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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묵배미의 사랑(블루레이)

울프팩 2019. 1. 27. 11:15

장선우 감독은 '나쁜 영화' '거짓말' '너에게 나를 보낸다' 등 논란이 됐던 영화 때문에 선정적인 영화를 만든 감독으로 오해받기 쉬운데 사실 그는 사회성 짙은 사실주의 영화를 잘 만들었다.

대표적인 영화가 바로 '우묵배미의 사랑'(1990년)이다.


박영한의 연작 소설을 영화로 만든 이 작품은 서울 변두리에서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다뤘다.

봉제기술이 전부인 일도(박중훈)는 봉제공장에서 만난 유부녀 공례(최명길)와 사랑에 빠진다.


일도는 자식까지 낳은 사실혼 관계인 아내(유혜리)가 성정이 거칠어 나긋나긋한 공례에게 정을 붙였고, 공례 역시 폭력적인 남편(이대근)에게 맞고 살아 그렇지 않은 일도에게 의지한다.

그렇기에 두 사람은 각각 아내와 남편에게 두드려 맞으면서도 밀회를 이어간다.


영화가 놀라운 것은 1989~1990년 서민들의 삶을 거울로 비추듯 사실적으로 묘사한 점이다.

옛날 영화들이 많이들 그렇지만 이 영화는 유독 힘든 살림살이와 당시 유흥가 풍경 등이 영상과 시대상을 반영한 대사 속에 제대로 녹아 있다.


마치 세태를 묘사한 신문기사를 읽는 듯하다.

여기에 유혜리, 최주봉의 입말이 잘 살아 있는 찰진 대사가 아주 맛깔스럽다.


때로는 거칠고 자조적이며 농이 섞인 이들의 대사는 당시 고달픈 삶의 단면들이 고스란히 배어 나온다.

물론 박영한의 원작이 훌륭한 덕분이기도 하지만 이를 짜임새 있게 연출한 장 감독의 연출력을 높이 평가하지 않을 수 없다.


특히 봉제공장에서 주고받는 농들을 들어보면 당시 사람들의 성 감수성을 알 수 있다.

사장과 여인들, 일도의 성적 농담은 지금처럼 성 감수성이 민감한 시대에 여지없이 성폭력으로 고소당할 만한 얘기들이다.


이에 대해 어느 여인 하나 부끄러워하지 않고 같이 즐거워하며 맞장구치는 모습을 보면 당시 성 감수성의 한계가 드러난다.

어쩌면 그때의 사고방식이 지금보다 유연했던 것일 수도 있지만 그만큼 성 감수성도 시대를 따라 변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심지어 정사 장면마저도 삶의 애환을 반영하는 듯하다.

온 방안을 헤집고 다니는 정사씬은 고달픈 만남 만큼이나 처절하고 애잔하다.


더불어 풋풋했던 박중훈의 젊은 시절 모습을 볼 수 있어 좋았고 유혜리의 그악스러운 연기가 인상 깊었다.

한국적 리얼리즘의 정수를 보여준 감독의 연출과 지금은 고인이 된 유영길 촬영감독의 훌륭한 촬영, 배우들의 혼신을 다한 연기가 빛을 발한 명작이다.


1080p 풀 HD의 1.8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영상 복원이 아주 잘됐다.

영상은 잡티 하나 없이 깨끗하다.


하지만 오래된 작품인 만큼 필름 특유의 지글거림과 약간 바랜듯한 색감은 어쩔 수 없다.

디테일도 요즘 영화와 비교하면 떨어진다.


그만큼 제작연도를 감안하고 봐야 한다.

음향은 DTS HD MA 2.0 채널을 지원한다.


부록으로 2개의 음성해설과 장선우 감독 관련 2편의 다큐멘터리가 들어 있다.

첫 번째 음성해설에 김태용 장선우 감독, 배우 박중훈이 참여했고 두 번째 음성해설에 평론가 달시 파켓, 광운대 교수인 마크 레이몬드가 함께 했다.


함께 수록된 장 감독 관련 다큐는 토니 레인즈가 만든 '장선우의 11월'과 '장선우 변주곡'이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최명길이 여주인공 공례를 연기. 극 중 나오는 우묵배미는 가상의 동네다. 장선우는 이 영화로 백상예술대상 작품상과 신인 감독상을 받았다.

폭력 남편을 연기한 이대근. 아내에 대한 무지막지한 폭력이 등장.

풋풋했던 박중훈의 젊은 날을 볼 수 있다. 박중훈은 남성 시점의 내레이션도 함께 맡았는데 약간 책을 읽는 듯한 특유의 어색한 대사가 두드러진다. 특히 '~이었지'라고 말하는 부분에서 띄어 읽기가 부자연스럽다.

그때도 화물칸 탑승을 단속했지만 많은 사람들이 이사 갈 때 화물칸에 타고 갔다. 장 감독은 각본 작업에도 참여했다.

봉제 공장 풍경. 2017년 고인이 된 김지영도 보인다. 박중훈 최명길은 촬영을 위해 청계천 피복공장에서 재봉틀 다루는 법을 배웠다.

당시 흔했던 포니 택시. 1989년 말에서 1990년 초까지 촬영. 양평 가평 청평 등지에서 주로 찍었다.

여관방에서 곧잘 틀어주던 에로물들. 1989년에 발표한 원작을 쓴 박영한은 2006년 56세 나이에 위암으로 사망했다.

청계천 아세아극장 앞에서 찍은 장면. 멀리 주윤발 유덕화가 주연했던 홍콩 영화 '정전자'의 극장 간판이 보인다.

당시 나이트클럽 모습. 극 중 주현미의 노래와 최진희의 '사랑의 미로' 등이 흘러나온다.

장 감독은 임철우의 소설 '붉은 방'을 영화로 만들려고 했으나 서슬 퍼런 군사정권 아래서 제작의 여의치 않자 이 작품을 만들었다.

유혜리의 앙칼진 연기가 돋보였다. 당시 유혜리는 서구적 용모와 몸매 때문에 '파리 애마' 등 에로 영화에 많이 나왔다.

장선우는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재학 당시 탈춤반 한두레에서 마당극을 하며 학생 운동을 했다. 이때 잡혀가 취조를 받으면서 영화를 하겠다고 결심했다.

쥐약은 오래전부터 자살을 결심한 사람들이 흔히 구할 수 있는 독극물이었다. 특유의 비음 섞인 대사가 인상적인 최주봉이 박중훈 친구로 등장.

장선우는 본명이 장만철이었으나 시위 전력 때문에 본명으로 영화 작업을 할 수 없어 월간지에 영화평론을 하며 사용한 필명 장선우로 개명했다.

시인 김지하가 장 감독을 격려하고 영화 작업을 하도록 용기를 줬다.

낯익은 573번 신장운수 버스가 보여 반갑다. 당시 이 버스는 지금의 하남인 신장에 종점을 두고 길동 천호동 어린이대공원을 거쳐 마장동과 종로 5가까지 운행했다.

장선우는 '성냥팔이 소녀의 재림' 실패 이후 몽고에서 영화 작업을 진행하다가 중단되자 제주로 이주해 영화에서 손을 뗐다. 그는 1980년대 군사정권에서 영화 작업에 참여시키지 말라고 제시한 블랙리스트에 이름이 올라서 사실적인 영화를 하되 정치적인 영화를 할 수 없었다.

우묵배미의 사랑/어두운 기억의 저편/우리들의 조부님/포구의 황혼/노래에 관하여 외
이균영,박영한,현길언,이원규,최인석 등저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우묵배미의 사랑 (1Disc) : 블루레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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