달콤한 인생 - 최연진기자의 영화, 음악, 여행이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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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아 엑스(블루레이)

울프팩 2017. 10. 1. 11:59

헤비메탈의 시대는 갔다.

더 이상 라디오에서는 헤비메탈을 틀지 않고 음반점에서도 메탈 음반을 찾기 힘들다.


1980년대는 FM 라디오에서도 메탈 발라드를 심심찮게 틀어줄 만큼 헤비메탈이 인기였다.

메탈 곡들이 빌보드 차트 상위를 심심찮게 점령했고 수시로 메탈 음반이 쏟아져 나올 만큼 메탈의 전성기였다.


그때 등장한 엑스재팬(X-japan, 엑스저팬)은 1990년대까지 일본과 한국에서 엄청난 인기를 누렸다.

그들은 외모를 이상하게 꾸민 비주얼 록을 지향했지만 음악성의 뿌리는 록, 특히 공격적이며 차가운 분노를 담은 헤비메탈에 가까웠다.


더블베이스를 앞세운 박력 넘치는 파워 드럼, 속사포 같은 기타에 유려한 피아노 선율이 더해져 그들만의 독특한 음악세계를 만들었다.

보컬이 약하다는 소리를 듣기도 했지만 좋게 보면 그것 또한 그들의 개성이었다.


당시 국내에서도 록음악 꽤나 듣는다는 축들은 이태원에서 불법 복사한 이들의 카세트테이프를 사서 테이프가 늘어지도록 들었다.

이들이 일본과 한국에서 인기를 끌었던 이유는 멜로디가 동양적 정서와 잘 어울렸기 때문이다.


트로트나 엔카처럼 한의 정서, 비극적 서정미를 담은 멜로디는 록 발라드를 좋아하는 동양 사람들의 정서와 잘 맞았다.

양국에서 높은 인기를 끈 'endless rain' 'crucify my love' 'say anything' 'without you' 등이 대표적이다.


그런 만큼 그들의 인기가 오래갈 줄 알았는데 1997년 뜻밖에 해산을 해서 놀랐다.

일본 문화개방이 이루어지기 전 일본 출장을 갈 때마다 사모았던 이들의 음반과 비디오테이프, DVD들이 덩달아 소중해졌다.


그렇게 아쉬움 속에 사라졌던 엑스재팬이 해산 10년 만인 2007년에 재결성을 발표해 다시 한번 놀라게 만들었다.

물론 그 사이 엑스재팬의 소식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다.


밴드의 간판 기타리스트였던 히데는 해산한 지 불과 몇 달 만에 목을 매 충격을 줬다.

밴드 리더인 요시키는 건강이 좋지 않아 더 이상 피아노와 드럼을 칠 수 없다는 소문도 들렸다.


그렇게 안타까운 소식만 들려줬기에 재결성 소식 또한 반가움보다 걱정이 앞섰다.

과연 전성기 때만큼 힘 있는 연주나 유려한 소리를 뽑아낼 수 있을까, 그때처럼 제대로 된 화학적 결합을 보여줄 수 있을까.


더불어 궁금증도 컸다.

그 사이 이들에게는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을까.


스테판 키작 감독이 만든 다큐멘터리 '위 아 엑스'(We Are X, 2016년)는 이에 대한 대답 같은 영화다.

뉴욕 매디슨 스퀘어 가든에서 가졌던 재결합 공연과 이를 준비하는 과정을 통해 밴드의 역사와 해산 이후 재결성까지 공백기에 일어났던 일들을 추적했다.


마치 '서칭 포 슈가맨'처럼 멤버 개개인의 인터뷰를 통해 그들이 숨겨 놓았던 이야기를 끄집어냈다.

그래서 엑스재팬을 좋아하는 사람들에게는 상당히 흥미로운 작품이다.


요시키의 입을 통해 직접 듣는 아픈 과거와 지금까지도 그를 짓누르는 상처, 멤버들 사이에 벌어졌던 일들은 충격적이다.

특히 보컬인 토시가 사이비 종교 단체에 쇄뇌돼 끌려가서 전재산을 날리고 두드려 맞기까지 했다는 이야기는 처음 듣는 일들이어서 깜짝 놀랐다.


결국 미망에 사로잡힌 토시의 일탈이 멤버 모두가 반대했던 밴드 해산의 원인이었다.

그만큼 토시와 함께 밴드를 만들었던 요시키는 원망과 분노가 컸을 텐데, 의외로 담담하게 토시를 다시 받아들였다.


아니, 오히려 적극적으로 토시에게 재결합을 제의했다.

이면에는 무려 네 살 때부터 이어진 질긴 우정이 있었다.


요시키도 토시가 사이비 종교단체에서 얼마나 속박된 삶을 살았는지 자세히 알지는 못했지만 거기서 친구를 빼내야 한다는 생각과 엑스재팬을 다시 살려야 한다는 생각을 강하게 했다.

그래서 요시키는 재결성의 소감을 묻는 질문에 "친구를 되찾아 기쁘다"라고 답했다.


그것은 엑스재팬에게 그들의 소리를 다시 들을 수 있게 됐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만큼 반가운 소리다.


키작 감독은 이 같은 이야기를 적절한 자료 화면을 섞어 흥미롭게 구성했다.

보다 보면 엑스재팬의 팬이 아니어도 이야기게 빠져들게 만들 만큼 구성을 잘했다.


더불어 사이사이 흘러나오는 이들의 예전 히트곡을 들을 수 있어 좋았다.

뿐만 아니라 'born to be free'처럼 재결성 이후에 내놓은 흥겨운 노래와 이번 다큐멘터리를 위해 새로 만든 'la venus' 같은 곡들도 들을 수 있다.


엑스재팬의 팬이라면 옛 추억과 향수를 자극하기에 두 말할 나위 없을 만큼 반가운 작품이다.

재결성한 엑스재팬은 더 이상 1980년대처럼 삐죽삐죽 솟은 머리와 요란한 화장을 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그들의 노래를 들으면 1980, 90년대 가슴을 울렸던 묘한 슬픔과 분노, 잠시나마 일탈을 꿈꿨던 해방감을 여전히 느낄 수 있다.

이는 곧 세월과 함께 사라진 청춘에 대한 향수이기도 하지만 그때 도전했던 꿈들에 대한 소환이기도 하다.


그래서 이 작품이 더할 수 없이 반갑고 소중하다.

이를 느낄 수 있을 만큼 영화적 완성도도 높은 작품이다.


무엇보다 이들의 공연 모습을 칼끝처럼 깨끗하고 선명한 HD 영상으로 볼 수 있다는 점이 가장 반갑다.

이번에 국내 출시된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 HD의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한다.


깔끔한 윤곽선과 눈이 부실만큼 쨍한 색감의 화질은 블루레이 보는 맛을 느끼게 해준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 또한 사방을 휘감는 뛰어난 서라운드 효과를 들려준다.


리어를 비롯해 각 채널에서 쏟아지는 소리들은 청취 공간을 순식간에 뜨거운 열기의 공연장으로 바꿔 놓는다.

부록으로 삭제 장면, 인터뷰, 요시키의 소감, 라스트 라이브 영상 일부와 born to be free 음악을 배경으로 한 팬 영상 등이 한글자막과 함께 수록됐다.


라스트 라이브 영상을 제외하고 모두 HD 영상이다.

더불어 이번 블루레이 타이틀에는 OST 음반도 따로 들어 있어 그만큼 가격 대비 만족도가 높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엑스재팬의 리더 요시키는 어려서부터 몸이 약해 병을 달고 살았다. 그의 어머니는 아들이 어른이 될 때까지 살지 못할 것으로 생각해 "지금까지 살아 있는게 기쁘다"고 말할 정도. 요시키는 지금도 천식을 앓고 있으며 어깨 인대가 찢어졌고 건염과 손목터널증후군으로 주사를 맞으며 피아노와 드럼을 친다.

요시키는 어려서 클래식을 좋아했다. 피아노로 클래식만 연주했고 절대음감이 있어 남보다 악기연주에 탁월한 재능을 보였다. 작곡도 10세때부터 했다.

요시키 인생의 커다란 그늘은 그의 아버지다. 집안 대대로 기모노 가게를 운영해 꽤 잘살았던 그의 아버지는 요시키가 10세때 자살했다. 그때부터 요시키는 편안하게 죽는 법에 대해 책을 사서 읽고 여러 번 죽을 생각을 했다.

재즈피아노를 연주하고 탭댄스도 잘췄던 요시키의 아버지는 드러머가 되는 것이 꿈이었다. 그래서 생일 때마다 요시키에게 악기를 사줬다. 그랬던 아버지가 자살하자 요시키는 "아버지는 왜 죽었을까, 나는 나쁜 아들이었을까"라는 질문을 끊임없이 던졌다.

요시키는 헤드뱅잉을 하도 많이 해서 목뼈가 변형돼 목 수술을 했다. 그 뒤로 목 보호대를 한 채 드럼연주를 한다.

요시키는 아버지의 자살 이후 모든 것이 변했다. 그때 어머니가 드럼을 사줘 물건을 때려부수는 대신 드럼을 쳤다. 요시키는 "가족 중 누군가 자살하면 남은 사람들의 삶이 너무 힘들어진다"며 자살에 반대한다.

밴드의 보컬인 토시는 4세때 요시키와 같은 유치원을 다니며 서로 알게 됐다. 이후 초중고교를 같이 다니며 친해졌고 고2때이던 1982년에 요시키와 함께 밴드 엑스를 결성했다.

요시키와 토시외에 고교 친구이던 유지, 이즈미사도 초창기 엑스 결성멤버였다. 나중에 유지는 자기 밴드를 하고 싶어 나갔고 교통사고로 죽었다.

비주얼록을 개척한 엑스재팬은 지금까지 3,000만장이 넘는 음반을 팔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키작 감독은 이 작품을 만들때까지 밴드의 존재를 몰랐다. 록의 언어인 영어가 엑스재팬을 알리는데 한계로 작용했다.

요시키와 토시는 10세때 미국 록밴드 키스의 일본 공연을 처음보고 밴드의 꿈을 키웠다. 이제는 요시키와 친구가 된 키스의 진 시몬스는 "엑스재팬이 영어로 노래했다면 세계적 밴드가 됐을 것"이라고 말했다.

엑스재팬은 1997년 해산때까지 5장의 정규 앨범, 6장의 라이브, 10장의 베스트앨범을 냈다. 이들은 2007년 토시가 돌아오며 재결성했다.

밴드 해체의 원인은 토시가 사이비종교에 빠졌기 때문이다. 토시는 "노래 실력 때문에 고민할 때 어떤 여자를 만나서 결혼까지 했는데 나중에 알고보니 사이비종교에 끌어들일 목적으로 접근한 것"이라고 말했다. 토시는 사이비종교단체에 끌려가 갖은 욕설과 폭력에 시달렸고 재산까지 빼앗겼다.

서태지가 이름을 딴 것으로 알려진 엑스재팬의 베이시스트 타이지는 요시키와 불화 끝에 1993년 탈퇴했다. 요시키는 불화 이유에 대해 "타이지가 해서는 안될 짓을 했다"며 "그 일은 지금도 말할 수 없다"고 말했다. 타이지는 2011년 사이판행 비행기에서 난동을 부리다가 체포돼 감옥에서 목을 맸다. 그의 나이 45세였다.

엑스재팬의 리드기타였던 히데는 밴드 해산 후 몇 달 뒤인 1998년 도쿄의 아파트에서 자살했다. 요시키는 "히데가 스트레칭 하려고 욕실 문 손잡이에 수건을 걸고 목을 매달았다가 죽은 것으로 보인다"며 "나도 그렇게 스트레팅 했다"고 말했다.

밴드의 '라스트 라이브'는 히데의 마지막 공연이 됐다. 이 공연이 끝나고 5개월 뒤 히데가 죽었다. 당시 토시는 "밴드 해체의 원인이 된 자신을 팬들이 비난할 것이라고 생각해 무대에 오르기 싫었다"고 말했다. 요시키는 사이비 종교에 빠진 토시가 무대에서 엉뚱한 소리를 하면 마이크를 꺼버리라고 음향담당자에게 지시했다.

히스는 타이지가 떠난 뒤 엑스재팬에 합류한 베이시스트다.

요시키는 연주가 끝날 때마다 산소부족으로 의식을 잃고 쓰러졌다. 그래서 드럼을 계속 칠 수 있도록 무대 위에 산소통을 준비해놓기도 했다. 요시키는 무대 위에서 쓰러지는게 쇼처럼 보이기도 했는데 일부러 그렇게 했다. 여러번 위급한 상황을 겪어 무대 뒤로 실려간 적도 많다.

엑스재팬의 목표는 해외에서도 성공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한창 때인 1990년대는 언어의 장벽 때문에 영미권 진출이 쉽지 않았다. 이들은 2007년 재결성 후 서울을 비롯해 여러 곳을 돌며 공연을 가졌고 많은 호응을 얻었다.

크로아티아 랩소디
최연진 저
위 아 엑스 : 풀슬립 OST포함 한정판(블루버전) : 블루레이
스테판키작 / 요시키, 토시, 파타, 히스, 스기조
위 아 엑스 : 풀슬립 OST포함 한정판(레드버전) : 블루레이
스테판키작 / 요시키, 토시, 파타, 히스, 스기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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