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의 장편 애니메이션 '붉은 거북'(La tortue rouge, 2016년)은 독특한 작품이다.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처음으로 외부 제작사를 지원해 만들었다.
네덜란드 출신의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은 1970년대부터 단편 애니메이션을 만들기 시작해 지금까지 오랜 세월 활동하는 작가다.
그의 작품은 대사가 없는 점이 특징이다.
그저 그림과 음악으로만 상황을 설명하고 일체 대사를 집어넣지 않았다.
실제로 많은 애니메이터들은 대사가 없는 작품을 궁극의 작품이라고 하는데, 그만큼 언어의 장벽 없이 보기 편하다.
애니메이션을 회화의 연장선상에서 본다면 대사가 없는 것이 정답일 수 있다.
그렇다고 작품이 추상적인 것은 아니다.
장편이든 단편이든 저마다의 완결된 스토리를 갖고 이야기를 풀어간다.
이를 누구나 쉽게 이해할 수 있도록 만드는 일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닌 만큼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의 구성력이 대단한 셈이다.
내용은 무인도에 표류한 남성이 바다거북을 만나면서 겪게 되는 이야기를 다뤘다.
섬에서 탈출하기 위해 노력하지만 그럴 때마다 남성은 붉은 거북에 막혀 섬을 빠져나가지 못한다.
급기야 남성은 거북을 사지로 몰아넣는데, 거기에서 뜻밖에서 거북을 뚫고 여인이 나타난다.
그때부터 남성은 무인도 탈출을 버리고 여인과 아이를 낳고 살아간다.
어찌 보면 어느 나라, 어느 민족에게나 있을 법한 우렁각시 설화를 떠올리게 한다.
또는 선녀와 나무꾼, 백조의 호수를 연상케 하는 이야기로, 신비롭기도 하고 애잔하기도 하다.
이를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은 간결한 선과 농담이 짙은 채색으로 마치 수채화처럼 표현했다.
푸른 바다, 바람이 스치는 숲 등은 동양화를 보는 것 같다.
그만큼 드 비트 감독의 정서는 동양과 맞닿아 있다.
고즈넉한 공간에서 새삼 인간이란 무엇인가, 산다는 것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만드는 철학적 메시지를 담고 있는 작품이다.
그 바람에 이 작품은 일본 개봉 당시 흥행에서 실패했다.
평소 동화 같은 환상적인 내용의 지브리 작품을 기대한 팬들이라면 당연한 결과일 수 있다.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의 지향점이 상업성보다는 예술성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점이 제대로 알려지지 않았던 모양이다.
비록 재미는 기존 지브리 작품들보다 덜 할지 몰라도 미려한 그림체, 동화 같은 스토리, 영상과 잘 어울리는 음악 등이 조화를 이룬 아름다운 작품이다.
이 작품은 2016년 국내 인디애니페스트에서 개막작으로 상영된 적이 있지만 블루레이 타이틀이 정식으로 국내 출시되지는 않았다.
일본 지브리 스튜디오에서 내놓은 블루레이 타이틀은 1080p 풀 HD의 16 대 9 화면비를 지원한다.
영상은 최신작답게 화질이 좋다.
자연스러운 색감이 잘 살아 있으며 윤곽선도 깔끔하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채널 분리가 좋아서 서라운드 효과가 확실하다.
바다 위에 흩뿌리는 빗소리와 파도소리가 리어에서 청취 공간을 덮치듯 쏟아진다.
두 장의 디스크로 구성된 블루레이 타이틀의 두 번째 디스크에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이 지금까지 만든 '인터뷰' '아버지와 딸' '청소부 톰' '차의 향기' '수도승과 물고기' 등 5편의 단편 애니메이션이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이 작품들 역시 대사가 없어서 편하게 볼 수 있다.
첫 번째 디스크와 두 번째 디스크에는 제작과정, 감독과 대담 등 이 들어 있는데 모두 일본어 자막만 지원한다.
첫 번째 디스크 부록들은 HD 영상으로 제작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은 이 작품을 프랑스 앙굴렘에 있는 스튜디오 프리마 리니아에서 제작했다.
손으로 밑그림을 그린 뒤 컴퓨터를 통해 편집하는 과정을 거쳤다.
인물의 동작은 실제 사람의 움직임을 촬영한 뒤 이를 보고 그렸다.
지브리 스튜디오는 감독이 이전에 대사없이 만든 8분짜리 단편 '아버지와 딸'을 보고 이 작품도 대사없이 만들기로 결정했다.
감독은 바닷가에 가서 파도의 움직임 등을 관찰하고 물을 표현했다.
프랑스의 와일드번치도 공동제작에 참여. 와일드번치는 지브리 작품의 해외 배급을 담당했다.
쓰나미가 섬을 덮치는 장면은 감독의 생각이었다. 동일본대지진보다 먼저 제작한 만큼 이를 염두에 둔 것은 아니다.
'추억은 방울방울' '반딧불의 묘' '이웃집 야마다군' '폼포코 너구리 대작전' 등을 만든 다카하타 이사오 감독이 아티스틱 프로듀서로 참여했다.
미야자키 하야오 감독은 마이클 두독 드 비트 감독의 '아버지와 딸'을 좋아해서 이 작품의 제작을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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