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문이라는 무술가가 있다는 사실은 세계적 쿵후 스타 이소룡 때문에 처음 알았다.
이소룡이 직접 만든 무술인 절권도의 근간이 되는 영춘권을 엽문에게 배웠다는 것을 알게 된 것이 계기였다.
이소룡을 다룬 책 중에 비교적 잘 쓴 브루스 토마스의 '이소룡, 세계와 겨룬 영혼의 승부사'를 보면 엽문을 만나게 된 사연이 자세히 나온다.
이소룡이 엽문을 만날 수 있었던 것은 윌리엄 청 덕분이다.
이소룡은 어떻게 영춘권을 배웠나
윌리엄 청은 생소한 이름이지만 영춘권 역사에서 아주 중요한 인물이다.
원래 영춘권은 지극히 폐쇄적인 무술이다.
영춘권의 본류는 창시자의 적통을 이어받은 직계가족 등 소수에게만 전수돼 왔다.
그 외 사람에게 가르치는 영춘권은 일부를 빼거나 변형시킨 수련용으로, 지금 여러 국가에 퍼져있는 영춘권의 상당 부분이 바로 '진화순 방식의 영춘권'으로 통하는 변형판이라고 한다.
엽위신 감독의 영화 '엽문'에서 주인공 엽문이 일반인들에게 무술 전수를 하지 않은 이유는 부자여서 그렇기도 했지만 영춘권의 폐쇄적 전통 때문이었다.
그런데 윌리엄 청은 변형된 진화순식 영춘권이 아닌 정통 영춘권을 전수받은 인물이다.
이소룡이 윌리엄 청을 처음 만난 것은 자신의 생일파티에서였다.
윌리엄 청의 삼촌이 이소룡의 생일파티에 초대받으면서 윌리엄 청을 데려가 소개했다.
윌리엄 청은 아역배우 출신인 이소룡에게 호감을 가졌고, 이소룡은 길거리 싸움꾼 중에 영춘권을 잘 쓰기로 소문난 윌리엄 청에게 끌렸다.
이소룡은 윌리엄 청에게 영춘권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다.
이소룡의 아버지는 아들이 태극권을 배우기 바랐지만 이소룡은 태극권이 결코 실전 무술이 될 수 없다고 봤다.
윌리엄 청은 이소룡의 부탁을 받았으나 영춘권을 가르쳐 주지 않았다.
거꾸로 윌리엄 청은 이소룡이 또래 아이들을 모아 '호랑이파'라는 싸움 패거리를 만들어 길거리 싸움을 벌이는 것에 대해 얼굴이 잘 알려진 아역배우 출신이니 처신을 잘 하라고 충고했다.
그런데도 이소룡은 길거리 싸움을 멈추지 않았다.
그러던 중 이소룡은 호랑이파 패거리를 이끌고 패싸움을 벌였으나 크게 패해 두들겨 맞은 뒤 윌리엄 청을 다시 찾아갔다.
윌리엄 청은 결국 끈질긴 이소룡의 부탁에 못 이겨 당시 홍콩 요식업 노조사무실에서 무술을 가르치던 엽문에게 데려갔다.
엽문도 당시 13세였던 이소룡을 본 첫 느낌이 윌리엄 청과 같았다.
아역배우 출신으로 잘 알려진 인물이어서 호감이 갔고 무술을 하면 잘 할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당장 엽문은 그 자리에서 이소룡을 제자로 받아들여 영춘권을 가르치기 시작했다.
이소룡은 운동 신경이 남다른 데다가 워낙 열심히 훈련을 한 탓에 다른 제자들보다 실력이 일취월장했다.
엽문의 아들이자 영춘권 적통 계승자인 엽준은 그런 이소룡을 "싸움에 미친놈"이라고 불렀다.
엽문의 제자들은 그런 이소룡을 시기했다.
특히 이소룡이 외가 쪽에 독일계 피가 섞였다는 사실을 알게 된 엽문의 제자들은 이를 문제 삼아 엽문에게 이소룡을 내치라고 요구했다.
엽문은 평소 중국 무술은 서양인이 결코 배울 수 없으며 중국인만 배워야 한다는 주장을 했다.
여기 비춰보면 이소룡은 부적합하다는 게 엽문 제자들의 주장이었다.
특히 엽문 제자들은 이소룡과 '이수(치사오)'라고 부르는 대련을 거부했다.
이수는 영춘권 수련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중요한 과정이다.
서로 손을 맞댄 상태에서 상대의 움직임을 감지하고 다음 움직임을 미리 예견하는 감각과 접촉 반사라는 반응을 훈련하는 것이 이수다.
엽문은 제자들의 거부에도 불구하고 이소룡을 아껴 계속 영춘권을 가르쳤다.
급기야 제자들은 모두 도장을 그만두겠다며 반발했다.
보다 못한 이소룡이 먼저 엽문의 도장을 그만뒀다.
그러나 이소룡은 영춘권 수련을 그만두지는 않았다.
엽문 대신 그의 도장에 있던 사범 황순량과 영춘권 수련을 계속했다.
또 중요한 이수는 주말마다 윌리엄 청을 만나 갈고닦았다.
이소룡이 영춘권에 매료된 것은 군더더기 없는 간결하고 정확한 동작으로 상대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소룡은 길거리 싸움에 활용하려고 영춘권을 배웠으나 엽문의 영향으로 무술 철학에 깊이 빠져들었다.
그는 영춘권을 배우면서 무술의 원리, 무술이 추구하는 근본 목적 등에 대해 생각하게 됐고 이것이 훗날 미국에 가서 절권도를 창시하는 계기가 됐다.
그만큼 이소룡에게 영춘권과 이를 가르친 엽문의 영향이 절대적이었다.
영춘권은 어떻게 시작됐나
영춘권의 시작은 소림사였다.
중국 왕조 교체기인 명나라 말기, 청나라가 일어서면서 명나라 편에 섰던 소림사도 철저하게 파괴됐다.
이때 소림사에서 무술을 가르치던 다섯 명의 수도승이 탈출하는데, 이들이 훗날 중국 각지에 무술을 전파한 소림 5조다.
이 중에 유일한 여성이 오매대사다.
그는 어느 마을에 숨어서 쿵후 수련을 계속했는데 어느 날 두부 장사 엄이의 딸인 엄영춘이라는 여성의 사연을 듣게 됐다.
참한 미녀였던 엄영춘은 다른 마을의 청년과 약혼했는데, 영춘과 같은 마을에 살던 건달이 영춘에게 반해서 파혼하고 자기와 결혼하자고 협박했다.
이를 알게 된 오매대사가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 엄영춘의 아버지 엄이에게 일러줬다.
멀리 떨어진 약혼자에게 파혼 편지를 쓸 테니 이를 주고받는데 필요한 기간인 1년만 기다려 달라는 것이다.
중국이 워낙 크니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이어서 건달은 여기에 동의했다.
그동안 오매대사는 엄영춘을 불러서 여성에게 맞는 동작 위주로 무술을 가르쳤다.
그래도 1년 동안 오매대사의 무술을 모두 배우기는 힘들었다.
영특했던 엄영춘은 오매대사의 무술 중 효과적인 기술을 추렸다.
그것이 소림 38계 품세 중 3가지다.
한 손을 앞으로 내밀고 한 손은 뒤에 두는 영춘권의 기본자세인 소념두, 상대의 빈틈을 파고드는 기술인 심교, 손가락으로 상대의 급소를 찌르는 치명적인 기술인 표지다.
엄영춘은 이를 토대로 오매대사의 기술 중 몇 가지를 응용해 훈련을 했다.
1년 뒤, 엄이는 건달에게 딸과 맨주먹으로 싸워 이기면 결혼시키겠다고 제안을 했다.
여자라고 우습게 본 건달은 엄영춘과 대결하다가 호되게 얻어맞고 물러났다.
이후 엄영춘은 오매대사가 가르친 무술과 자신이 응용 개발한 기술을 접목해 무술 수련을 계속했고, 여기에 그의 이름을 딴 영춘권이라는 별칭이 붙었다.
영춘권은 엄영춘의 남편 양주박에게 전수됐고 다시 그의 제자 황화보를 거쳐 양이제로 이어졌다.
두 제자는 영화 '엽문'의 무대가 된 중국 광둥의 불산에서 영춘권을 갈고닦았다.
영춘권의 맥은 양이제를 통해서 훗날 영춘권의 왕으로 꼽히는 양찬에게 전수됐다.
의원이었던 양찬은 평생 4명에게만 영춘권을 가르쳤다.
그중 2명은 아들이었고 2명은 제자였다.
2명의 제자 가운데 한 사람이 영춘권을 널리 퍼뜨린 진화순이다.
그러나 양찬은 정통 영춘권을 그의 장남인 양벽에게 모두 전수했고 진화순에게는 일부만 전수하면서 조금 다르게 가르쳤다.
양찬은 영춘권의 전통도 전통이지만 무술에 재능이 있는 진화순이 영춘권의 최고 위치에 오르는 것을 경계했기 때문이다.
엽문은 누구인가
본명이 엽계문인 엽문은 양찬이 정통 영춘권을 전수한 그의 큰아들 양벽에게 영춘권을 배웠다.
1893년 중국 광둥의 불산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난 엽문은 왜소하고 허약한 체질을 보완하려고 7세 때부터 무술을 수련했다.
처음 영춘권을 배운 것은 진화순을 통해서였다.
그러던 중 진화순이 죽고 그의 대사제였던 오중소에게 3년간 더 영춘권을 익혔다.
이후 홍콩의 성 스테판대학으로 유학을 간 엽문은 그곳에서 영춘권을 이용해 길거리 싸움을 벌였다.
엽문이 길거리 싸움꾼이었던 이소룡을 아낀 것은 과거 자신과 비슷한 면을 봤기 때문이다.
우연히 엽문이 싸우는 것을 보게 된 양벽은 대결을 신청해 그를 때려눕혔다.
이후 양벽은 영춘권을 배우게 된 과정을 듣고 엽문에게 정통 영춘권을 전수했다.
엽문은 다시 불산으로 돌아왔으나 사부였던 오중소와 영춘권에 대한 의견이 갈리면서 마찰을 빚자 진화순 방식에 대한 영춘권에 대해 일체 침묵한 채 혼자서 수련에만 집중했다.
그러나 중일전쟁이 발발한 뒤 그는 일본군에게 집을 빼앗기고 막노동과 광산에서 일하는 등 가족들의 생계를 위해 힘들게 일했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후 장개석의 국민당과 모택동의 공산당이 국공 내전으로 한창 시끄러울 때 엽문은 불산에서 국민당의 경찰 노릇을 했다.
하지만 모택동이 중국을 통일하면서 엽문도 1949년 불산을 떠나 홍콩으로 옮겼다.
엽문은 홍콩에서 생계를 위해 중국인들에게 무술을 가르쳤다.
그의 수업 방식은 독특했다.
사람마다 배우는 방식과 능력이 다르므로 그에 맞게 가르쳐야 한다고 생각해 개인 교습 식으로 진행했다.
그는 양벽에게서 전수받은 정통 영춘권을 아들인 엽준과 이소룡의 친구인 윌리엄 청에게 전수했다.
1972년 79세 나이로 사망한 엽문은 일대종사(一代宗師)로 꼽혔다.
일대종사는 한 시대의 최고로 뛰어난 스승이라는 뜻으로, 한 시대에 한 명 나올까 말까 한 위대한 무술인을 의미한다.
영춘권은 어떤 무술인가
영춘권의 대표적 특징은 근접전을 위한 무술이라는 점이다.
상대와 가장 가까운 거리부터 직선적인 공격을 하는 방식이어서 화려한 동작을 취하지 않는다.
모든 공격은 상대의 중심을 향해 직각으로 치고 들어가며 발차기도 되도록 허리 아래의 균형을 무너뜨리는 공격에 집중한다.
그렇다 보니 거리를 띄우고 상대를 공격하기보다는 되도록 파고들어 상대와 간격을 좁히는 공격이 많다.
상대가 내지르는 팔을 잡거나 당기거나 비틀고 바로 연속해서 공격이 들어가는 식이다.
특히 손을 편 상대에서 손 끝으로 상대의 눈이나 목 울대 등을 찌르는 공격이 치명적이다.
주먹질을 할 때도 있는 힘을 다해서 내지르지 않는다.
처음에 여성을 위해 개발된 무술인만큼 힘보다 속도에 주안점을 뒀기 때문이다.
그래서 강한 힘을 실어 때리기보다 속도를 빨리해서 연타를 날려 상대의 중심을 허무는 방식이다.
그만큼 상대에게 한 방에 충격을 주는 효과는 적지만 강한 힘으로 공격하다가 손목이나 손에 부상을 당할 염려도 적다.
발차기도 다른 무술처럼 걷어차는 식이 아니라 관절을 미는 방식이다.
무릎이나 그 아래 부분을 밀듯이 툭 내질러 꺾이게 만들어 상대의 중심이 무너지면 그다음에 손기술로 공격하는 식이다.
문제는 초근접거리에서 힘을 실을 수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주먹이나 손바닥으로 연거푸 상대를 때리는 방식의 속도로 해결한다.
이소룡은 여기에 힘을 모아 때리는 1인치 펀치를 개발해 절권도에 응용했다.
불과 2.5cm 거리에서 주먹을 내질러 상대를 허공으로 날려 보내는 기술로, 초근접전에서도 파워 펀치가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영춘권에서 중요한 점은 상대의 움직임을 미리 예측해 빠르게 반응하는 것이다.
이를 몸으로 체득하기 위해 손을 맞댄 채 시작하는 이수라는 일종의 대련을 한다.
혼자서는 목인장이라는 도구를 이용해 108가지 손동작과 8가지 발동작을 익힌다.
목인장은 사람 몸통에 해당하는 기다란 나무에 마치 팔다리처럼 여러 부분을 붙인 훈련도구다.
'엽문'은 어떤 영화인가
엽위신 감독이 만든 '엽문'(葉問, 2008년)은 일대기를 모두 다른 영화는 아니다.
제2차 세계대전 때 불산을 점령한 일본군과 엽문이 대결을 벌이는 내용이다.
불산을 점령한 일본군 장군이 유난히 무술을 좋아해 중국 무술가들과 일본군의 대결을 자주 시켰는데, 여기에 엽문이 상대로 지목돼 승부를 겨룬다.
물론 실화에 기초하기는 했지만 영화적 재미를 위해 윤색된 부분들도 있다.
주인공인 엽문은 홍콩의 무술배우 견자단이 맡았다.
그는 영춘권을 제대로 배운 적이 없으나 이번 연기를 위해 목인장 사용법 등 영춘권을 배웠다.
영화 자문을 해준 엽문의 아들 엽준은 견자단의 영춘권 실력이 오래 영춘권을 연마한 사범 같다고 칭찬했다.
그만큼 영화 속에서 보여주는 그의 영춘권 실력은 뛰어나다.
압권은 일본 도장에서 10명의 일본 무술 유단자들과 대결을 벌이는 장면이다.
이전까지 가볍게 보여주던 영춘권과 달리 이 장면에서는 상대의 관절을 꺾고 부러뜨리며 잔혹할 정도로 무서운 파괴력을 보여준다.
이 일화는 훗날 이소룡의 '정무문'에 영감을 줬다.
견자단 못지않게 악역을 연기한 이케우치 히로유키나 중국 무술가를 연기한 번소황, 석행우, 엽문의 부인 역을 맡은 슝다이린 등 다른 배우들도 인상적인 연기를 선보였다.
촬영은 무술의 동작에 집중해 때로는 정속 촬영으로 빠른 스피드를 살렸고, 때로는 슬로 모션으로 동작의 절묘함을 확실하게 보여준다.
중일전쟁 당시의 암울한 시대적 배경은 회갈색의 모노톤 색감으로 잘 살렸다.
엽문이 어떻게 살았는지 일대기를 모두 보여주지는 않지만 그의 뛰어난 무술 실력과 훌륭한 인품을 단편적으로 엿볼 수 있는 작품이다.
1080p 풀 HD의 2.35 대 1 화면비를 지원하는 블루레이 타이틀은 무난한 화질이다.
윤곽선이 예리하지 않고 약간 퍼져 소프트하게 보이는 영상이다.
DTS HD MA 5.1 채널을 지원하는 음향은 서라운드의 위력이 대단하다.
바람을 가르는 주먹질과 발길질 소리, 묵직하고 우렁차게 울리는 타격음을 확실하게 재현해 무술영화의 박력을 잘 살렸다.
부록으로 예고편과 영춘권의 유산, 인터뷰, 제작과정, 시사회 모습, 삭제 장면, 로케이션 등에 대한 설명이 한글자막과 함께 들어 있다.
특히 이소룡과 '사망유희' 등을 함께 찍은 대니 이노산토가 등장해 절권도와 영춘권에 대해 설명하는 '영춘권의 유산'은 HD 영상으로 수록됐다.
<블루레이 타이틀에서 순간 포착한 장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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