 '살인번호', 두 번째 작품 '위기일발', 네 번째 작품 '썬더볼 작전' 등 3편의 007 영화로 액션물을 훌륭하게 소화한 테렌스 영 감독은 이 작품에서도 긴장감있는 연출을 선보였다.

뿐만 아니라 고운 여성만 연기했던 오드리 헵번이 두 눈 멀쩡하게 뜨고 맹인 연기를 실감나게 해 아카데미 여우주연상 후보에 올랐다.
이 작품의 묘미는 밀실 추리 소설의 기법에 있다.

맹인 여성의 반지하 집이라는 제한된 공간에서 악당들과 벌이는 사투는 밀실 스릴러 특유의 공포와 긴장감을 준다.
특히 막판 잔인한 악당과 여성이 벌이는 사투는 머리카락이 올올이 곤두설 만큼 긴장감 넘친다.

희곡 특유의 제한된 공간과 제한된 인물이 등장하지만 히치콕 스릴러 못지 않은 아슬아슬한 재미를 선사하는 정통 스릴러이다.

1.85 대 1 애너모픽 와이드스크린을 지원하는 DVD 타이틀은 DVD 수준에서 평범한 화질이다.
음향은 돌비디지털 모노를 지원하며 부록으로 한글 자막이 들어 있는 제작과정이 수록됐다.

<DVD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맹인 연기를 선보여 호평을 받은 오드리 헵번. '마이 페어 레이디' 이후 이렇다할 성공작이 없던 그에게 이 작품은 단비같은 작품이 됐다. 오드리는 이 작품 매출의 10%인 75만 달러를 받기로 하고 출연했다. 그러나 영화 흥행으로 오드리가 거둔 수입은 100만 달러가 넘는다.
리차드 크레나, 잭 웨스턴, 알란 아킨 등 조연들도 헵번 못지 않게 악당 연기를 맛깔나게 살렸다. 특히 알란 아킨은 1인 3역의 가장 못된 악당 연기를 훌륭하게 소화했다. 촬영은 캐나다 토론토에서 했는데 오드리의 세금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오드리 헵번은 부모가 한때 파시즘 신봉자라는 뼈아픈 핸디캡을 갖고 있다. 어머니는 금방 전향했으나 아버지는 열렬한 나치 추종자여서 헵번과 거리를 두고 살았다. 헵번은 맹인 연기를 위해 맹인 여대생과 함께 며칠을 지냈고 안대를 착용한 채 지팡이를 짚고 맹인처럼 생활했다.
이 영화는 당시 오드리 헵번의 남편이었던 멜 페러가 제작했다. 하지만 당시 두 사람의 부부관계는 멜 페러의 외도로 이혼을 얘기하던 최악의 상황이었다. 결국 영화 개봉 후 두 사람은 헤어졌다. 헵번은 이 영화를 찍으면서 너무 힘들어 몸무게가 7kg이나 줄었다.
테렌스 영 감독은 세 편의 007 영화를 만들며 제임스 본드의 스타일을 확립한 감독으로 유명하다. 하지만 1981년에 만든 인천상륙작전을 다룬 '오 인천'은 형편없는 연출로 욕을 먹었다. 촬영 당시 엑스트라로 동원된 한국인 쌍둥이 형제 2명이 탱크에 깔려죽는 사고까지 발생했으나 그냥 넘어갔다. 당시 아이들의 부모가 통일교여서 크게 비화되지 않고 조용히 넘어갔다고 한다.
맹인에게 밝음은 오히려 공포다. 눈 밝은 사람들이 어둠을 무서워하듯 그들에겐 밝음이 공포요 어둠이고, 어둠은 오히려 모든 것을 파악할 수 있는 밝음이다.
희미한 냉장고 불빛과 벽에 비친 커다란 그림자를 이용해 공포스런 순간을 극대화 시킨 연출. 헵번은 촬영 중이던 1967년 7월 아이를 유산했고 개봉 직전인 9월부터 멜 페러와 이혼 소송에 들어가 개봉 후인 1968년 이혼했다. 멜 페러는 2008년 90세 나이에 심장마비로 사망했다.
막판 범인과의 혈투가 아주 공포스럽다. 헵번은 물론이고 알란 아킨의 연기가 좋았다. 그러고보니 감독과 주연, 제작자가 모두 고인이 됐다. 테렌스 영 감독은 1994년 프랑스 칸에서 79세에 심장마비로 사망했고 오드리 헵번은 1993년 세상을 떴다.
어두워질때까지
오드리 햅번 출연
꽃이 있는 식탁
고은경 저
예스24 | 애드온2

'볼 만한 DVD / 블루레이' 카테고리의 다른 글

시카고 (블루레이)  (4) 2012.11.17
레지던트 이블 댐네이션 (블루레이)  (2) 2012.11.14
이퀼리브리엄 (블루레이)  (8) 2012.11.12
달과 꼭지  (5) 2012.11.11
포카혼타스 (블루레이)  (4) 2012.11.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